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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Aug 23. 2024

이제는 거둬볼까

먹구름은 이제 없어졌음 좋겠어

글 서랍장에서 몇년 전  썼던  글을 발견했다.

그때의 감정들의 상기에  전기신호를 받은 마냥 찌르르 하고 심장이 반응했다.


그러나

안도했다.

그때의 폭발했던 감정은 적어도 끝이 나 있다는 걸,

얼룩 묻은 옷을 비벼 빨고 남은  징한 흔적이어도

그래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래서 다행이었다.


나는 '여전히' 벗어나고 있는 중이나,좀 더 다가간   끝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


<이어지는 글은 2020년 어느 날,내게 했던 말들과 마음의 기록입니다.>








나는 말이야.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어.

지금도 떠올리려고 애써보아도 떠오르는 기억은 단 몇장의 사진 같은 이미지들뿐이야.

그런데 말야. 참 씁쓸한 건 말야.

그 이미지들이 모두 참 아련하고 아프고 물에 흠뻑 젖은 사진 마냥 축 늘어진 모양새란 말이지.

나는 왜 햇살 받아 반짝거리는 해변의 조약돌같은, 그런 예쁜 추억들은 없냔 말이지.

그래, 양보해서 쥐어짜보면 어느 구석구석엔가 그래도 슬쩍 웃음이 나는 추억도 있긴 할텐데 말야.

굳이 그러고싶지도 않았지만 ,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양새가 될까봐 우스워졌던 모양이지.

난 그런 노력은 그다지 하지 않고 지금의 나이까지 살아온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말야.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상담 선생님께서 권해주시는 거야.

직면해보라고.

그때의 나에게, 그때의 상대방에게 말을 걸어보라는거야.

무슨 이야기를 할까. 지금 원망을 털어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마음 속으로 반항해보았지만,

글쓰기를 통해서 좀더 시각적으로 객관적으로 과거의 나와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을거란 조언에

시도해보기로 하고 여기 앉았어.


그런데말야. 자꾸 입을 다물고 싶어지는 것을 어쩌지.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그래! 한번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켠거야.

그런데, 이거 봐봐. 나 지금도 뱅뱅 돌면서 이야기에 들어가고 있지 않잖아.

내가 이런 고집이 있었네. 나도 몰랐던 방어기제가 아주 힘이 센 모양이야.

흠흠...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해볼게.


#한 겨울, 꽁꽁 얼어붙은 빨랫가의 어린 초등생 '너'에게

너는 지금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많이 슬프구나.

눈망울이 푹 젖어있어.

손이 빨갛게  시리구나. 쪼그리고 앉은 다리도 많이 저린것 같아.

얼음 낀 빨강 고무대야에 담긴 차가운 물을 퍼내면서 양말과 속옷을 빨고 있네.

고무장갑 낄  크기도 안 되는 손이라서 맨손인거야?

너무 물이 차서 빨랫비누도 녹질 않아 문질러지질 않네.

너는 지금 무슨 생각해?

집안에 있는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너를 이 추운 겨울날 굳이 마당의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라고 시켰을까?

왜 기분이 또 나빠져 있을까?

영문 모르고 너는 또 구박덩이가 되서 내팽겨쳐져 있구나.

바가지 머리, 말수없는 얘야.

나는 아직도 네가 많이 아프다. 너를 떠올리면 자동반사처럼 그냥 눈물이 솟구쳐나와.

소금에 절인듯 마음도 쪼글쪼글, 아픈 생채기가 쓰라리기만 하다.

나는 지금 마흔이 넘은 나이가 되었어. 마흔 셋의 나이를 지금 훌쩍 지나고 있는 중이야.

'어른'의 나이가 된 나는 아직도 너를 한번도 안아주질 못했던 것 같아.

그냥, 계속 너를 떠올리고 울고만 있어서 정말 미안해.

그런데말야. 너무 힘들었어. 지금도 사실 그래. 너를 직면하기가 너무 힘들어.

하지만 더는 미루지 않으려고해. 지금 그냥 너를 따뜻하게 안아주려고.

너의 발개진 시린 손을 따뜻한 나의 손으로 잡아주고,

추위에 얼어붙은 경직된 너의 어깨를 등뒤에서 따뜻하게 품어줄게.

혼자가 아니야.

그 너른 얼어붙은 마당에 너 혼자가 아니야.

네가 참지 않고 눈물 떨궈낼 수 있게 도와줄게. 내가 눈물 닦아줄거야. 맘껏 울어도 된단다. 얘야.

고개 들어 나를 봐. 너의 모습이야. 우리가 마주하는 그 순간 우리는 분명 달라져있을거야.

조금도 단단해지고, 견딜 힘이 생기고 , 감정을 품어 숨기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씩은 털어내면서

살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은 그렇게 강단이 생길거야.

이제 빨랫가로 나오기 전에 말해보는거야. 밖은 추우니까 나는 그냥 화장실에서 빨래하겠다고.

왜 나한테 화풀이하시는거냐고 물어보는거야.

더는 밀려나오지 않기. 조금만 힘내보기.

너를 지키는 것은 바로 너라는 것. 조금만 빨리 깨닫자.

 

아이야. 사랑하는 나의 아이.사랑하는 나.

건강하자.이제 연고 덕지덕지 그만 바르고 이제는 딱지 얹자.

그래서 새 살 돋자. 그럴수 있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너는 분명 더 더욱 행복해질거라고 장담해.분명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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