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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Oct 29. 2023

우정의 이름으로.

<프렌즈> 매튜 페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매튜 페리의 소식에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다. 디깅 해보니 처방에 의한 마약중독이 그를 오래 괴롭혔다고. 최근 들어 인상적으로 봤던 낸골딘의 다큐도 오피오이드 문제를 다뤘었다.

*<낸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예술가이자 활동가로서 약물중독 문제를 다루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무척 용감하다. 본문내용과는 별개로 오피오이드 문제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한다.


프렌즈는 성장기 내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었다. 미숙하기 그지없는 청년들이 서로의 결핍을 돌보며 타인을 보살필 줄 아는 성숙한 존재로 성장해 가는 서사는 그 자체로 일종의 친절한 가이드 북과 다름없었다.


내게 우정은 무용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거고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물질도 언어도 아닌 시간 그 자체라는 것을, 삶의 한 조각을 공유하고 나 자신만이 아닌 너와 우리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던 드라마기도 하다.


우리는 대개 개별적 존재로서 자신만의 독특함을 가진 개체들에 매료된다. 영민하고 감각적인, 예민하고 시니컬한, 유쾌하고 진취적인 각각의 개인이 지닌 고유함만큼 근사한 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제나 무너지는 지점은, 그러니까 대책 없이 마음을 나누고야 마는 것은 그런 개체의 고유성을 타인을 위해 잠시 내려놓을 줄 아는 다정한 순간들 앞에서였다.


모니카는 신경증적인 결벽증을, 레이첼은 이기적인 속물근성을, 로스는 자존심을, 피비는 사차원적인 정신세계를, 조이는 미성숙한 애착지향적 성향을 그리고 챈들러는 자기 방어적인 시니컬함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누그러뜨린다.


타인 앞에 그를 위해 자신의 견고한 자아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우정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무리 짓는 동물들처럼 언제나 카페 소파에 앉아 비생산적인 시간을 서로를 위해 열정적으로 쏟아붓던 그들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그 어린 나이에도 했었는데도 그럼에도 결국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기억들은 어떠한 성취나 명성이 아니라 그렇게 서로가 함께 허비했던 완벽히 무용한 시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언제나 한다.


중독과 공허함으로 힘들어했다는 매튜페리가 프렌즈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에게 했던 말을 트위터를 통해 전해 들었다.


너희를 만난 날이면 그걸로 괜찮았었다고.


실제 삶 속 그의 고군분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에게도 그가 연기했던 우정이 힘이 되었었길.


마약중독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는 이들도 적절한 도움과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결핍되고 미성숙한 서로를 보살피고 돌보면서 그렇게 살아간다면 조금이나마 이곳에서의 아픔들을 위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정이라는 이름으로라도.


May you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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