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혼자만의 치열한 싸움 중이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그리고 요양병원으로 옮겨지는데에 걸린 그 짧은 시간들은 엄마의 삶을 단 몇 평의 세상으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미워서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았던 시간들은 병약한 모습으로 바싹 말라버린 엄마를 지켜보는 아픈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찢기는 마음은 이제 소금물을 들이붓듯 쓰라리고 아프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미움도 상대가 건강했을때나야 표출할 수 있는거라고 했던 말.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은 그 마음.
돌이켜보면 엄마는 내가 모진 소리로 쏟아붓는 원망들을 다 듣고만 있었다. 호랑이 같던 엄마의 시절이었다면 한 소리 내지를법한 순간들에도 엄마는 응수하지 않고 침묵했었다.
그 장면들의 흥분한 나에서 줌 아웃하여 시선을 거두어보면 엄마는 너무나 조용조용했다. 어쩌면 나는 비겁했다.차라리 사춘기를 심하게 앓을걸 그랬다. 뒤늦게 앓느라 엄마가 나이 들었고 아프다는 것을 망각해버린 건 아니었을까.....
언젠가 나는 이 모든게 엄마로부터 사랑받고 싶었던 감정들로 기인한게 아닐까한다고 글로 썼었다.
그랬나보다. 나도 모르게 나는 엄마를 갈망하고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엄마를 의지해왔음을,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해왔음을 좀 더 명확히 깨닫는 중이다.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었다. 올해의 추석엔 부엌을 오가는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흐를수록 집에서 거하게 차려먹는 일은 줄어든 차였지만 과일에 떡에 건강차에 부지런히 먹이려고 혼자 분주했던 엄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이상했다. 먹기 싫다고 차가 쓰다고 안 먹겠다고 부린 투정들이 호사였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각자가 모두 조금씩 마음이 아린 추석이었다.
며칠만에 다시 만난 엄마는 부쩍 힘을 놓은 모습이었다. 눈빛의 총기만은 선명했던 엄마는 이제 눈 뜰 힘 조차 버거운 상태가 되었고, 더 이상 마를 것도 없겠다 싶은 엄마의 몸은 건드리면 부러지고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엄마가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하루들이 짧아져가는 것이 보일 때, 나는 오열하고만다.
엄마의 퉁퉁 부은 차가운 발을 만지고, 말라붙은 핏줄이 보이는 앙상한 손을 잡을 때 온기가 사라져가는게 슬퍼서 한없이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린다. 그렇게 하면 엄마의 온 몸에 피가 다시 돌 것만 같아서, 어린 시절 엄마가 다리와 발을 주물러달라고 할때마다 열심히 주물렀던 그 마음으로 주무르고 쓰다듬는다.
눈만큼은 또랑또랑 크게 뜨고 있던 엄마의 눈이 힘없이 자꾸 감기는게 무서웠다. 잠들어버릴까봐 엄마의 귓가에 하지 못하고 꾹꾹 삼켜왔던 말을 꺼낸다.
엄마가 혹여나 더 힘들어지면 못 들을까봐, 나는 울음을 꿀꺽하고 눈물을 꿀꺽하며 또렷하게 귓가에 들려준다. 엄마 덕에 이만큼 잘 자라 잘 컸다고, 지금 아주 잘 산다고. 키워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
평생 한번 소리내어 하지 못했던 말도 꺼낸다. "엄마, 사랑해." 하고.
엄마는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 들으며 소리없이 고개를 끄덕여준다. 엄마가 알면 됬다. 들었으면 됬다.
엄마의 '날'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외롭게 해서 미안했던 날들이 너무나 끝이 없이 많아서 이 마음을 내가 희석해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하지 못한 말을 전할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흐르는 날들을 붙잡아 '말의 소리'를 실려 보낼 것이다. 혼자만의 사투가 아니라고 나의 온기를 전달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려 하는 중인 엄마의 '끝'은 부디 그녀의 인생처럼 외롭지 않기를.
젊었던 여인이었던 엄마의 시절, 냉정하고 냉혹했던 시절의 엄마도 나는 이해할 나이가 되었고 이제는 다 잊어가고 있다고. 자식이 설움 토한 시간들을 묵묵히 들어주고 견뎌내주어 감사하다고, 그리하여 내 가슴에 이제는 엄마가 알게 모르게 나눠줬던 사랑이 흔적으로 남았노라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몇 번이나 더 다정한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마스크와 방역 모자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딸의 얼굴을 보고 예쁘다고 너무 곱다고 말해 준 엄마.
그 말에 아팠던 거, 속상했던 거 사르르 녹았다고. 엄마가 나를 사랑했구나 알았다고 .
몇 번이나 더 예쁜 딸이란 말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