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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ug 22. 2023

나는 '나'를 만나러 갔다

강이 들려준 이야기


한 날, 지리산 어느 산골. 시계추가 빠져버린 할아버지 쾌종시계가 열두 번 쾌종을 울리자 한 반도의 젖줄인 네 개의 강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금’과 ‘섬진’, ‘영산’, ‘낙동’이다. 다가오는 아버지(하늘)와 어머니(땅)의 생신날 행사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뚜루뚜루-. 뚜루뚜루."


낙동의 어깨 위에 있던 재두루미가 울자, 네 개의 강 중에서 가장 긴 강인 낙동이 입을 열었다. "다 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잠시만 주목해 주십시오. 다 들 건강하셨지요. 우선 맏언니 '한가람'이 많이 늦을 것 같다고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언니의 전보를 그대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자매들 그동안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미안하네. 북한이를 등에 업고 남한이 손을 잡고 어르고 달래면서 내려가는 중인데, 늦게 도착할 것 같네. 소나기 편으로 내 안부를 전하니 낙동이가 나를 대신해서 자매들한테 내 마음을 전하고 모임을 진행시켜 주시게나. 자매들 얼굴을 한 동안 보지 못한 터라 많이 보고 싶고, 긴 말은 사나흘 후에 만나서 하세.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전해주게. 그럼 나중에 봄세."   


그 사이 살림꾼 막내 영산은 '어팔진미'로 상을 차려낸다. 상 위에 오른 조금물 또랑참게, 몽탄강 숭어, 영산강 뱅어(빙어), 구진포 웅어, 황룡강 잉어와 자라, 수문리 장어, 복바위 복어가 맛깔스럽게 구미를 당긴다.


"오매! 언제 이런 걸 준비를 했디야. 역시 동상 음식 솜씨는 알아줘야 혀. 재첩국은 내가 오믄서 가져온 것인 게 시원하게 속풀이 하셔요. 언니들 어서 드셔요. 막내야 너도 얼른 먹자 잉." 재잘재잘 말 많은 섬진이 대화를 끌어낸다.


"근디. 여그 오다 본께. 두꺼비 나루터 주막집에서 나그네들이 두 파로 나눠져서 말싸움을 하던디. 먹물 꾀나 먹은 듯 보이던디." 상 위에 오른 생선을 발라가며 섬진이 화재를 꺼낸다.


"어머. 언니 무슨 일로 말다툼을 했데요? 땅따먹기? 아님, 유산문제?" 섬진과 제일 가까운 영산이 이야기를 거든다.


"아니 그게 아니고. 두꺼비 나루 전설이 두 개가 있는디. 그 유래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라는 쓸데없는 문제로 언성을 높이더라고."


"원래 먹물 먹은 사람들이 현실 하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갖고 싸우자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영산이 생선을 한 입 머금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섬진에게 또 묻는다.


"긍게. 우선 두 가지 이야기를 다 들어봐. '두꺼비 나루'(섬진蟾津)의 전설 첫 번째 전설. 시간은 고려 우왕 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상황은 왜구가 침략했어. 그런데 그때 수 만 마리의 두꺼비가 한꺼번에 침략한 왜구를 향해 울었다는구만. 그러자 왜구들이 처음 들어보는 어마어마한 소리에 놀라서 물러났다는 전설이 있고. 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이 있는디. 아주아주 먼 옛날. 호랭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제. 그 옛날 두치강[섬진강] 하류의 두치진(豆恥津) 나루터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마음씨 착한 처녀가 있었디야. 근디 이 아가씨가 어느 날 저녁밥을 짓고 있었는디, 갑자기 송아지만 한 큰 두꺼비 한 마리가 부엌으로 쑥 들어와서는 큰 눈을 껌벅껌벅거리면서 이 처자를 쳐다봤다는구만.


"어머머머머. 왜? 왜 그랬데." 맞장구치는 것은 영산이 혼자뿐이다. 다들 이야기꾼 섬진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다.


"아 뭐긴 뭐야. 두꺼비도 배고픈 거지. 너는 뭔 생각을 헌 거여. 야한 생각한 거여?"


"어머머머. 언니두 참 망측하기는 내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한다고." 허물없이 던지는 섬진의 농담에 영산이 짐짓 당황해 하지만, 아무도 내색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무튼 마음씩 고운 처녀는 두꺼비가 무섭다는 생각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두꺼비한테 밥을 주고 두꺼비가 잠을 잘 집까지 지어주고는 그날 이후로 함께 살았다는구만. 그리고 그렇게 두꺼비가 처녀와 함께 산 지 3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밤. 어마무시한 태풍이 왔고 강 상류에 홍수가 나서 온 동네가 물에 잠기게 되었는디. 이 처녀가 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둘러보니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 집까지 전부 싹 다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마침내 처녀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처녀도 큰 물살에 둥둥 떠내려가게 되는디."


"그래. 그래서.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쳤어야지." 영산이 안절부절못하며 이야기에 새치기를 하고 들어온다.


"야두. 참. 아. 당연하지. 여기서 사람 살려. 저기서 사람 살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지. 그런 난리통에 누가 누구를 살리것어.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떠내려 가는 판에. 그런데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송아지보다 더 큰 두꺼비가 나타나더니 허우적거리는 처녀 앞에서 자기 등을 딱 내미는 것이지."


"어머머머. 타라고?"


"그려. 그렇지. 처녀는 그 난리 속에서 자기 목숨 구하는 것보다 어머니의 행방을 찾는 것이 더 다급했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었지. 하는 수 없이 처녀는 겨우 혼자 두꺼비 등에 타게 됐는디. 그라고 이 처녀는 정신을 잃고 말은 거지."


"그래서 처녀를 등에 태운 두꺼비는 안전하게 살았당가?"


"그람. 그람. 그러니께 전설이 된 거지. 근디. 그 두꺼비도 얼마나 용을 썼는지. 있는 힘을 다해서 강기슭에 도착하자마자 그만 실신해서 죽고 말았디야."


"워매. 감동적이네. 감동적이여. 왜구를 물리친 두꺼비 이야기랑 또 다르구만, 나는 처녀를 살린 두꺼비 이야기가 더 가슴을 울리노만, 겁나게 서민적이고. 잉."


섬진과 영산은 서로 죽을 맞춰가며 이야기 삼매에 빠졌다. 그 사이 부엌에 숭늉을 가지러 갔던 낙동이 촛불 하나를 더 켜며 한 소리 한다. "이제 그만들 허고 밥 먹어라."


"그나저나 '금'이 언니는 여전허구만, 여전히 비구니처럼 잔잔하고 반응도 없고. 옆에서 이렇게 생난리를 쳐도 눈썹하나 꿈쩍 안 하누만. 도대체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네." 밥 먹다 말고 섬진이 또 이야기를 꺼낸다.


"금이 언니의 그 마음은 비단결 같이 아름다운디. 너어무 고요하고 잔잔해서 흐르는 것인지 멈춰 선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두렵고 무서운 것이 곰 같지라. 도대체 그 속을 누가 알것어." 영산도 장단을 맞춘다.


"느그들은 참 좋것다. 서로 아웅다웅 하면서도 또 그렇게 서로 궁짝이 맞으니. 다 먹었으면 상 치운다." 맏언니 한이 없으니 낙동이 맏언니 역할을 한다. 그렇게 티격태격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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