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면서 때로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목이 질긴 줄에 옭아매인 것 처럼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진저리치곤 한다.
가족이라는 시스템에서 사랑이 아닌, 그에 반하는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사람들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이 불우했음에도 단편적인 장면과 장면을 어렵사리 끄집어내어, 볼품없는 유년기와 어쩌면 계속되고 있을 그 암흑기를 - 찢기고 너덜너덜 기워진 모습일지언정- 아주 조금이라도 "예쁘게' 포장하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인 사람들은 생각보다 넘쳐난다.
나는 소피루이의 저서 <가족을 폐지하라>의 첫 장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과 자기의 가족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가족 폐지론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 광의적인 측면에서도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가정폭력의 생존자들에게 '가족을 사랑하라'는 구호는 너무나 커다란 족쇄일지도 모른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그 관계에서 기인한 끝없는 긴장과 비극 (가끔 이것이 과연 개인적인 비극에서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한다) , 돌봄의 결핍, 사랑에 대한 좌절감 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불행이라며, 그래도 가족이니 어쩌겠냐는 말로 '당연한 감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고 의지가 되고, 서로에게 "이타적"이어야 할 관계는 그늘진 어느 이면에서는 전혀 반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모두가 외면하며 보려 하지 않았고, 그리고 비난해 마지않았던 그 그늘 속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 이 문제는 절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서는 안 될 난제라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두려운 것은 이 문제가 나 하나의 대에서 끝이 나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드러나는 징조' 들에 있다.
한참 동안 글을 쓸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당신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나'의 이야기를 더 써 내려가는 것이 차마 못할 지경이었다. 여러 날들을 묵히고 묵혔다.
한바탕 거세게 휘저어진 진흙탕이 시간이 흐르면 진흙은 가라앉고 물은 제 색을 찾듯, 분탕 치던 마음을 가라앉히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온갖 상념으로 엉망진창인 상태가 일시적이나마 진정이 되면, 마음 한편이 물렁해지며 또 연민이 찾아들곤 했다. 속는 것을 알면서 나는 또 당신들을 이해하려 애쓰고,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래도 가엾지, 좀이라도 변하겠지, 미워도 어쩌겠어 자식이니 다가가야지... 이러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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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집에 다녀왔다.
실망의 더께가 더 얹혔다. 가지 말 걸 그랬다. 보지 말 걸 그랬다. 듣지 말 걸 그랬다.
엄마를 위해 모인 자리였다.
움직임이 한층 불편해진 엄마를 위해 전동침대를 마련했고 침대배송이 오는 날이었다.
귀에 딱지 앉고 마음에 울분이 쌓일 소리를 들을 것이라 단단히 마음채비 하고 간 자리였음에도, 늘 변함없이 꿋꿋하게 한결같은 지독한 엄마라는 사람과, 나날이 새로운 실망감을 놀라울 정도로 얹어주는 아빠로 인해
또 울음소리는 터지고 불길 같은 화가 여럿에게 일었다.
심한 통증에도 절대로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는 쇠심줄 고집의 엄마, 거동이 힘든 엄마로부터 여전히 식사를 받아내고, 액수도 그리 크지 않은 생활비 타박을 아픈 엄마에게 여전히 이 상황에도 하고 있는 아빠.
아빠에게 본인의 동반자이자 아내인 사람은 그저 식모였다. 자식들은 엄마를 대신할 새로운 무료 노동력이자 새로운 식모일 뿐이라 여기는 사람, 손에 쥔 것을 나눌 줄 모르고 본인의 안위에만 몰입하는 사람, 타인의 안부나 처지 따위는 철저히 나 몰라라 하는 사람, 그게 우리 아빠라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거부하고 누군가의 입장을 이해하기를 애초에 외면하는 사람이자 본인만이 세상 진리인 사람이, 내가 한 때 좋아했던 '우리 아빠'의 숨겨진 얼굴이었다.
나는 분명 엄마를 평생 원망하고 미워했고, 여전히 그녀가 불편하지만 지금은 아빠란 사람이 어쩌면 더 큰 원인이자 이 모든 불행 최초의 발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점점 더 그것이 선명한 확신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이 가족은 진작 "폐지"되었어야 했어야 했다는 마음과 더불어 이 최악의 조합이 애초에 어떻게 가능 헸는지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빠는 차디찬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가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현재 본인의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평생 사랑하지 않았던 존재'이자 집안일을 해 주던 여자사람의 '쓸모'가 다 해진 상황에서 잔인하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아닌 '소리'였다.
아니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이었다.
거실과 주방만큼의 떨어진 거리, 주방 의자에 뒤를 보이며 앉은 엄마의 귓가에도 분명 들렸을 소리였다.
말없이 오렌지를 몇 조각 까 드시고 있던 엄마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가슴속에는 어떤 멍이 들었을까.
한 인간으로서 한 사람을 동반자로 맞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로를 증오하듯 싫어했을지라도 미운 정이라도 들었을 세월일진대, 아빠는 아픈지도 얼마 안 된 자신의 동반자가 벌써부터 지긋지긋하고 거추장스러운, 눈앞에서 치워버리고픈 사람이었다.
늙어가는 인생의 경로를 분명 함께 지나고 있음에도, 천년만년 당신만큼은 말짱할 거라는 자신감일까?
누군가의 죽음을 그렇게 드러내놓고 바란다는 게, 사람이 눈앞에서 '치워지기를 바라는' 그 잔혹한 마음을 누군가는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 것일까?
만날 때마다 더해지는 아빠의 '악'을 표정과 말에서 읽어내면서 나는 울컥하고 설운 울음이 솟구친다.
엄마를 그 따위의 부당한 말에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게 만든 아빠와 부부로 산 세월의 더께는, 당사자인 엄마에게 처참했을 것이다.
'엄마'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는 자식들로부터 물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내로서 엄마는 과연 정당하게 남편의 책임과 의무를 챙겨 받았던 것일까? 엄마는 아내로서 또한 그러했을까?
서로는 서로에게 아마도 똑같은 사람이어서 가시투성이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상처주며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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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 해서 당연한 '착취'는 없다.
착취가 아닌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정이자 연민, 그리고 자발적인 돌봄의 의지여야만 한다.
나는 내 가족이 마치 괴사 된 살덩어리처럼 반드시 도려내야 할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곪은 사과 하나가 함께 담아 둔 멀쩡한 사과를 전부 곪게 만드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함께 할수록 서로에게 더더욱 유익하지 못한 , 유쾌하지 못한 존재가 될 것임이 자명해 보였다.
이틀전만 해도 이젠 내가 이 악몽같은 미움을 털고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어느 정도 자신했다.
이 글쓰기의 끝에 설 때 어쩜 나는 이 지난한 마음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해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불투명해지는 끝에서 좌절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오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좋은 의지를 애써 다지고 원 가족 모두가 모여 시작했던 오늘이었다.
'친정(親庭)' 이라는 그 공간에는 꾹꾹 감정을 눌러 참은 공기와 변해가던 말투와 호흡, 누군가의 울음소리, 또 다른 누군가의 침묵, 그리고 평생을 고수해 온 끈질긴 두 사람의 아집이 지독히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