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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Apr 03. 2024

"이봐 학생, 사진 하나만 찍어줄래요?"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를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날 선 불쾌감


"이봐 학생, 나 이거 하나만 찍어줄 수 있어요?"


발제 아이템을 정리하고 기사에 추가 내용을 덧대기 위해 근처 스타벅스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던 차였다. '설마 나한테 한 소리겠어?'라는 마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50대 초반 정도로 보일 법한 중년의 여성분이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가죽 지갑 형태로 된 스마트폰을 내밀고 있었다.


삼십 대 중반도 이제 곧 끝나갈 나이에 학생이라니. 적어도 열 살은 아래로 봐준 셈이니, 이론적으로는 듣기 좋아야 할 말이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시청 앞 마을버스 정류소에서 퇴근길 인파에 뒤섞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여성 분이 사탕과 물티슈를 건네며 "예수 믿고 천국으로 가세요"를 연신 외쳤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천국보단 일단 집부터 가고 싶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끼고 있던 무선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다.


길거리 전도사께서는 "학생, 예수님 믿으세요" "아가씨, 이거 받고 뒷장 읽어보세요"라며 각기 다른 호칭을 통해 1대 1로 마주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접근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아무리 잘 봐줘도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옆 남성에게는 분명 학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저씨,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괜스레 기분이 상했고, 그날 저녁에는 오래간만에 마스크팩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나를 학생으로 봐준 여성 분에게 감사나 반가움류의 감정을 느꼈어야 했지만 왠지 불쑥 짜증과 성가심이 솟구쳤다. 뻔하다고 생각했다. 휴대폰을 받아 들면 분명 심리 테스트를 가장한 포교 활동이거나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부탁이겠거니. 왠지 께름칙한 휴대폰을 받아 들기조차 싫었다. 지나치게 밝고 쨍한 인상을 풍기는 여성의 옷차림에도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다시 가던 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다행히 뒤에서 날 붙잡지는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아쉬움에 한마디를 더 날리기 마련이라 얼마 걷지 않고 괜히 한 번 뒤를 돌아봤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진짜 '학생'이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는 열정적으로 사진 찍는 자세를 취했다. 50대 여성은 홍조를 띤 얼굴에 천진난만함을 드러내며 벚꽃 나무 아래서 포즈를 잡았다. 다소 올드한 포즈였지만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제야 도심 한가운데서 만개하기 시작한 벚꽃 나무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벚꽃의 만개함을 보지 못해 그 여성에게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면 정말 비겁한 변명이다. 내게는 그저 한 줌의 여유조차 없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를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날 선 불쾌감만이 들어차 있었다. 

MBTI가 ENFJ라며, 쓸데없는 오지랖이 넓다며 농담처럼 주변인들에게 해왔던 말은 겉치레이자 자기 방어일 뿐이었다.


50대 여성의 눈에 나는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행인의 부탁마저 들어주지 않는 팍팍하고 가시 돋친 인간' 정도로 비쳤을 거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처음에 목표로 했던 스타벅스까지 가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에 들어와 아무 음료나 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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