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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C Nov 21. 2020

비운의 연쇄 살인마 아일린 워노스 03.

General Observation 01

* 대문자로 표기한 단어들은 LMA 용어입니다.



 움직임 분석가마다 자기만의 분석 루틴이 있다.  경우에는 분석 대상과 자료가 정해지면 바로 분석에 들어가기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일종의 '관람 모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일린 워노스에 경우는 전편에서 언급한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분석 대상의 움직임의 특징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부분을 추리기 위함도 있지만 분석에 들어가면 아무리 숲과 나무를 같이 보려 한다고 해도 자칫  맥락을 잃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맥락이 가장  숲이고  숲의 '캐릭터' 찾아내기 위해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  나무들의 군집들 중에서  숲을 대표할만한 집단을 골라내는 작업을 먼저 하는 것이다. 서울로 치자면  지역() 대표하는 동네() 가려낸다고   있다. 대상과 목적에 따라서 특징이 될만한 부분을 2, 30 내외로 적으면 하나 많게는 서너 개까지 동네를 추린다. 한편으로는 너무 분석하는 데에만 치중하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는 것이 바로 general observation, 일반적인 관찰이다.  그대로 general, 일반적이고 대체적인, 대강의 이미지를 잡아내는 과정인데 첫인상이 이것의 대표적인 항목이다. 그림을 그릴  스케치를 하면서  부분에는 이런 느낌으로 가야지, 여기에서는  색을 써야지, 등의 생각을 하는 식이라고   있겠다. 일종의 계획이랄까.


 내 경우에는 그림을 그리다가 메모를 하거나 하면서 본다. 그리고 clustering을 하는데,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마인드 맵핑이다. 그렇게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과 마음을 울리는 소리들을 잡아낸다. 필요한 경우에는 입으로 분석 대상의 움직임의 흐름과 리듬에 맞춰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우우웅, 우우웅, 호오잇, 우랴랴랴! 이러고 있는 나를 누군가가 보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이상한 사람이 있다며 구경을 하든 피하든 할 것이다.  어쨌든 자칫하면 미친 여편네로 보일 수 있는 이런 행위를 한바탕 거하게 하는 구간이(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고 다른 분석가들도 이렇게 한다는 건 아니다) general observation, 일반적 관찰 구간이다.


 






아일린 워노스의 첫인상 Imagery by JC



 어딘가 조악한 구석이 있는 이 그림은 아일린 워노스에게 받은 첫인상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고 했지 잘 그린다고 한 적은 없단 것을 굳이 말하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 찾아온 괜스레 마음에 걸린 머쓱함을 달래겠다. 이 그림에는 '움직임 분석가 JC'편에서 잠시 언급했던 '고대 정령 소환진', 바로 Motif에 들어가는 움직임 기호들이 있다. 얼굴로 추정되는 그림의 턱 부분, 입술 바로 밑에 있는 기호와 얼굴의 아래 dry mouth 옆의 가로 선 위에 사선이 두 개 그러진 기호, 그리고 그 밑에 눈썹 양 옆에 위치한 뭔가 달려있는 네모 안에 꽁다리가 달린 알파벳 C가 들어있는 기호 두 개가 그것들이다. 이 녀석들의 정체는 곧 밝히겠다.


 다큐멘터리 속 보이는 아일린 워노스의 수많은 모습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눈(그림 좌측 하단, 검은 점 두 개가 달린 네모 안에 꽁다리가 달린 C)이었다. 그녀의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불안정한 동공 너머 어딘가에서 수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눈은 눈썹, 입과 함께 어우러져 온갖 긴장과 불안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워노스는 매서운 눈빛으로 맹렬하게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어로 쓴 자격 논문에서 dagger(단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단검으로 무엇인가를 찌르는 행동을 생각하면 내 느낌이 어땠는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간에, 신이 나거나 슬플 때에도 워노스의 눈은 항상 굉장히 강렬하게 눈을 활짝 열고(wide open) 부라렸다. 물론 마구 흔들리는 초점과 함께. 위의 그림에서 눈을 빙글 뱅글 돌아가게 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눈 밑의 살이 늘어져 있고 다크서클이 심했다(그림에서 눈 바로 밑의 부분). 코를 그리지 않은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의 제일 위에는 그녀의 첫인상을 표현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Deer in headlights." 헤드라이트에 비친 사슴을 말한다.



 야심한 밤에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가로등도 띄엄띄엄 드문드문 있어서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범위에만 의존해야 하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이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주변에 차는커녕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운전자는 이때다 싶어 신명 나게 액셀을 밟아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저 멀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도로로 뛰어든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

 으슥한 도로의 갓길 한 구석 덤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몇 번을 더 바스락거리더니 자그마한 두 귀가 쫑긋, 하고 덤불 위로 올라왔다. 가족을 찾아 헤매는 중인지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다니는 건지 모를 이 녀석은 이제 막 사춘기 딱지를 뗀 사슴이었다. 그렇게 덤불숲을 헤매며 흐르고 흘러 갓길까지 온 것이다. 덤불 사이만 오고 가다가 하늘보다도 더 시커멓고 딱딱한 바닥이 사슴의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 많은 이 사슴이 차는 위험한 녀석인지, 저 녀석에게 들이 받히면 그 자리에서 요단강을 건너게 되는지 알리가 있겠는가. 저 멀리에서 차가 신나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사슴은 반짝이는 눈으로 총총거리며 도로를 향해 자신의 몸을 내밀었다. 한두 걸음 걸었을까, 순간 반짝, 하더니 땅에서 유랑하고 있는 것 같은 별이 별안간 사슴의 눈앞에 들이닥쳤다. 그 빛에 놀란 사슴의 눈은 눈알이 튀어나올 기세로 커졌다.

 운전자는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으니 그리 긴장하지도 않은 상태였으리라.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던 그의 콧방울에 검은 뭔가가 걸렸다. 그의 머리가 이 물체의 정체를 밝히려고 뇌의 이곳저곳을 쑤시기 시작하자마자, 그 검은 물체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비친 가련한 사슴 한 마리가 되어 식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헤드라이트에 비친 사슴의 얼굴 표정을 나타내는 말이 'deer in headlights'이다. 아일린 워노스의 표정이 딱 저랬다. 아주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Deer in headlight syndrom'이라는 현상이 있는데, 이는 불안, 공포, 공황 등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마비된 상태를 말한다. 왠지 워노스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워노스의 눈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많은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함께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제 막 그녀를 알기 시작한 내게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저 느낌이었을 뿐.  어쨌든 그 혼돈과 공허로 가득 찬 눈을 보며 처음에는 마약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는 했지만 이내 마약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약이 깊게 자리 잡아 잘못하면 분석에 영향을 미쳐 편중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되려 집중을 흐리게 만들 것 같아서였다. 물론 마약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는 없는 대상이지만 최대한 편견 없는 시선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영상 속 워노스의 얼굴에서 눈 다음으로 눈에 띈 점은 표정이었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이는 거의 대부분의 그녀의 눈썹은 미간 쪽으로 한데 모여 있었고 눈가, 턱, 입술까지 합세하여 한껏 찡그린 표정을 보였다. 그로 인해 이마에도 가로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혀있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광대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너지가 없달까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달까. 마치 얼굴을 눈, 광대, 입술의 세 영역으로 나누었을 때 눈과 입술 영역의 연결점이 차단되어 있는 듯한(disconnection) 느낌을 주었다. 위의 그림에서 코를 그리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부분에 꽤나 흥미로운 또 다른 점이 있지만 BESS Analysis편으로 미루겠다.


 워노스의 입(그림 우측 하단, 뒤집어진 호(arc)가 그려진 네모와 그 안에 있는 꽁다리가 달린 C)은 양쪽 입꼬리가 항상 긴장과 함께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여기에서 보이는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그림에서 입술 밑에 위치한 기호) 바로 Shape의 사용이다. Shape은 LMA의 가장 큰 네 가지 기본 범주(Body, Effort, Space, Shape: BESS) 중에 한 범주로, 환경과 나와의 관계가 움직임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보여주는지에 관한 항목이다. 이 범주는 각각 Shape Flow(나만 있음), Directional Shape(관계는 상관하지 않고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움직임), Shaping(내가 대상에게 '어떻게'가는지, 환경과의 관계가 중요한 움직임)의 세 개의 하위 범주로 나뉘며 각각의 하위 범주에 평균 대여섯 개 요소가 있다. Dry mouth 옆에 있는 기호가 Shape Flow의 기본 기호이다. 입술 밑에 있는 기호는 Shape Flow에 속한 요소 중 우리 몸의 수평선(Space: 공간적 측면)에 해당하는 요소로, 양 극단에 있는 꼬부랑 선이 왼쪽에 붙으면 옆으로 펼치는 움직임(Spreading), 오른쪽에 붙으면 에워싸는 움직임(Enclosing)을 뜻한다. 저 기호는 이 둘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다. 워노스의 입술이 흥미로웠던 점은 이 양극단의 두 요소가 따로 보이거나 함께 보이거나 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얼굴이 3D 입체라고는 해도 입술은 입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입꼬리를 내리거나 입을 모은다고 해도 '펼치다' 혹은 '에워싸다'는 표현에 적합한 움직임을 보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입술의 움직임은 질적인 측면에서 Spreading과 Enclosing의 특징을 보이고 있었는데, 사실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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