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탄 연구소 (자두를 보고도 감탄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1
이 마법은 “크리에이티브”라는 결계를 만들어 “다름” 외에는 모두 튕겨낸다.
쉽게 말하면 사과를 보고 ‘그냥 사과’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빌헬름 텔의 사과나 신데렐라의 사과, 미안할 때 하는 사과, 일과 이과 삼과 사과, 사과가 웃으면 풋사과 등
“다른 사과”만 통과를 시킨다.
“다름”도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색다름, 남다름, 별다름 등이 있다.
가끔은 특이와 특별이란 녀석들이 원 플러스 원으로 합쳐져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들은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서 조금만 머뭇거리면 상하거나 썩고 만다.
만약 평범이 결계에 접근하는 순간 어떻게 되냐고?
자기 혼자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기만 하다가 배가 터져서 죽어버린다. 욕을 하도 먹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을 사랑하게 된다면 죄책감이라는 떫은 감을 맛보며 살아야 한다.
죄도 아닌데 죄책감을 맛보게 되는 것 또한 마법이다.
도대체 당신 뭐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법에 걸렸냐고?
나는 광고쟁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CF 감독이다.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에서 "시인은 자두를 보고도 감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대한민국 인구의 극 소수만이 하고 있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지드 할아버지 말을 성경말씀처럼 생각했다.
오직 이 말씀만이 이 직업에서 나를 구원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흡이 긴 영화감독은 소설가, 호흡이 짧은 CF 감독은 시인이라 생각했으니..)
그 결과 나의 뇌는 그 말씀에 따라 뉴런의 자기장 신호를 재편성했고 결국 마법에 걸려버렸다.
물론 혼자서 길을 걷다가 주택가 벽에 박혀 있는 스프링쿨러 송수관을 보며, 지구를 침범했다가 하필이면 공사가 많은 대한민국에 와서 어쩌다 보니 콘크리트에 갇힌 외계인이 떠올라 미친 사람처럼 혼자 키득대는 영혼의 풍요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까지 침범한 이 마법 때문에 굉장히 힘들 때도 있다.
왜냐하면 반드시 HP와 MP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상관이 있든 없든 발동이 걸리면 뇌는 에너지를 쓰기 시작한다.
조금 전에 먹은 순대국밥에서 추출된 포도당을 과도하게 소비하며 끊임없이 감탄의 이유를 찾아낸다.
더군다나 하루 종일 마음속이 왁자지껄 시끄러운 것은 덤이다.
일반 직장인의 예를 든다면 시도 때도 없이 직장 상사에게 전화 오는 스트레스와 같다.
당신은 어떤 마법에 걸렸는가?
혹시 그 마법 때문에 스스로나 주변인들이 힘들어하지 않았는가?
무섭게도 어떤 마법은 마법에 걸린 것조차 모르게 하는 마법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보탄 연구소를 하냐고?
이런 마음 아는가?
우리 아이가 전교 1등인데 주변 부모님들이 "아유~ 너무 부러워요." 하면 “아니에요. 애가 얼마나 예민한지 조금 피곤해요." 하고 뒤돌아서서 씨익 웃는.
“사과가 사과지 무슨 뜻이 있어!”
나는 오늘 이 주문을 백번 외쳐봐야겠다.
씨익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