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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Sep 02. 2024

내 다리 내놔!


작년부터  일년에 한 가지씩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첫 번째 도전은 드럼이었고, 한 달 전부터 스쿼시에 새롭게 도전했다.



레슨 횟수 열 번도 채 안된 스쿼시 초짜인 내게, 지난 수요일의 레슨시간, 마치 다리에 번개를 때려맞는듯한 고통이 닥쳤더랬다. 분 당 칼로리 소모가 최고라 손꼽는 격렬한? 운동 중의 하나라는 스쿼시.  왕초급자로서 이제 겨우 공 한 두어 번 받아내기 급급한 수준인 나는 어이없게도 뒷걸음질치다 종아리근육 파열 부상을 입은 것이다.

절뚝절뚝거리며 홀로 찾은 병원, 점점 심해지는 고통에 주위 시선따위 상관없이 애처럼 눈물을 철철 흘렸다. 그 첫 날을 보낸 이후로 며칠째 다리에 갑갑한 깁스를 끼워넣고 집에 감금중이다 .

약 때문인지 염증 때문인지 아침마다 퉁퉁부은 달덩이 괴물을 거울로 마주하는 것이 괴롭다. 종아리가 이렇게 뚱뚱했었나 싶을 정도인 대왕 코끼리 다리를 볼때마다 짜증이 난다.  절뚝이다 다치지 않은 왼쪽 다리마저 코끼리가 되는게 아닐까 진지하게 걱정이 될 정도다.



욱신거리는 다리 덕에 뒤척이다 심난하게 눈을 뜬 아침이면, 거실 통창으로 보이는 하늘 색깔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하늘이 유난히 파래서 , 아침 공기에 가을 바람이 섞인 것이 시원하게 느껴져서, 잿빛 하늘에 비가 오면 또 그래서 심통이 난다. 두 다리 쉴 틈없이 종횡무진 빨빨대며 돌아다녔던 나로서는 이보다 더한 고문이 없다.

게다가 좋아라 하는 드럼 강사님들도 못 만나고, '쿵치따치' 레슨곡 연습도 가지 못하고, 스쿼시는 초보 주제에 강제로 그 배움이 중단되고...그 와중에 살은 아주 잘만 찌고 있다. 며칠만에 3키로가 불다니 말이 되는건가? 제발 붓기라고 말해달라고 거울 속 내게 부르짖으며 자책을 일삼고 있다.

그 중 가장 뒤집어질 일은 바로 내일 3박 4일간의 자유를 얻어 떠날 예정이었던 '나홀로 제주책방여행'을 , 그것도 위약금 잔뜩 물고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는 속사정에 있다.

사고만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예쁜 파스텔 색깔의 캐리어 안에 고이고이 옷을 개켜 넣고,화장품을 소분해 담고, 비행기안에서 읽을 책 한권을 고심하여 고르고, 남편에게 평소보다 심한? 애교를 부리며 여행용돈을 타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수술을 해야만 하는 끔찍한 상황은 모면했다는 것이다.

한달 간의 자숙 및 치유 기간을 완벽하게 거쳐내야만 내게 정상적인 생활이 돌아온다고 한다. 한 2주 뒤 좀만 걸을만해지면 바로 나다녀야지 했는데, 나의 어설픈 이 꾀를 과감히 포기해야 할 듯 하다.

재발이 되면 수술로 갈 수 있다고 하니, 나이 잊지 말고 자숙해야지 싶다.

한 달간 쌓인 책들을 읽고, 드라마 정주행도 하고 , 혹자는 이 참에 푹 쉬어라 부럽다 말한다. 이것이 내게는 가장 큰 형벌인 것을...



오전에 병원을 다녀온 이른 오후까지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우울했지만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귀차니즘에 저만치 치워져 버렸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이것도, 부끄럽지만 '내일부터'다.

겨울 방학여행을 계획하고, 가계자산현황도 재정리하고,  소소하게 시작한 경매 공부도 본격적으로 파보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그간 소원했던 지인들과의 연락도 재개하며 마음을 기울이기로 했다 . 일상에 묻혀 항상 뒤로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잊혔던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어 매일 상당히 놀라고 있다.

돌아보지 못했던 내 마음, 누군가의 마음까지도 솜솜 뜯어볼 생각이다. 그토록 갈망했던 쓰기 활동도 '빼박일정'으로 실천해보기로 다시 스스로에게 약속해본다.



그리고, 10월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무르익은 가을, 볼 것도 갈 곳도, 할 것도 넘쳐나는 계절일 것이다.

갈빛 가을에 짜잔 하고 바깥을 겅중 뛸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일단은 '내 다리 찾는'게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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