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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Dec 27. 2021

한해를 마무리하며



2021년은 사실 힘든 한해였다. 이상하게 일이 안풀리고 맘고생도 제법 했었다. 다만 유익이 있었다면 그런 맘고생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또 깨달음 비슷한 것도 있었다.  연말을 맞이하여 올 한해동안 내가 얻었던 깨달음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1. 우리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해 범위 내에서 그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되고 삶의 자세를 결정한다. 스스로를 수동적인 존재로 이해하면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되고 그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존재로 이해하면 보다 적극적인 선택을 하며 살수 있다.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하는가 하는 것은 타인이 규정할수도 있고 자신이 찾아낼수도 있는데 타인이 규정하는 삶을 사는 방식은 주체적 방식이 아니기에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자신의 삶이라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규정당하는 삶을 살게 될 위험이 있다.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이다  


2. 주체적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용기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댓가가 타인의 오해나 또는 고독 같은것일수도 있고 또는 타협을 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유무형의 손해일수도 있다. 그 댓가는 일종의 성장통 같은 것으로서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인 삶으로 방향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니 너무 마음 상할 필요 없다. 일찌기 예수, 소크라테스, 브르노, 니체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고 각자 비용을 지불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 내었다. 


3.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얼 욕망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데 내적 강인함이 없이는 어렵다. 사실 나의 타고난 성격과 기질은 사회화를 통해 잠시 억압될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기에 거기에서 연유된 나의 장단점을 제대로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나의 욕망은 나한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을수 있기에 이를 냉정하게 구분하고 버릴건 버려야 한다. 공자님이 말하는 지천명이라는 경지는 이러한 자기이해와 자기긍정을 통한 나다움의 추구를 시작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4. 자신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결국 나다움을 극한까지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나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타인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 보다는 자신의 고유함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사는 것인데 이게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행복감을 외부적인 요인(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에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내부적인 요인에 의존하게 함으로서 진정한 자유와 내적 평화를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나다움을 제대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신뢰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못난 부분을 용납하고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 


5. 그리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삶이 논리적이 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논리적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설득할수 없고 그러면 자기 중심을 지키기 보다는 사회의 통념 또는 타인의 기대값을 따르게 된다. 논리적인 삶을 위해서는 끝까지 생각할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타인들의 편리하고 쉬운 통념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주는 힘은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생각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6.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고 쉬운 답에 만족하는 사람은 사실 발전이 없다. 쉬운 답에 만족하는 것은 일종의 자신을 속이는 행위인데 그 안에는 트라우마나 컴플렉스와 같은 감정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끝까지 생각할수 있으면 그 쉬운답에 만족하고자 하는 심리안에 숨어있는 자신의 감정적 방해요인을 발견하고 그 방해요인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곰곰히 헤아려보는 과정에서 치유와 내적 강인함을 획득하고 자기기만의 덫에서 풀려나는 자유함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과거가 주는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최선을 스스로에게 선물할수 있어야한다


7. 사실 타인의 평가라는건 그리 신뢰할게 못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그럴만한 수준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걸 전제로 한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기본적인 인격이나 성숙도가 안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인정을 갈구하는 행동은 그냥 어리석은 것이다. 연약하고 미숙한 인간은 사랑과 연민의 대상인 것이지 인정이나 판단의 주체가 될수는 없다. 게다가 타인은 어차피 나에 대해 잘 알수가 없다. 부족한 데이터와 왜곡된 렌즈로 관측을 하고 판단을 하는 것이기에 그런 판단에 너무 휘둘릴 필요없고 좀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또한 환상에 기인한 싸구려 칭찬에도 너무 우쭐할 필요도 없다.  


8. 또한 시련과 스트레스를 일종의 기회로 여길수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 없는 인생은 온실속의 화분처럼 나약해질 위험이 있고 적당한 시련은 약한 사람은 좌절하게 만들지만 강한 사람은 더 강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 시련에 대한 두려움은 주체적이고 용기있는 삶을 살기 위해 방해되는 요인인데 종종 그 두려움을 과장하는 동기에는 안주하려는 본성이 작용하기 쉽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여러 시련을 통해서 강해진 것처럼 지금의 어려움 역시 더 나은 도약을 위한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하는게 두려움을 줄일수 있고 새로운 시련에 제대로 대응할수 있다. 


9.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설령 그게 원망스러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원망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인데 그건 수동적인 삶의 자세이다. 충분히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상황이라고 해서 내가 반드시 원망하면서 괴로와해야 하는건 아니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할 선택권이 있고 그 선택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주체적인 인생이냐 아니면 수동적인 인생이냐로 나뉜다. 


10. 자신의 삶에 대해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면 보다 능동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도 가능할텐데 그런 기회는 건설적인 협력을 통해서 만들어질수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서 아름다운 교향악을 만드는 것처럼 각자의 개성을 가진 인간들이 협력을 통해 혼자서는 도저히 할수 없는걸 만들어낼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협업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관대할 필요가 있고 특히 타인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주목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다양성은 창조력의 원천이고 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관용이 필요하다. 긍정적 에너지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과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관용적 자세에서 나올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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