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꿈에, 깡마른 몸의 엄마가 눈을 무섭게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멀리서 빠른 속도로 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엄마의 얼굴과 그 눈빛에,
꿈이었는데도 심장이 철렁했다.
엄마에게 힘껏 소리 질렀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무서웠다.
잠이 깬 그 자리에서 한동안 앉아 있었다.
쿵쿵 쿵쿵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점차 작은 소리로 진정되어 갔다.
일주일이었다.
상념으로 꼬여 얽힌 꿈의 흔적이 나를 놓아주기까지 걸린 시간은.
지인으로부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이 하나 도착했다.
엄마아빠로부터 멀어지기를 선택한 이후로도 늘 마음이 편치 않은 불안 상태에 머물렀던 내게,
영상을 보다 내 생각이 났다며 꼭 전해주고 싶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내온 영상이었다.
부모를 멀리한다는 것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탈부모'라는 나의 행위가 몰고 오는 나만의 죄책감들은 마치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오고 또 밀려오기를 반복한다.
가끔은 지칠 정도로 이런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나를 위한 애틋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의 형태를 들여다봐주는 애틋함.
나는 그녀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스무 살이 넘은 성인 자녀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이미 독립된 개체이다. 따라서 부모의 존재에 대해서 벗어남을 선택했든 머무름을 선택했든지 간에 그것은 성인 자녀인 나의 '선택'인 것이고, 나의 '자유'인 것이지 그 선택이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잘못이라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라는 말씀이었다.
유교 사상의 '효'사상을 충실히 교육받아온 나는, 그것을 거스르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며 , 해방감과 더불어 '해방되지 못한 마음'으로 괴로웠었다.
스님의 답을 들으며, '아, 그래도 괜찮은 거구나. 비록 선행은 아니지만 잘못도 아닌 거구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부모를 멀리 하는 일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잘못한 일도 아니라는 말씀이 위안이 되었다. 나는 부모에게서 독립된 성체이니까.
자연의 법리에서 성체는 더 이상 부모의 '것'이 아니다. 품에서 떠난 새끼를 다시 돌아보지 않는 것이 자연 속 부모의 순리이듯, 자녀도 독립한 이상 스스로의 삶을 알아서 이어가면 될 뿐이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 삶은 성인이 된 자녀가 또 그 자녀를 잘 키워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나는 내 아이를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더해 갑절로 더 사랑하며 키워 내보내면 그뿐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도 스물다섯 해가 지나서야 부모와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요인이 된 것도, 엄마아빠로 인해 억눌렸던 심장을 다시 살려보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정서적인 거리 두기를 선언하고, 더불어 물리적인 거리 두기도 시작되었다
보지 않아서 편했고,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살 것 같았다.
부재중 전화 목록을 보면 자동으로 스위치가 켜지듯, 심장이 요란히 박동치고 온몸에 불안이 찾아오는 일도 점차 줄어갔다.
마음이 가지 않아도 억지로 붙들어 '예의'와 '도의'라는 미명 하에 전화를 하고 또 전화를 받았던 일을,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
이러기까지 여러 번의 악다구니와 수차례의 화가 오갔고, 남들이 봤다면 몹쓸 장면 들이었겠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언제고 터뜨려야 했고 터질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미루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이제는 그 단절된 끝부분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단절의 끝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과 완벽한 단절을 할 수 없는 '끝'이 공존하고 있다.
나는 엄마 아빠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탈부모'의 의미가 물리적인 완벽한 차단을 의미했다면 차라리 쉬웠을지도 모른다.
정서적인 해방이 이렇게 어려울 줄을 나는 이 과정에 와서야 다시금 깨닫는다.
좀 더, 하루라도 빨리 해방을 시도했었더라면 내 마음을 치유해 나가는 일이 조금 더 수월했을까?
나이 들어가며 오히려 과거보다 더 고집스러워지고 표독스러워지는 노인 두 분이 존재한다.
나는 그들로부터 말뚝에 매인 끈이 단지 조금 더 길어졌을 뿐이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 나는 단지 순응했던 과거 그 보다는 멀리 그들로부터 멀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말뚝에 매였다는 사실만은 어느 의미에서 부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연로함이, 그들의 노화가, 그들의 질병이 나의 분노로부터 연민을 자꾸 들어 올린다.
나는 길에서 자주 닮은 꼴의 '아빠'를 만나고, 꿈에서 '엄마'를 만난다.
그들은 여전히 친절하지 않고, 낯설고, 웃지 않고,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바라는 '그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이쪽에서 내어 줄 수 없고 애틋할 수 없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 '단절의 끝과 시작'에 선 사람이다.
'나'란 사람을 끝도 없이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빨아들였던 블랙홀 같은 상처와 분노의 구덩이에,
희끗희끗한 연민들이 종종 부유하며 몸을 드러낸다.
구질구질하다.
미움 속에 이토록 연민이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이.
지독한 미움 속에도 '연민'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