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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Jul 15. 2023

하이앤로우 더워스트 (2019)

서로에겐 서로가 있다.

만화 ‘크로우즈’를 좋아하는데 넷플릭스에서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한 영화가 바로 그 세계관이다.


‘크로우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크로우즈 제로’로 이미 2007년에 일본에서 개봉하고 이후 2008년 한국에서도 개봉했었다.


오구리 슌이 겐지로 출연했던 첫 개봉작은 무엇보다 액션 타격감이 충격적으로 좋았는데 약간 게임 같으면서도 둔탁한 느낌을 잘 살려내서 1:1 대결에 몰입도를 높이고 쾌감을 배가시켰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그 타격감을 이어서 살렸을까 궁금했는데 하이앤로우에서는 대신 화려한 카메라 연출로 장르 특성상 중요한 패싸움을 더 부각하는 선택을 했다.


하이앤로우에서는 크로우즈 제로에서 힘을 줬던 1:1 대결보다 크게 펼쳐지는 집단 액션씬에서 주요 인물들의 각개 격투씬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집단씬들과 주위 구조물을 활용하는 캐릭터들의 동작과 동선, 그리고 전체 싸움의 판세를 보여주는 다이내믹한 조망과 어울릴 수 있도록 연출했다. 특히 떼싸움 중에 주요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주는 개별 액션씬을 틈틈이 배분해 넣어서 놀란식의 웅성웅성 오 싸움이다 연출이 아닌 전투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잘 다뤘다는 느낌. 헬 건물에서 주인공 후지오가 난간과 계단을 뛰어오르며 친구인 아라타를 찾아 들어가는 씬에서 따라붙는 카메라 연출은 생각보다 촌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사실 눈이 얼굴 반만 하고 인체는 빼빼 마른 모에모에한 그림체를 질색하기 때문에 만화 원작 그림체를 정말 좋아하는데 두툼한, 그러니까 흘끔 봐도 진짜 싸움을 잘할 수밖에 없을 것만 같은 캐릭터들에 리얼한 의상과 스타일로 독자적인 특성을 한껏 부여해서 인물들 자체가 무척 다채로웠던 데다 무엇보다 성정상으로도 까리한 멋이 있는 주인공들이 진짜 한 무더기로 나왔기 때문.


영화는 다소 예쁜 아이돌 옷을 입고 여린 미남들이 대거 등장해서 크로우즈와는 괴리감이 좀 있었지만 흐린 눈으로 그래 싸움은 체격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실제로 영화에서도 후지오는 체구가 작아서 꼬마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금방 납득을 한 데다 워낙 캐릭터가 좋은 세계관이라 플레이하는 동안 무척 즐거웠다.


모두가 버리고 떠나간 폐허라도 지키고 싶은 게 남아있다. 가려진 막을 들춰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존재한다.


후지오와 그 친구들을 돌봐주던 할머니가 아주 오래전에 알려줬듯이 세상은 곧은 것들로만 채워져있지 않다.

가장 머리가 좋은 세이지는 타인의 기준에 맞춰 똑바로 자라기보다 각자의 방식대로 이리저리 휘며 커가는 존재들의 사랑스러움을 이해한다.


멋대로 휘었지만 그 누구보다 기운차게.

서로를 지탱하는 굽은 담쟁이들처럼.


할머니의 가게에서 함께 얻어먹던 굽은 오이는

아이들을 연결하는 자존의 근원이 된다.


‘세상이 우릴 버려도 서로에겐 서로가 있다.’


라는 단순무식한 약속이 그 무엇보다 안심이 되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피튀기는 세상 속에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은 후지오의 말처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알고 있는 거고 그 선을 지키는데 모든 것을 걸 줄 아는 사람은 타인도 구원할 수 있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유쾌한 일본 액션물.

즐거웠다.


#하이앤로우더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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