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을 흡수하는 일

by HeySu



"감정을 충분히 경험할 때 행복해진다"


감정은 의지 및 지성과 공동으로 작용해서 우리가 생활하고 성장하는 것을 돕는다

감정을 거부하고, 왜곡하고, 억압하고, 억누르면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것 밖에는 안된다.

감정의 흐름이 막혀 버리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병이 생긴다. 반면 감정을 인식하고 공유하고 받아들인 다음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더욱 건강해지고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감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겪어내는 것'뿐이다.

두려움, 분노, 수치심은 해결해야 할 감정적, 정서적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그런 감정 때문에 스스로를 무가치하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충분히 슬퍼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__ 찰스 화이트필드





감정의 날 것 그대로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물 흐르는 호스의 한가운데를 거세게 움켜쥐는 것과 같다.

흐르지 못하게 막은 물은 갈 곳을 잃고, 막힌 그 자리에 밀리고 밀려 호스를 부풀려 올린다.

점점 빵빵해진 호스는 결국 펑! 하고 터져버리고 만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참아버리고 말았던' 감정의 실체는 사라져 버린 게 아니다. 단지 어느 한 구석에서 계속해서 밀리고 쌓여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인지하게 되는 시점은 '폭발의 순간'이다.

기쁨, 분노, 우울, 화, 슬픔 등의 감정의 제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표정을 잃는다.

어느 순간 어떤 표정 이어야 할지 어색해지는 순간이 올 정도로 잊고야 마는, 이도저도 아닌 표정을 한 가면을 하나 얻어 쓰고 산다.

단 한 사람의 앞에서라도 내 날것의 감정 그대로를 내보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가끔은 내게 그런 '단 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지의 의문과 서글픔으로 산책 나온 강변에서 우뚝 선채 울어버리곤 했다.


부모로 인한 '상실'의 경험과 트라우마는 마음을 자극하고 부정적 에너지를 키워낸다. 이 에너지를 방출시키며 살지 못하면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결국은 만성적인 긴장상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병적인 증상을 얻을지도 모른다. 공황장애나 틱이 오거나 감정의 조절이 힘들어지거나 , 늘 긴장상태에서 살게 되거나...



코로나가 시작된 첫 해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의 등교가 중지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잃었다. 사랑하는 아이와 있는 게 좋기도 했지만 잠시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전무하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 고립된 생활이 길게 늘어지면서 날카로운 감정의 민낯이 툭툭 드러나기 시작했다.

너그러움은 뒤로 밀려나가고 다른 때였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일들이 '큰 일'이 되고 화가 되는 일이 허다해졌다. 내 감정의 처리가 힘들어서 상대적 약자인 아이에게 무서운 표정을 드러내고 뾰족한 소리로 혼을 내는 일도 잦아졌다. 아이와 나 모두 힘이 들어질 때쯤, 어느날 마주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아차' 하는 마음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표정이, 아이가 바라볼 나의 얼굴이 내 어린 시절 그 엄마의 얼굴을 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눈앞의 아이가 과거의 내 얼굴이 되고 찢기던 마음이 내 아이의 지금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끔찍하게 괴로웠다.

절대 내 부모를 닮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란 자녀가 성인이 되어 결국 부모의 폭력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기사를 보면서 설마설마 했었다.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지금 내 아이와 유년기의 내가 한 몸이 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미움'의 감정들이 마땅히 향해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걸 처절히 깨달았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상담센터에 등록했다.

아이와 나 따로 상담을 진행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아이에게 급 돌변하는 원인이 어린 시절에 있다고 보고 선생님과 '원가정' 문제를 파악하고 내 얽혀있는 묵은 상처들을 풀어가는데 많은 날들을 할애했다.

아이도 선생님과의 놀이치료로 가슴의 답답함과 심리적 위축을 풀어내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의 부정적인 변화를 늦지 않게 깨닫고 상담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게 천만다행이었던 것 같다.

내 엄마의 행태를 답습하여 나 역시 그러한 엄마로,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만큼은 한 순간도 그런 엄마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몇 가지의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심하게 혼냈던 날들의 내 표정과 날 선 말의 조각들을 기억한다. 여전히 가끔은 말을 꺼내며 나를 꾸짖고 아파한다. 그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사과한다. 용서는 받는 이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끝이 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 수천번을 더 사과해야 한다고 해도 나는 진심으로 계속해서 사과할 생각이다. 부족했던 모습을 인정하고 이미 아이에게 새겨져 버린 생채기의 흉을 조금이라도 옅어지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언젠가는 어린 시절 한 때의 에피소드로 나와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가끔 거울속 나를 한참 들여다보곤 한다.

괜시리 삐죽한 날이 서는 날, 도무지 납득이 안되게 화가 나는 날, 그런 날의 나의 말투와 표정이 어떨지 굳이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추한 얼굴의 못나디 못난 내가 수욱 떠올라 화들짝 놀라고 만다.

내가 부모의 파괴적인 언행으로 인하여 만성적인 쇼크 상태 즉 만성 스트레스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음을 잘 알기에 , 아이에게는 부단히 더 '좋은 엄마'가 되어 주고 좋은 부모 아래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

보고 배우고 자란 대로 행해지는 '무의식적인 충동 행동'을 거부하는 일은 마치 중력을 거스르듯 너무 힘이 든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나는 내 아이가 슬픔에 대해서 온전히 슬퍼하고, 기쁨에 대해서 입 벌려 환히 웃고, 화남에 대해서는 '정당한' 화를 표현하며 살기를 바란다.

차단막에 막혀 감정의 흐름을 억눌러 거스르지 않기를, 웅크린 내면아이를 가진 채 살아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이 내가 나의 '내면아이'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일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글들은 내가 맘껏 슬퍼하지 못했던, 화내고 미워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내리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상실'을 계속하여 인지하고 묵혀왔던 갖가지 감정들을 표현해 나가는 일이, 나란 사람의 꼬여버린 인생 실타래를 풀어가는 첫 손짓일 것이다.


오늘도 난 엄마가 밉다고 아빠가 밉다고 말하겠다. 입모양을 명확히 하고 아주 당당히 말하겠다.

실컷, 한껏 미움을 철철 넘치게 풀어내고 더 이상 터져 나올 미움이 남아있지 않은 '때'가 되면,

나는 '미움을 흡수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부디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