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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장가 안 갔으니 망정이지.

by 캉생각

가끔 투덜대지만, 우리는 또 사이는 좋은 부모 자식이다.

일 년에 최소 한 번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지 않은 적이 없다. 가깝게는 전주 한옥마을, 속초 바닷가, 통영에 가기도 하고, 싱가포르, 호주, 일본, 크루즈를 가리지 않고 함께 다닌다. 놀다 보면 대부분의 비용은 아들이 내지만, 나는 이것이 아까워 본 적이 없다(카드 값을 보고 놀란 적은 있지만).


결혼도 안 한 아들이 돈을 어디 쓸 것인가? 결혼 자금에 쓸 것인가, 아기 학원비에 보탤 것인가? 나는 부모님에게 돈을 쓸 때는 '이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니야?' 생각한다. 나에게 모든 걸 주려 했던 사람들에게 돌려드리는 기분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내 돈 쓰며 부모님 가이드해 드리는 효자아들이다.


내 착한 누나는 가끔 내 편을 드는 듯 말한다.

"엄마, 아들이 장가갔으면 그렇게 여행 못 다녔어."

나도 빼놓지 않고 거든다.

"맞아. 요즘 결혼하고 나면 시댁 쉽게 못 온대."

그러고는 MZ 며느리와의 어색함을 구구절절 상상시킨다. 명절 눈치, 육아 간섭 금지, 따로 사는 게 당연한 세상. 엄마가 상상하던 며느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은근슬쩍 알려드린다.

그럼 엄마는 볼멘소리로 말한다.

"그건 그렇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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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행을 좋아한다. 동네 공원 산책은 물론이고, 아빠랑 차를 끌고 그냥 계획 없이 전국을 누비고 다니기도 한다. 이따금 자식도 모르게 해외에 나가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는 습관처럼 여행 말미에 꼭 나에게, 누나에게 이곳에 다시 같이 오자고 한다.


"엄마 거기 몇 번 갔잖아."

우리가 되물어도 자식이랑 오고 싶단다. 그리고 간 여행지에서 엄마는 다시 처음 온 사람처럼 기뻐한다. 이미 사진을 찍은 장소에서 나를 다시 넣어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엄마다운 여행의 완성이다.


다만 엄마는 매 여행마다 나뿐 아니라 누나네도 데리고 가고 싶겠지만, ‘딸’ 한 사람이 아닌 '딸네'가 되어버린 판에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단다. 매형, 조카 둘, 거기에 스케줄 조정까지. 그에 비하면 혼자 사는 아들은 정말 간편하다. 전화 한 통, 차 한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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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엄마의 환갑을 준비해야 한다. 여행러버 엄마답게 환갑에는 미국 여행을 아빠와 동반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어? 아빠의 환갑은 이미 챙겼는데, 다시 두 명분의 환갑을 준비해야 한다.


거기다 엄마는 사실 나도 같이 갔으면 한단다. 아들이 있으면 든든하고, 특히 영어 할 사람이 필요하단다. 그렇다. 나도 영어 못 하는 엄마 아빠를 타국에 보내는 마음이 불편하다. 가이드가 따로 붙기야 하겠지만…

환갑 여행에 아들을 데려가고 싶은 엄마 마음도 복잡할 것이다. 장가가지 않은 아들이라 쉽게 부르고 데려갈 수 있지만, 한편에는 아쉬운 마음. '이 나이에 아직 아들과 다녀도 되나' 하는 씁쓸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엄마도 세상을 살며 느낀 세상의 진리를 이제는 본인에게 적용해야 한다.

“다 가질 순 없다.”

얼굴도 보기 힘든 아들과 며느리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아들과 쉽게 자주하는 삶을 가질 것인가. 일단 엄마는 후자를 얻었다. 원했던 건 아니지만, 대단히 나쁘지 않다는 걸 알고 계신다.


물론 나 또한 그 진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자유를 가졌으면, 그만큼 잘 살아야 한다."

자랑스런 아들로, 치열한 사회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결혼하지 않은 못된 아들, 나는 이렇게 산다.

불효자인 내가 엄마의 손을 잡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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