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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Mar 05. 2021

친정엄마가 만들어 주던 시금치무침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는 저녁 식사를 차리기 전 항상 장을 보러 나가시곤 했다. 나는 엄마를 따라 나섰다. 어린 나에게 마트라는 곳은 설렘과 즐거움을 선물해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형형색색 다양한 물건들과 먹거리 속에 내가 먹고 싶은 과자 한 봉지를 집어 엄마 손에 들려 있는 장바구니에 살짝 끼어 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한꺼번에  장을 많이 보는 대신 매일 조금씩 먹을 만큼만 장을 보신 것 같다. 생선 한 마리를 고를 때도 요리조리 유심히 살피시고, 과일 하나를 고를 때도 모양새를 꼼꼼히 확인하고 채소에 흙이 묻어 있으면 안심하셨던 엄마. 밥상에 올릴 식재료는 무엇 하나 허투루 고르시는 법이 없었다.


엄마가 장을 보고 차려주신 밥상 위에는 항상 빠지지 않는 반찬이 있었는데 제철 나물로 만든 반찬이었다. 미나리무침, 오이무침, 시금치무침, 도라지무침..밥상에 자주 올라가던 나물은 학교에 가지고 가는 도시락에도 자주 등장했지만, 편식쟁이인 나는 그런 반찬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는데 엄마는 제철에 나는 것들을 먹어야 피가 맑아지고 몸에 좋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정성담아 만든 나물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물에 밥을 말아먹던 매정한 딸이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나 멀리하고 싶었던 나물을 요즘에는 무엇보다 가장 먼저 찾는다. 특히 찬 기운이 맴도는 겨울과 따뜻한 기온이 맴도는 봄 사이에 제일 먹고 싶은 건 단연 시금치무침이다. 왠지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시금치무침을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아 마트에서 한 단 사 왔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엄마가 시금치를 어떻게 무쳤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냄비에 물이 펄펄 끓고 있으면 엄마는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시금치 뿌리가 있는 쪽을 먼저 넣으셨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몇 번 휘휘 젓다가 바로 찬물에 담가 여러 번 헹구셨다. 기세 등등하고 파릇파릇한 시금치는 어느새 힘없이 흐느적거리며 엄마의 두 손안에 쏙 들어갔다. 곧이어 스테인리스 양푼에 각종 양념과 만나 분주한 엄마 손에서 춤을 추던 시금치. 비록 엄마 손맛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시금치무침 재료


시금치 한 단, 국간장 1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깨소금 1/2큰술 , 소금


레시피



① 시금치는 깨끗하게 손질하여 흐르는 물에 한번 씻어준다. 끓는 물에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뿌리 부분부터 넣고 데친다. 너무 오래 데치면 물컹해지므로 30초 정도만 가볍게 데친다.

② 시금치를 건져내어 찬물에 넣어 헹궈 준다. 잎이 뭉개지지 않을 정도로만 두 손으로 물기를 적당히 제거해 준다.

③ 큰 볼에 시금치를 담고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 준다.

④ 접시에 담고 깨소금을 뿌려 맛있게 먹는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은 어린 시절 밥상에 앉아 늘 갈망했던 육즙 가득한 고기도, 바삭한 튀김도, 쫄깃한 소시지도 아니다. 엄마 손맛이 잔뜩 묻어있는 나물 반찬이다.


식사 준비할 시간이 다가오면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느라 분주했던 엄마 모습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밥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된장찌개는 보글보글 끓고 어느새 집 안 가득 집밥 냄새로 가득히 차오르던 그 순간이 그리워진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도 단맛을 지켜낸 시금치 뿌리처럼,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달콤한 맛을 찾아내고 싶다. 제철음식을 만들며 때맞춰 계절의 이로움을 식구들에게 전해주려 했던 엄마 마음을 떠올리며,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전에 시금치 무침을 한번 더 먹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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