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우킴 Aug 04. 2020

담임 선생님이 왜 전화하셨을까?

녹색 어머니의 단상

오늘은 녹색 어머니 활동을 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이날을 놓칠까 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처음으로 ‘학부모’로서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달력에 빨간펜으로 표시도 하고 핸드폰에도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다행히도 아침에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등교를 하지 않는 날이다. 아이들 먹을 아침 식사를 간단히 준비해놓고선 학교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라고 일러두었다. 대충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끼고 서둘러 나와 녹색 어머니 조끼와 깃발을 가지러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비는 멈추었다.


8시 30분까지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에 도착했다. 노란 형광 조끼와 깃발을 들고 있노라면 어깨가 무거워진다. 오늘 등교하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무를 시작하려 하는데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웬 트럭이 하나 버티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있는 이 트럭을 보고 있자니 달갑지 않았다. 등교와 출근으로 겹치는 제일 바쁜 이 시간에 웬 트럭이람. 동선에 방해가 될 게 분명했다. 얼른 주인을 찾아 차를 빼 달라고 말해주고 싶은 오지랖이 발동했다.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왠지 트럭 주인 중 한 사람이 거기 있을 거 같아 용기를 무릅쓰고 다가가 최대한 친절한 말투로 부탁을 드렸다.



“저.. 죄송하지만 트럭 좀 빼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이고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있으면 너무 위험해서요....”



내 목소리에는 분명 미세한 떨림은 있었다. 아저씨들의 포스가 남달랐고 눈빛도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물고 있는 아저씨가 나를 째려보는 느낌이 들어 계속 주눅이 들었다. 그들에겐 내가 방해꾼이 된 셈이었다. 우려와 달리, 한 아저씨가 흔쾌히 트럭을 빼주겠다고 해주셨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 했는지 모른다.


정류장 옆 횡단보도에서 깃발을 들고 몇 분이 지났을까. 마을버스에서 내려 출근하는 바쁜 이들의 발걸음을 보고 있다 시계를 보았다.  9시가 거의 다 되었는데도 등교하는 아이들은 고작 두세 명이 전부였다.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코로나 19로 등교 인원이 제한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나 아이들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한 반에 25명 아이들이 반으로 나뉘어 등교하는 날도 제각각 다르고, 학년마다 등교하는 날도 다 다르니 실제로 학교에는 적은 수의 아이들이 등교하는 건 틀림이 없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가뜩이나 아이들이 많지 않은 우리 동네에서 아이들의 자취를 더더욱 감추어버렸다.


작년 이맘때도 나는 같은 자리에서 녹색 어머니 활동을 하였다. 동네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지어 덩치가 큰 가방을 하나씩 매고 마스크 없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등교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쁘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은 아이들도 있지만, 막 일어나서 눈곱만 떼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아이들도 있었다. 다가오는 차들을 깃발로 멈추어 세워놓으면,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쳤었다. 인사성이 바른 아이들을 보면 절로 엄마 미소가 흘러나온다. 안전하게 잘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등굣길을 지켜줬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무리 지어 다니는 아이들의 풍경이 그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녹색 어머니 활동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 되었다. 조끼와 깃발을 반납하러 학교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 한 어머니들은 이미 모두 귀가했는지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를 보니 첫째의 담임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무슨 일로 전화하셨을까. 녹색 어머니 활동란에 사인도 하였고 물품도 반납하고 나왔는데.. 혹시 내가 뭐 빠뜨린 게 있는 걸까?


“어머니 안녕하세요, 녹색 어머니 끝나셨나요? 지금 어디신가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지금 녹색 어머니 활동 끝나고 집에 거의 다 왔어요.”


“아.. 벌써 집에 도착하셨어요?.. 시간 되시면 얼굴 뵙고 잠깐 인사드리려고 했어요. 에고.. 그럼 아쉽지만, 다음에 뵙기로 해요.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올해 담임 선생님 얼굴을 제대로 뵌 적이 없다. 학기 초에 교과서만 받으러 잠깐 학교 정문에서 몇 분 동안 인사하던 게 다였다.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아 계신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아이들이 없는 적막한 교실에서 선생님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선생님의 애잔한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통화가 끝난 후 문자 메시지를 하나 남겨드렸다.


'선생님 힘내세요. 건강한 모습으로 곧 뵙길 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