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을 향하는 매끄러운 신체를 향한 강박
한국은 미에 대한 강박이 심한 사회다. 성형 강국임과 동시에 미용 산업에 쏟는 에너지도 엄청나다. 전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케이팝 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케이팝의 주요 요소를 안무나 음악, 뮤직비디오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이 산업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은 의외로 미용의료와 뷰티 산업이다. 케이팝은 눈으로 보는 음악이고 아이돌의 아름다움은 팬덤 유입의 가장 강력한 힘이니까. 이 영역만큼 한국인들의 외모에 대한 높은 기준을 잘 드러내는 산업도 없을 것이다.
.
.
.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던 억압이 마침내 먼 길을 돌고 돌아 남성을 향하고 있다. 원피스를 입고도 제모하지 않은 여성에게, 치마를 입고도 다리털을 밀지 않은 여성에게 가해지던 엄격한 평가의 시선이 이제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털 있는 남성을 향하고 있다. 케이팝 산업에서 드러나는 이 독특한 변화의 모습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역습의 예고라면 매끈하게 관리된 팔과 다리, 깨끗한 겨드랑이는 점점 더 강력하게 매력적인 남성의 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아이돌만이 아니라 일반 남성들에게도 요구되는. 여성이 자신에게 요구돼온 가혹한 미의 기준을 역으로 이성에게 적용하면서 남성에게 가해지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력도 급증하고 있다.
전부터 여성 신체에 대한 억압을 멈추라고 하는 이유는 이와 같다. 억압과 차별은, 그리고 더 나아가 혐오는 특정 대상에 영원히 고정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절대 그럴 수 없다. 흑인은 차별해도 된다는 말은 인간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명제를 아주 쉽게 파쇄한다. 결국 그 말은 특정 조건이 갖춰졌다면 어떤 인간은 차별해도 된다는 의미가 되니까. 논리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차별하면 안 된다’는 문장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그래야 진리가 된다. 더욱이 인류의 역사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매우 유동적으로 변동하며 발전해왔다.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투쟁하는 인간의 의지는 매우 끈질기고 강력해서 피지배층은 언젠가는 힘을 길러 위계를 전복한다. 그게 역사의 경향성이다. 그러니까 영원히 특정 대상에만 가해지는 억압이란 없는 것이다.
한겨레21 기고글 2025.08.20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78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