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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Dec 03. 2024

메모

공학대학 다니면서 옷 단속을 당했다. 농활인데 여자들은 반바지 입지 말라고 지령이 내려오더라고. 이유를 물었는데 합리적인 설명은 없었고. 웃긴 게 남녀 혼숙은 되는데 반바지는 안된다더라고. 귀걸이도 빼라고 하고.


술자리에서 성추행 당연히 있었다. 내가 당한 피해는 아니었고 동기들이 가해자 불러서 사과받고 했는데 안 당해도 될 일을 상아의 탑 안에서 프리뷰 한 셈이다. 나 역시 사회 나와서도 뭐 있었고.


그래서 신입이 들어오면 그러니까 여자 후배가 들어오면 신경이 곤두섰다. 만취시키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기에 여자 후배 두어 명은 내 손으로 빼왔다. 서로 좋아서 그러는 거면 상관없겠다만 만취 여성은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인사불성 된 후배를 업고 가다 내 등에 토하기도 했었다. 옷이며 가방이며 내 머리카락이며 난리가 났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저녁에 길을 가다 보면 만취한 여대생들이 업혀가거나 둘러메어져 가는 광경을 봤다. 생판 모르는 타인이라 간섭할 수 없었지만 지금도 여자를 업고 남자 동기들에게 엄지 척을 하던 그 남성을 기억하며 그때 개입했어야 했나 고민하곤 한다.


어느 팟캐에서 여대생들의 시위를 허구의 공포에 시달리는 노이로제 환자들의 소란으로 치부하는 짤을 봤다. 분리주의를 찬성하지도 않고 섞여 사는 게 좋고 맞다고 생각하지만 저렇게 무딘 말을 평이랍시고 내놓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세상을 혐오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상기한다.


편하고 안전히 저런 일들을 걱정하지 않고 공부를 하고 마음껏 이야기하고 오로지 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나아가고 싶은 일들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나 역시 매일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감당하고 감정을 쏟고 신경 쓰는 과정이 무척 피로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낀다. 하고 싶은 일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대응하고 싸우거나 넘길 때조차도 에너지는 계속 소모되니까.


길 가다 느닷없이 욕설을 먹거나 폭행을 당하면 남성들도 하루를 망친다. 그런 일이 빈도 높게 자주 일어나는 일상이란 어떨 것 같은지. 거기에 분노하는 시간과 에너지들이 얼마나 헛되고 아까운 것인지.


나는 진심으로 여성들이 대단히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일생을 저런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린다. 사람을 믿고 또다시 어울리고 끊임없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타인을 , 남성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안전한 공간을 원하는 마음과 타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모두 공존할 수 있다. 때로는 오답을 내고 여성들도 누군가를 핍박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인생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다른 길도 보인다.


세상을 분석하고 평한다는 이들의 저 무디고 게으른 언어들이 가리고 지우는 그 작은 아니 실은 작지 않은 경험들에 더 귀를 기울이고 요구를 들여다 보라. 선행되어야 할 문제들이 명료해진다.


인간은 스스로 안전함을 느낄 때 관용적이 된다. 물론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더 높은 가치를 외치는 게 진보의 본령이며 휴머니즘의 정수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발을 맞춰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돌봐야 한다. 함께 안전함을 느껴야한다. 그렇게 신뢰의 기반 위에 진보의 길을 내야 한다. 민주사회란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느끼도록, 그래서 서로 타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모두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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