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러진 얼굴로 엄마를 불렀다

by HeySu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정신을 잃기전조차도 구급차를,병원이송을 거부했다는 엄마.

엄마가 왜 그리 강경하게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내던지고 혼자 견디기를 선택했는지는 모른다.

엄마말대로 병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작게 스치는 접촉 하나에도 소스라칠 고통을 겪는 것을 감내하는 것보다 엄마에겐 왜 더 큰 문제였는지를,아직 나는 엄마마음 대부분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 거부가 워낙 강경했기에 여기에까지 엄마를 방치했노라 ,당신들은 우리 엄마를 모른다라는 변명같이 들릴 말들로 쓰나미처럼 몰려든 자책과 죄책감을 가려대고 싶지 않다.

온 몸으로 맞는 중이다.


엄마는 어쩌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본인의 선택들을 후회하고 있을까?아님 예상했던 엄마만의 일들을 수순대로 겪어내야만 하고 있는걸까.


엄마의 소식을 들은건,다른 날들의 소식과 크게 달리 들리지 않았다.

병원이송을 거부한다는 소식을 언니로부터 전해듣고 나는 치료중이던 마니에르병의 또 다른 증상인 어지럼증 발작을 겪었다.

갑작스레 찾아든 발작에 온 세상이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손 끝하나 머리하나 들 수 없이 처음겪는 공포감과 막막함이었다.함께 있던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그 상황을 벗어났을까.


난생 처음 구급차에 실렸다.가까운 응급실에서 임시방편으로 긴급 수액치료를 받았다. 비가 많이 쏟아졌다.

내 몸 하나의 완전한 이상으로 여럿에게 폐를 끼쳐야하는 것이 그 와중에도 마음이 쓰였다.

약에 취해 아이가 하교한 것도 저녁을 먹었는지도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눈을 뜬 아침에는 엄마가 위중하다는 문자가 언니로부터 와 있었다.빙글도는 세상을 붙잡고 전화를 걸어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밤사이 환자실에 입원했다.낮의 전화 소식 이후 저녁에 급격히 안좋아진 상태로 엄마는 그토록 타기 싫다는 구급차를 타고 그토록 완강히 가지않겠다 버텨낸 병원 ,아무도 들이지 못하는 중환자실에서 홀로 고통을 견디는 중이다.


하필이면 그날 난 왜 어지럼 발작이 온 건지,하필이면 약에 취해 밤새 자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눈을 뜨지 못하고 신음하는 엄마라도 봤어야했다.

나만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오열했다.


난 작년무렵부터 엄마를 미워한다고 표현하는데 집중해왔다. 섧다고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띄워 다시 겪어내며 말해왔다.그대들로 인해 나의 유년으로부터 난 도망치며 살았다고.

그래야 내 상처들을 털어내고 비로소 끈덕지게 내게 달라붙은 유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루하루를 뒷걸음치며 엄마로부터 감정을 멀리해왔다.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뒷걸음치는 동안 엄마가 더 병들어가는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 마음까지 헤아릴 여력이 내겐 없었다.예전과 똑같이 감정들을 받아내는것은 분명 힘들었을지 모른다.

호흡기를 쓰는 마음으로 멀어지기로 결심했던거니까.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놓친 것이다.

내가 미워한 엄마는,나를 할퀴어댔던 젊고 기가 성했던 그 엄마이지 지금의 엄마는 아닐지도 모르다는걸.


가속붙은 차처럼 아픈 마음이 눈끝에 달렸다.

그래도 유년의 상처를 직면하는 글을 기록해오면서 미움과 원망을 많이 덜어냈다 생각했다.그러기 위해서 썼던 글들이 지금은 날 할퀴어댈 새로운 도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의 소식에 이렇게 예상외로 아픈건 내 미움과 원망에, 오롯이 그것만이 담긴것은 아니었다는 걸 말할지 모른다.


얼마전부터, 함께 살았던 시절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들이 계속 떠올랐다.

한 솥 가득 끓여댔던 뜨끈한 보릿국,거칠지만 국물맛이 좋아 몇 그릇씩 밥을 말아먹곤 했었다. 출산하고 먹고싶은 친정엄마의 음식이 있었다면 이것이었다고...난 그때 엄마에게 말하지도 언제 한번 끓여달라고 청하지도 못하였다.

간식으로 직접 반죽해 튀겨주던 동그란 '도나쓰', 밥그릇으로 동그라미를 반죽에 찍고 더 작은 뚜껑으로 가운데 구멍을 내는건 내 몫의 일이었다.

바싹 튀겨지고 기름 털어낸 뜨거운 첫 도넛을 내게 주셨다.

편의점에서 파는 그 모양의 오븐 도넛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지금 나는 엄마를 볼 수가 없다.입원한 병원은 일체 면회금지다.중환자실이라 그런건지 내부규제가 다른곳보다 엄한건지 환자들을 위해서 감염방지상 당연한 조치라 생각하면서도 매몰차다.

전화로만 전해듣는 소식을 접할때마다 온 얼굴이 이내 이그러진다.

마음이 이토록 저미듯 찌르르한건,

엄마의 얼굴이 이렇게 보고싶어지는건,

과거의 일을 미워한 것조차 다 미안해지는건

내가 엄마를 그토록 작정하고 미워했던 일이

엄마에게서 여전히 징그럽게도 사랑을 찾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걸 .

나는 이제서야 여명이 걷히듯 그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엄마가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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