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를 습관처럼 보다가 감성 한 스푼 퍼 먹이는 영상을 봤다.
내가 죽었을 때 꽃은 필요 없어.
날 위해 울지 않아도 돼.
멀리서 오지 않아도 돼.
그저 잘 가라고 말해줘.
네가 그렇게 날 사랑한다면
뭘 기다리는 거야?
지금 내게 꽃다발을 안겨줘.
지금 내게 와서 만나자.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마.
지금 날 아껴줘.
화면 위를 가득 채운 자기 계발서 같은 자막들을 뚫고 나오는 분명한 메시지.
가끔 아주 가끔 내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베스티, 그러니까 절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move over!!’라며 관 속으로 같이 들어가려는 여성의 익살스러운 스킷 같은 것들을 볼 때면, 날 위해 울어줄 사람들과 적당히 점잖은 척하며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로 나뉘어질 그 순간을.
어디까지 나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행성처럼 너와 나 사이 궤도를 빙빙 돌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울어줄 사람들이
역시 필요해.
점잖은 척 고상한 척하지 말고 날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꺼지라고 해줄. 치졸해도 복수는 뜨겁게! 고인은 평화롭게 모든 걸 용서했습니다 따위의 말을 꺼내는 자는 분명 내 친구는 아닐 거야.
가능하면 떠난 후가 아니라
서로의 곁에 있을 때 뜨겁게 아끼고 돌보는 관계이고 싶어.
언제 한 번 보자가 아니라
점심 같이 먹을래 같은 일상어에 담긴 온도야말로
흔하디 흔해서 더 다정한 음률일 거야.
그러니
지금 내게 꽃다발을 안겨줘.
뭘 기다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