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의 '옹이'였다

by HeySu



옹이:


나무의 몸에 박힌 가지의 밑부분

굳은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슴에 맺힌 감정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갔던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조마조마한 2주를 보내고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한 달여간의 병원 생활이 이어지고, 병원에서는 요양병원으로의 이송과 외래 치료를 권했다.

모든 것이 급속으로 이루어졌다. 뚜렷한 병명도 여타할 치료방법도 딱히 없는 병이다. 그저 떨어지는 체력을 보강하고 영양을 주고 망가진 기관의 기능을 어느정도 살려내려는 것에 치료의 목적은 그게 다였다.

모두가 답답한 시간들이었다. 차라리 수술로 마무리 되고 회복을 기다리는 일이었다면 오히려 나았을까?


병원에서도 엄마의 성격과 고집은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생의 끝자락을 오가면서도 엄마는 고집불통이었다고 했다. 엄마가 끝까지 고수하려는 생각은 무엇이었을지,그렇게 지켜야 할 종교적 혹은 개인적인 신념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깊이인 것인지 나로서는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병원에서도 조금은 '곤란'한 환자였다. 의료진의 한숨과, 좋게 말해 허탈 웃음을 자아내는 어려운 환자가 바로 우리 엄마란 사람이었다.

평생을 그런 성정의 엄마를 겪어온 우리로서는 우려했던 바가 역시나 했던 일들이었다.


엄마는 요양병원에서도 콧줄로 음식물을 받아 넘기고 있다. 얼마나 불편할 지는 상상 그 이상이겠지만, 본인 입으로 본인의 신념으로 만든 무언가만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 엄마는, 그냥 주는 병원 음식은 거부하신다 했다. 살리기 위해선 별 수 없이 이 줄로 미음을 공급해야만 하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부디 그 고집을 버려 달라고 생각해보지만, 누구보다 그것이 소용 없을거란 걸 잘 아는 건 바로 우리였다.

엄마는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 망상같은 신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에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평생 지켜오고 믿어온 , 우리가 이해 못할 그 무언가에 가 닿아있다.



가끔 궂은 날이면 병상에 누워있을 엄마 생각이 난다.

하루 24시간의 시간이 엄마에게는 어떤 길이의 시간일는지, 나는 가늠할 수 조차없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만 한 가득일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안타깝기만하다.

엄마는 일주일에 단 한 번 20분의 시간만 허용되는 면회 시간에 늘 2만원을 달라 한다고 했다.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말을 하다가 그럴수 없다는 상황을 이야기해 줄 때마다 그럼 2만원만 두고 가라고, 택시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집에서 딱 10분 정도의 거리다.

엄마는 2만원이면 어디서든 집으로 갈 수 있는 충분한 돈이라고 생각하셨던 걸까.

엄마에게 2만원이란 액수는 어떤 의미인걸까.



여타할 상황의 변화 없이 하루하루, 그리고 한 주 두 주가 흘러가고 있다.

늘 같은 소식에 오히려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있다. 부디 엄마의 입원 생활이 너무나 힘들지만 않기를, 조금씩이라도 호전되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다.

'옹이'라는 단어.

옹이는 나무 몸에 박힌 가지의 부분이다. 마치 몸에 새겨진 흉터나 굳은살처럼, 옹이는 몸통 속에 아주 단단한 모습으로 꾸욱 꾹 박혀있다.

가슴에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말하기도 하는 '옹이'라는 말이 입으로 자꾸 되뇌어졌다.

엄마와 함께 했던 나의 유년기를 비롯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엄마가 남긴 옹이는 내 몸에 몇 군데나 될까를 생각했다.

가슴에 맺힌 내면아이의 응어리들을 드러내고 그 꼬인 부분들을 풀어내기 위해 나는 글을 써 왔다.

부옇게 떠다니던 울분과 화 덩어리들을 글로 표현하며 직면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엄마의 병원 생활은 늘 슬펐던 나의 내면아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일시정지 시켰다.

우선 순위가 바뀌었다고 해야할지, 아님 미운 감정들을 해소함에 끝이 다다랐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분명 엄마로부터의 숨막히는 감정들로부터 내가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변화가 있었을 뿐.

그러나 치열하게 끓어오르던 마그마 같은 화들이 잠잠해졌다고나 할까.

마치 휴화산의 모습처럼, 활화산이었던 나는 진정되었지만 모든 것을 비워내진 못했다.



엄마는 나에게 '옹이'였다.

겹을 잘라내고 잘라내도, 남아서 흔적을 드러내는 짙은 '옹이'. 그게 바로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이다.

엄마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내가 엄마의 지금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내 몸에 존재할 것이다.

달라진 건 , 내가 이제 조금씩 그 옹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옹이따위 없는 결이 고운 나무처럼 나는 맨들맨들 고와지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저기 산재한 '옹이'덕에 거칠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 그게 또 언젠가는 꽤 쿨하게 멋스러운 모양으로 보여질지도 모른다.

내가 쓰다듬기 시작하면, 내가 부드럽게 만져주기 시작하면 맨들맨들, 반질반질 해 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편안해져가기를 ...그렇게 나에게의 몰입에서 벗어나 엄마를 보다 더 이해해 갈 수 있기를...



다음주엔 엄마를 보러 가려 한다.

옹이를 남겨온 과거의 트라우마인 엄마가 아니라, 지금의 아픈 '우리 엄마'의 손을 잡아주러 간다.


마흔 여섯, 나의 내면아이는 글과 함께 한 시간들을 통해서 놀랄만큼 해방되어 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병환으로 인해 그냥 나의 해방기가 중단되었다고 보여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탈출하려고 했던 것은 슬픔과 억울함과 답답함으로 얽히고 섥혔던 감정의 뭉치들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엄마는 그대로인 사람이고, 곁에 계시는 동안 또 엉뚱한 무엇으로 나의 속을 대차게 뒤집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건,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졌다는 것, 이전만큼 온 몸으로 준비없이 감정에 맞딱뜨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흔들릴 것이나,

예전처럼 심하게 출렁이진 않을 것이다.

일렁거리다 일순간 '멈춤'으로 돌아오는, 감정의 너울을 '잘 타는' 사람일 것이다.


나의 내면아이도 더 이상은 웅크리고 울지만은 않을 것이다.

몸을 펴고 고개를 들고 동굴의 바깥, 빛이 있는 곳으로 입구까지 성큼 걸어나왔다고 믿는다.

이제 울음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을 펴고 잔잔히 미소지으며 앞으로, 옆으로, 사방으로 자유로이 돌아다닐 준비가 , '다 되었다.'


충분히 되었다.








상흔은 아무리 훌륭한 치료를 받는다 해도 말끔하게 처음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보드라운 새 살로 덮어낼 수는 있다.

긴 시간이었고,

멈춤의 시간도 길었던 글이었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치열했던 내면아이 해방기는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병환으로 멈춰진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다.

오히려 좀 더 엄마란 사람을 ,'개인'으로서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고마웠던 시간이었다.

엄마가 남긴 '옹이'들을 보듬으며 나는 점점 더 괜찮아지고 나아져갈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지난했을 젊은 시절과 외로웠을지 모를 시간들에 어른인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기도한다.

엄마가 부디 병환 중인 지금의 상황에서도 최대한으로 편안한 쪽에 계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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