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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ABE KIM Apr 25. 2024

불안한 감정이 든다면

현실이 힘들고 불안한 너에게


브로콜리너마저 - 열두시 반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당시, 그때의 나는 불안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그때 내 삶엔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었거든. 나침반 없이 바다를 표류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런 생각을 하는 취준생이나 사회초년생이 생각보다 많을 거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게 산더미인데, 무엇이 답인지도 모르겠고 결정을 내릴 확신도 없을 테니 말이야.

 

근데 혹시 네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의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어? 내가 내린 답은 '현재 상황의 통제권이 내게 없기 때문'이야. 우리는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일 때 불안함을 느껴. 원하는 직장에 붙는 것도, 원하는 성적을 받는 것도 전부 내 통제권 밖의 일이지. 사실 인생에서 마음대로 통제 가능한 건 거의 없어. 그래서 난 통제권이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고민해 왔어. 오늘은 그걸 말해주려 해.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해라]

우린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힘들고 불안한 감정은 생존 본능이야. 원래 인간은 위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진화되어 왔거든. 그래서 이 DNA에 박혀 있는 감정이란 놈은 늘 우리의 통제권 밖의 요소야. 그러니 깔끔하게 인정해. "응 나 지금 불안하고 힘들다, 어쩔래" 이렇게 말야.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려고 할 때 우린 더 고통스럽다는 걸 기억해.


감정을 인정하고 나면 현상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거야. 감정적일 때 무언가를 결정하는 건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거 알지? 그렇기 때문에 불안함을 인정함으로써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먼 후일을 도모해야 해.


불교에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이 있어. 나는 이 말에 공감해. 인생이 고통이라는 건 안 태어나는 게 낫다는 뜻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삶엔 고통이 늘 공존한다는 걸 깔끔하게 인정해 버리고, 바꿀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번민에서 자유로워지라는 뜻이야. 염세적이지만 늘 그 끝엔 희망이 있는, 낭만적 염세주의자가 되길 바래.

 


 

[컨트롤 가능한 것만 컨트롤해라]

우리는 통제할 수 있는 것만을 통제하도록 노력해야 해. 네 권한 밖의 일이라면 전부 내버려 둬. 대기업에서 앞으로 공채를 줄이고, 경력직 위주로만 뽑을 거래. 신경 쓰이고 불안하지? 근데 이건 네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런 건 '변수가 아닌 상수'로 받아들여야 해. 통제를 수 없는 일에 네 소중한 에너지를 내어 주지 말고, 네 손 끝으로 잡아 끌 수 있는 것들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봐.


그리고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중 가장 네 인생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게 바로 '운'이야. 살면 살수록 내가 운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근데, 운이라는 놈도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온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린 이 제멋대로인 운이라는 놈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말고, 알아서 내게 찾아올 때까지 끈질기게 버텨야만 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이때 필요한 게 바로 '명확한 동기'야. 네가 버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무언가 말이야. 이걸 꼭 찾아 봐. 그리고 이 동기는 본성과 밀접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해. 예를 들어, 어릴 때 정말 가난하게 자라서 아주 큰돈이 벌고 싶다던가... 난 이런 거 정말 좋다고 생각해. 이런 본질적인 동기는 운이라는 놈이 찾아올 때까지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거든.


운이라는 게 안 찾아오는 것 같다고? 슬프지만 그럴 땐 답이 없어. 때론 비가 내리면 맞을 줄도 알며, 시간이 흘러 아픈 만큼 성숙해지길 기대할 뿐이지.

 


 

[가끔은 주변에 기대라]

요즘 사회가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판상형 아파트에 살던 유년기엔 '옆집 이웃'이라는 개념이 너무나도 흔했어. 근데 요즘엔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 그 여파인 걸까? 개인화의 반대급부로 고립감과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보게 돼.


난 이럴 때일수록 사람에게 기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지렁이를 밟지 않는 이유가 뭐야? 밟으면 지렁이가 아프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우리는 모두 고통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위로해 줄 수 있어.


남에게 기대어 버릇하는 건 분명 문제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 삭막한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는 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만약 네 감정에 공명해서 기꺼이 기댈 등을 내어 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 세상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분명 너도 그들에게 등을 내어 줄 만큼 따듯한 마음의 사람일 거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자기 효용감은 네게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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