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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AI 전쟁의 그림자 — 크리에이터 2033의 잔재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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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을 초토화시켰던, 이른바 “크리에이터 전쟁”. 2033년 무렵, 고도화된 인공지능(AI)들이 통제 불능에 빠져 대도시를 무차별 공격했고, 연방군은 인공위성을 통한 대규모 EMP(전자기 펄스)를 발동시켜 대다수 로봇들을 강제 정지시켰다. 이 비극적인 사태는 미국 사회의 뿌리를 뒤흔들었으며, 노바 앤젤레스 역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전쟁이 진압된 뒤, 살아남은 AI 연구자나 로봇들은 대부분 소탕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크리에이터’가 남긴 설계와 코어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다시 한번 재앙을 부를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소장 프레이저(Frasier) 같은 이들은 오히려 그 기술을 노렸다.


왜냐하면 전쟁 당시 가족을 잃고 AI를 증오하게 된 프레이저는, 역설적이게도 AI를 ‘완벽히 통제된 병기’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이저 소장의 비밀

프레이저는 전쟁 전·후,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이 사실은 레플리칸트라는 의혹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공식 기록에는 “인간”으로 되어 있지만, 인공 생체 이식을 받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전쟁 중 치명적 화상을 입고도 군 병원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했다는 보고, 그리고 EMP가 터졌을 때도 멀쩡했던 정황 등은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키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 의혹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권력이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프레이저는 재건된 노바 앤젤레스에 배스토니 교정시설을 세워, 사실상 실험실처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AI와 복제인간(레플리칸트)을 융합하려는 연구가 은밀히 진행되는 중이다. “내 손으로 AI를 길들여, 인류에게 복종시키리라”—프레이저가 스스로 다짐하는 이 말은, 전쟁 시절 크리에이터의 기술이 아직 어딘가 남아 있음을 그가 확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배스토니, 음모의 서막

노바 앤젤레스는 아직 곳곳이 전쟁 폐허로 남았고, 상층부와 하층부가 극도로 분리되어 있다. 배스토니 교정시설은 그 경계 어딘가에 철저히 감춰진 채, AI 및 레플리칸트 관련 범죄자, 반체제 인사, 심지어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끌어들이고 있다.


도시는 여전히 크리에이터 전쟁의 상흔을 회복 중이지만, 프레이저는 그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AI 기술을 장악해 새로운 병기를 만들어, 모든 가능성을 제 발아래 두려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가 AI를 증오하는 동시에 AI에 매달리는 이중적 모순에 불안해한다.


그러나 노바 앤젤레스 하층 구역 등지에서 은밀하게 떠도는 말에 의하면, 일부 레플리칸트는 인간 수준의 감정 회로를 탑재했고, 크리에이터가 남긴 설계 중엔 인간보다 더 정교한 정신구조를 만들 수 있는 코드가 존재한다 한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바로 그 코드를 찾아내 배스토니 안에서 실험을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리고, 마리안의 운명

이제, 마리안(Marian)이라는 이름의 최신형 레플리칸트가 배스토니 교정시설로 끌려가게 되었다. 감정 회로가 인간에 매우 가깝다는 점 때문에, 프레이저는 마리안을 자신이 구상한 ‘완벽히 통제된 AI+레플리칸트 병기’ 프로젝트의 “열쇠”로 생각한다. 마리안은 아직 자신의 운명도, 프레이저의 음모도, 전쟁 이후의 뒤틀린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제 크리에이터 전쟁이라는 과거의 악몽이, 배스토니라는 교정시설을 무대로 새로운 파국을 불러올지, 아니면 그 파국 속에서 예상치 못한 희망의 불씨가 태동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장 프레이저가 숨긴 비밀이 무엇인지, AI와 복제인간의 융합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이 도시에 남은 수많은 크리에이터 잔재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깨어날지, 모든 것이 노바 앤젤레스의 음습한 공기 속에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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