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에 길가의 가로수에 노랗게 물이 들기 시작했다 . 그제도 걷고,어제도 걷고, 오늘도 지나치는 길인데 미처 눈치 채지 못할 만큼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혼자 바지런을 떤 모양이다. 고운 단풍을 목빠지게 기다려 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리 물들어가는 게 서운했다.
화려한 장관을 뽐내며 마음 한껏 흔들어놓고, 어느새 쌩한 추위와 함께 떠나버릴게 뻔해서. 지금은 그 추위를 맞는게 몸도 마음도 미처 준비가 되지 못해서.
그래서 좀 더 천천히 물들어가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고 있다.
나의 10월은 엄마를 보러 병원에 다니는게 주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지하 깊숙히 들어가 전철이 오가는 여러 노선의 통로들을 누비고, 전철 안에서의 독서가 익숙해졌다. 그토록 꺼려했던 코로나진단키트의 면봉으로 코를 더 깊이 깊이 쑤셔대는 일도 이제 능숙해졌다.
방역 준비를 다 마치고 장비를 착용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은 큰 숨을 한껏 들이켠다.
요양병원이라는 특성 상 복도 전체에 퍼져 있는 냄새부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복도 중간 입원실에 다다르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엄마의 모습이 어떨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긴장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제는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게 주어진 면회 가능 시간이 다 끝나갈때까지 엄마와 나는 별다른 말을 나누지 못한다. 당신만의 생각 속을 떠다니고 있을 엄마의 자발적인 침묵과, 혹여 내가 말을 걸면 말을 떠올리느라 엄마가 힘이 들까하는 염려에, 처음 만나 건네는 그날의 안부가 전부이다.
그렇게 서로 자연스레 동의된 침묵 하에 나는 엄마를 쓰다듬는다. 엄마의 차갑고 퉁퉁 부은 팔과 손, 발을 최선을 다해 마사지하고 오는게, 내가 보내는 그 시간의 전부의 일이다.
엄마는 내게 밥을 드셨냐고 물으셨다. 밥을 드셔야 한다고, 어서 가서 드시라고 존대하는 말로 계속 반복하신다.
내가 누군지 알겠냐는 말에 대답을 머뭇거리는 엄마를 보며, 누구일지 고민하느라 애쓰는게 안타까워 말을 돌린 채, 퉁퉁해진 손가락만을 주물러댔다.
엄마의 날들이 저물어가는게 이렇게 눈에 들어올 때마다, '엄마'라는 사람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와의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존재하다 조용히 사그라들어가는 중인 그녀를 보다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힘들어했고, 원망했고, 그토록 미워하게 됬던 마음들에서 분리된 또 다른 '엄마'가 되어 간다.
마흔다섯의 나이가 되어서야 뒤늦게 내 쌓인 감정들을 무지막지하게 폭발시켰던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장면 장면 한 에피소드씩 힘겹게 써내려가면서 나는 용감하게 과거와 맞섰고, 나의 상처들에 지우개를 들이밀었다. 열심히 쓰면서, 열심히 싹싹 지웠다.
미움을 폭발시켰던 일은, 늦었어도 내게 너무 잘 한 일이었다.
미움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필요하면 이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겠다는 마음마저 가졌던 나를, 그 활활 타대던 불의 감정들을, 갑작스레 한꺼번에 노화되어 버린 엄마를 보면서 진화시켰다. 엄마의 병은 나의 '진화'의 시작이었으나, 어쩌면 머지 않을 '이별'을 의미했다.
나의 미움과 원망들은 아주 잘 흘러나갔다. 때때로 과거의 차갑고 독했던 엄마의 얼굴이 나타나 다시 나를 울리는 일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의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였으니까. 지금처럼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는 그 납득할 수 없는 성격이 분명 여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흔 다섯 , 내면아이 해방기>를 쓰는 동안 하나 둘 글이 쌓여가면서 단단해져왔다. 이전처럼 유약하게 참으면서 마음의 화를 쌓아만가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글을 이렇게 회고하고 마무리하는 순간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더불어 '나의 엄마'에 대한 복잡다난한 감정들을 정리해 가는 일을 이렇게나 잘 해나갈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곧 병원 면회가 시작 될 시간이다.
'오늘의 엄마'를 잘 만나고, 혹시 또 나를 못 알아볼 수 있으니 그땐 다정한 마사지사 역할을 잘 하고 나올 것이다.
이제 지켜봐줘야 할 어린아이가 되어 가는 엄마를, 나는 어린 시절의 나의 엄마처럼 차갑지 않게,나의 따뜻한 손으로 엄마의 이마를 쓸어주고 손과 발을 만져주고, 다정한 안부를 물어주는 웃는 얼굴로 마주해줄 것이다.
부디 당신에게, 당신만의 쓸쓸한 외로움 속에 따스함이 스르르 번져들어가길 바라면서.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일 수 없었더 저의 이야기 <마흔 다섯, 내면아이 해방기> 의 험난한 여정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내면 아이는 이제 괜찮다고 말합니다.
과거의 엄마와 현재의 엄마와 잘 이별해 가겠습니다.
응원으로 지켜봐주신 분들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상처입은 내면아이로 힘든 많은 분들께도 응원의 파이팅을 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