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일기 Mar 12. 2024

아침에 갈 곳이 있다는 행복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도 감사하자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런던에 와서 매일 들뜬 마음으로 출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몸과 마음 모두 천근만근이다. 


시험이 끝나고 약간의 번아웃이 온 것도 같다.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아니 할수가 없어서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그러다 출근을 하려니 발걸음도 무겁고, 런던의 날씨는 3월에도 왜이리 쌀쌀한지 밖에 나가고 싶지가 않다. 


내 인생이 꼬일대로 꼬여서 한없이 지하로만 내려가고 있던 때, 나는 미치도록 출근이 하고 싶었다. 어디든 내 자리를 찾고 싶었다. 여의도와 광화문에 빽빽히 불켜진 빌딩들을 지나가며, 저 사무실 가운데 내 자리가 과연 있을까 자신없어 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법률사무소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면 점심도 주고 월급도 준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기쁘기만 했었다. 


지금의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 주어진 일처리를 하면,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월급을 매달 꼬박꼬박 지급해준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그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는 일인데, 그 일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맡겨주고 또 월급을 준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해야할 일이다. 심지어 나는 회사에서 준 월급으로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내내 그런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냐고 한다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보통은 월요병이 일요일부터 찾아온다고 하는데, 난 토요일 저녁부터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는게 감사하고 때때로 재밌기도 했지만 동시에 늘 괴로움과 압박감이 있었다. 출근하는것 자체가 너무 고역이었던 날들도 정말 많았다. 월급이 왜이리 순식간에 사라지냐며 불평한 적도 있다(그건 당연히 내가 썼기 때문이지만). 다시 한번,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런던에 와있다.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해외생활, 런던의 직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도 바로 회사다. 얼마든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올수 있었던 기회인데 그 기회를 내게 주었다. 그런 기회를 무의미하게 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런던의 회사는 재택근무와 결합한 하이브리드 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매일 회사에 나오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어두컴컴한 방에만 쳐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출근을 해서 하다못해 영어 한마디라도 더 하고,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회사에 나와 메신저에 등록해둔 팀원들의 사진과 이름을 번갈아 확인하면서 이름을 외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Be Useful"을 읽고 있는데, 어디서든 사회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평소 내가 생각해왔던 바와 매우 일치해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 누구든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 사생활 문제는 제쳐두기로 한다. 모든 것을 떠나 나는 그와 그의 삶을 존경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이민자가 미국 주류 사회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성공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해낸 일이 얼마나 어렵고 드문 일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책 속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것은 당신이 부자도 아니고, 지능이나 운동능력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될 때까지 미친듯이 반복하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내 생각엔 이 열심히 하는것 조차도 재능인 것 같긴 하지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동시에 내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내가 직장생활에서 찾고자 하는 바다. 그런데 사실 "필요한 사람"이 되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일은 그 누구라도 대체가능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도 분명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고, 유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러니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이 찾아와도, 몸을 벌떡 일으켜 다시 사무실 책상 앞으로 돌아온다. 런던에서 아침마다 출근할 사무실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에서 본 "리어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