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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피네올리브 Jan 06. 2021

닭장 떡국 소꿉놀이

설날 닭장 떡국 끓이기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만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꽃피네올리브의 말을 듣고, 하늘에서 내려온 두 요정들은 부리나케 여러 가지 재료들을 준비하여 닭장 떡국 만들기를 하며 소꿉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세상 최고의 떡국은 머니머니 해도 어머니의 닭장 떡국인데, 하늘나라 올리브 요정인 공쥬와 삼식이의 소꿉놀이를 들여다보면서 꽃피네올리브는 아련한 기억을 더듬었다.  녀석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맛깔난 훈수를 두어가면서, 꽃피네올리브 또한 어머니 손맛이 나는 닭장 떡국 끓이기에 도전하였다.



떡국떡을 만들려면 일단은 쌀을 준비하자.


떡국떡 만들기


"삼식아 쌀이를 봉지에 담고 떡방앗간에 떡국떡 가래떡이리를 뽑으러 가즈아"

"그랭 공쥬야. 한 서되 가지고 가서 떡 만들어 올까 보낭?"

"3되씩이낭? 그거 다 먹을 수 있쩡?"

"꼬람 꼬람~ 난 앉은자리에서 단 숨에 열 그릇도 해치울 수 있다궁. 내 뱃속엔 동지섣달 굶주린 귀신들이 살고 있다아~ 흐흐"

꽃피네올리브는 불현듯 쌀을 퍼서 돈 사거나 라면으로 바꿔 먹었던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어머니 몰래 쌀을 퍼서 배드리 버드나무가 집이며 그 맞은편 호천리 점빵에다 팔았던 기억들이 따스한 봄날 아침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 아지랑이들은 "아이! 어지러워" 하면서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더니 어머니 계신 하늘로 하늘로 한없이 올라갔다. 그랬다. 그때는 군것질할 돈이 없어 부모님 몰래 다들 쌀을 퍼 날랐다. 큰 놈들은 가마니째로 팔아 가끔 읍내에 들어서는 커다란 천막 안 서커스 공연도 보러 가고, 농사일이 고달파 서울로 애임 나갈 여비로도 쓰고, 작은놈들은 책보로 쓰는 보자기에다 한 두 되씩 퍼 돈사서, 과자나 사탕이나 환장하게 맛있는 라면으로 바꿔 먹었다. 꽃피네올리브는 이 두 요정들의 떡국 만들기 소꿉놀이를 빌어 그때, 배고팠던 때, 설날에 먹었던 어머니 손맛을 더듬어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떡국떡은 무슨 쌀로 만들어욤?"

"찹쌀? 아님 멥쌀?"

이런 이런 함포! 당연 날마다 밥 지어먹는 멥쌀 아니겠음! 하하

가자 가자 멥쌀을 퍼서 애마 삼천리 자징게에 실고선 배드리 잔등을 넘어가자.~


이윽고 도착한 해남 고도리 복례떡방앗간~ 좁은 골목길의 때꼽자국이 흐르는 낡은 건물 사이로 높다랗게 매달린 간판을 쳐다보니 갑자기 하늘에서 파란 물이 쏟아져 내려와 꽃피네올리브와 공쥬와 삼식이를 물들였다.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해남 복례떡방앗간 2021. 1. 2

꽃피네올리브는 직접 짠 고소한 참기름이며 들기름을 사러 자주 해남 복례떡방앗간에 들렸는데, 그때마다 딸인지 며느리인지 젊고 아리따운 처자가 먹어보라고 떡을 권하곤 하였다. 그 싹싹한 정에 이끌려 참기름 사러 갈 때는 예나 지금이나 으레 그 집만 들른다. 또한 그 집은 참 싸게 판다. 요즘 말로 가성비랄까 2홉들이 소주병 가득 한 병에, 향내 끈한 참기름이 겨우 만원, 들기름은 2만 원이니 말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어서 오세요" 하는 기분 좋은 인사말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래떡의 뜨거운 김에  실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공쥬와 삼식이는 뿌연 김 속에 몸을 숨기고 커다란 가래떡 판을 두고선 "묵이네" "두부네" 하고,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뿐더러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요정들의 언어인 하늘나라의 우주어로 서로 우김질을 시작하였다.

"이야~ 맛있는 두부다. 삼식아"

"아냥 공쥬야. 저건 요즘 세상에서 막걸리 안주로 핫한 묵이라공!"

"이 바부야. 묵이는 색깔이 튀튀한 색깔이자눙! 저건  새하얀 두부라고!"

"아냥! 저거슨 분명 묵이가 틀림없어!"

꽃피네올리브는 안경을 벗어 서린 김을 닦으며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저거 두부나요?" 그랬더니 세상에나 대답은 두부가 아니고 가래떡이랬다. 저 두부판 같은 떡판을 기계 속으로 주걱으로 쑤셔 넣으면 기다란 가래떡이 되어 나오고, 이 것을 식힌 다음, 썰면 떡국떡이 된다고 알려주었다.  '으이구 쪽 팔려라! 넌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구나!' 하고 민망해할 때, 젊은 주인장이 미소를 지으며 갓 뽑은 가래떡을 뚝 떼서 먹어보라고 건네주었다. '그래 암만. 이 맛에 오는 거지 머' 하하

뜨거운 가래떡을 식히는 빨간 패션 장화의 주인장.
왼쪽: 꽃피네올리브가 두부라고 생각했던 가래떡판. 오른쪽 떡판을 가래떡 기계에 올린 후 쑤셔넣어 가래떡을 빼는 모습

자전거로 실고 온 쌀 봉지를 건네며 얼마냐고 물으니 씻고, 불리고, 건져내고, 물을 뺀 후 쪄서 가래떡을 뽑아 썰어주는 데까지 한 되 당 8천 원, 진공포장은 되 당 천 원, 서되니까 2만 7천인데, 포장비는 전부 에누리하여 2만 4천 원만 내라고 하였다. 꽃피네올리브가 가져간 쌀은 멥쌀 중에서도 찰기가 많은 한눈에반한쌀이었다. 주인장은 한눈에반한쌀처럼 찰기가 많은 쌀은 미리 알려주어야 빻아 가루로 만들 때, 다른 쌀보다 물을 적게 뿌리고 빻는다고 하였다.

떡쌀, 떡국떡 만드는 과정

1  갓 도정한 일반 찰기가 적은 멥쌀을 준비한다. 멥쌀 중 찰기가 많은 멥쌀 종류는 떡국을 쒔을 때, 일반 멥쌀보다 쫀득쫀득한 맛이 없다
2. 잘 씻어 한나절 정도 물에 담가 불린다.
3. 광주리에 넣고 물기를 뺀 후, 두 번 곱게 빻는다. 첫 번째 빻을 때는 물을 치지 않고, 두 번째는 물을 살짝 쳐서 빻는데, 찰기가 많은 멥쌀일수록 물을 적게 친 후 빻는다.
4. 떡가루를 시루에 앉혀 찐다.
5. 기계의 가느다란 구멍을 통하여 압축된 가래떡이 만들어진다.
6. 가래떡을 썰어 떡국떡을 만든다.


Before & After 2일 걸려 뽑은 떡국떡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오늘날, 이것저것 손 노릇 하기 귀찮으면 그냥 떡방앗간에 쌀만 가져가면 된다. 그것마저도 귀찮으면 방앗간에서 미리 만들어 포장해 놓은 떡국떡을 사면 된다.


옛날에는 적당히 말린 가래떡을 아들, 손자, 며느리 모두 오손도손 둘러앉아,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호롱불에 일일이 가래떡을 썰고, 그 옆에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고 온갖 세상살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떡국떡이 너무 촉촉하면  "오늘따라 떡이 칼에 착 달라붙어 썰어지지가 않네" 하고 옆의 대야에 담긴 물에 칼날을 싯고, 긴긴 동지섣달 그믐날 밤을 새워가며 가래떡을 썰었던 것이다.



이제 떡국에 넣을 닭장 만들기를 하즈아!


닭장 만들기

준비물

1. 통 생닭 900g-1Kg
2. 국간장
3. 마늘 큰 2스푼
4. 생강 큰 반 스푼


"닭장 떡국은 좋은데 닭이의 냄시는 시로~ 시로~ 생닭이를 사러 어디로 갈까요~ 산으로나 갈까요~"

"그야 장날 고도리나 매일시장 닭집에 가야지빙!"

"공쥬 너 요전 해남 장날에 닭전머리 닭이들 냄새 심해서 토 나온다고 하면서 다신 닭장 떡국 안 먹는다메?"

"삼식이 넌 안 그랬냐? 또 안 그랬다고 또 오리발이를 내밀 거지빙?"

"닭전 닭이의 냄새는 토 나오고, 맛있는 떡국은 먹고 싶고… 우짜지 우리 코 막고 닭전에 갈까바나?"

"닭이를 파는 시장 할머니들께는 지송하지만 이따만한 큰 마트에 가서 손질된 닭이를 사자"

"콜! 전통시장아! 정말 미안하당. 내년에 새 건물 지어 냄시가 안 난다면 꼭 다시 올게"

공쥬나 삼식이처럼 요즘 사람들은 전통시장 같은 낙후되고 허름한 곳에는 가지 않으려 한다. 대형마트에서 잘 손질된 생 통닭 두 마리를 사서는 룰루랄라~ 후다닥 집으로! 바쁘닷 바빠! 바야흐로 본격적인 닭장 만들기 소꿉놀이가 시작되었다.

"삼식아 닭이를 잘라조"

"알았쪄 공쥬야. 으샤라차찻! 일도양단 닭다리 얍!"

삼식이는 무쇠로 만든 무거운 칼을 들어올린 후, 힘찬 기합을 넣어 닭뼈까지 단칼에 베는 일도양단 검법을 우당탕 시전하였다. 그 기세가 얼마나 등등하였던지 푸르게 마른하늘에서는 번개가 번쩍거렸고 "너 이눔 삼식아!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는 듯한 닭의 영혼이 외치는 뇌성이 끊이지 않았다더라.

"칼 조심햇!" 하는 공쥬의 뾰족한 목소리에 "알았쪄 이릉건 식은 죽 먹기야" 대꾸하면서 삼식이는 닭이를 도마 위에 놓고, 왼손을 닭에서 떼고 오른손으로만 무쇠칼을 들어 일도양단 검법을 시전하였는 바, 눈 한 간에 닭들은 한입에 먹기 좋게 토막이 되었다더라~


그렇다. 무거운 무쇠칼로 생닭을 토막칠 때, 자칫하면 닭 대신 손가락을 자를 수도 있으니 공쥬의 염려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랫동네 무쇠돌이의 왼손 검지의 한 마디가 짧은 것은 수년 전의 설날 닭장 떡국 탓이 아니었던가!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생닭 뼈를 무쇠 칼로 예리하게 절단해야 했던 이유는 한 칼에 절단하지 않으면, 뼈가 으깨져 부스러기가 생겨서, 떡국을 먹을 때 그 찌끄레기가 입 속에서 닿고 씹혀서 영 먹기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무쇠 칼로 토막낸 생닭. 마늘과 생강을 버무리고 국간장과 물을 1:1 비율로 부어 하룻밤 동안 재워두웠다.

"우와~ 삼식이 너 참 대단하다야" 공쥬의 감탄에 우쭐해진 삼식이가 "공쥬님 마늘이하고 생강이도 까서 조져삐릴까유?" 하였다. 삼식이는 토막이 된 생닭고기에 팡팡팡!~ 마늘과 생강을 투하하였다. "마늘 앞으로! 생강이도 앞으롯!" 하며 대충 두들겨 으깬 마늘과 생강을 닭고기에 향이 잘 배도록 사정없이 문질러대었다. 그다음 백운동 오삼촌 집간장을 들이부었는데~ 그 용량은 다음과 같았다. 닭고기 900그램짜리 두 마리에 마늘 한 통, 약 2-3 큰술, 생강 1 큰술에, 국간장 2컵, 물 2컵이었다. 그리고 곧장 냉장고의 냉장칸에 하룻밤 동안 재워두었다. 오! 땍깔이가 쥑여주는 고로고!

국간장에 재운 생닭, 팔팔 3분 동안 가열하면서 기름과 찌꺼기를 제거

마늘과 생강으로 머무린 후, 같은 비율로 물을 탄 국간장에 하룻밤을 재워 두었더니 간장물이 배어 닭고기 색깔이 갈색이 되었다. 그것을 커다란 웍에 통째로 붓고선 센 불로 가열 시작! 국물이 끓기 시작한 후, 위에 둥둥 뜬 기름이며 핏물 찌꺼기들을 제거하였는데 일일이 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3분 동안 팔팔 끓인 후, 온수로 헹구어버렸다.

3분 동안 가열한 후, 온수에 기름과 핏물을 제거

그랬더니 살짝 덜 익혀 붉은색이 여전히 감도는 닭고기에 엉겨붙었던 마늘과 생강, 핏물이 응고된 덩어리며, 뼈가루들은 물론 기름까지 모두 다 잘 제거되어 닭장의 간장 색깔이 말개졌다. 생고기를 양념과 간장에 재는 이유는 생고기를 바로 삶으면 간이 잘 안 배고, 잘 배도록 푹 삶아버리면 고기가 맛이 떨어지고 질겨져 먹기 사납기 때문에, 국간장에 하룻밤을 재워 간이 배이게 한 후, 살짝 끓여 부드럽고 맛있는 닭장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때 찬물로 헹구면 고기가 딱딱해지므로 온수를 사용하였다. 너무 짠 것은 꽃피네올리브의 입맛에 별로이니까 약간 짭조름한 정도의 최종적인 닭장을 만들기 위해서, 헹군 닭고기에 다시 국간장 두 컵과 물 두 컵, 1:1의 비율로 붓고 센 불로 가열하였다.


삼식이는 고기가 질겨지지 않도록, 끓기 시작하자마자 3분 후 불을 껐다. "공쥬야 3분 타이머 노래해 조~"

"닭이야~ 닭이야~ 어찌다가 꼬기가 되었니? 꼬기야~ 꼬기야~ 미안해~ 공쥬는 닭장 떡국 먹고~ 언능 한 살 더 먹고 싶어~ 정말 미안해~"

째깍째깍~ 마치 3분을 맞춰놓은 타이머처럼, 잠시 후 공쥬의 동요 같은 묘한 노랫소리가 끝나자, 삼식이는 불을 끄고 닭장 국물 위에 둥둥 뜬 기름을 마저 걷어내었다. 그리고 뜨거운 닭장을 차가운 곳에 하룻동안 두니까 허옇게 기름이 굳었는데, 공쥬와 삼식이는 숟가락으로 기름덩어리를 살살 걷어내어 드디어 먹음직스러운 닭장을 만들었다.

닭장 만드는 방법

1. 손질된 생닭을 준비한다.
2. 기름을 발라낸다.
3. 무쇠 칼로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낸다.
4. 마늘 큰 2-3 스푼, 생강 1 큰 스푼을 닭고기에 잘 문질러 준다.
5. 국간장 2컵, 물 2컵을 부어 냉장고에 하룻밤 재워둔다.
6. 웍에 붓고 팔팔 3분간 끓인다.
7. 온수로 잘 헹구어 핏물과 기름이며 찌꺼기를 제거한다.
8. 다시 국간장 2컵, 물 2컵을 넣고 가열한다.
9. 하루 동안 차가운 곳에 두어 기름을 걷어낸다.


국간장과 물을 1:1 비율로 넣고 3분 동안 팔팔 끓인 끓인다. 차가운 곳에 하룻동안 둔 다음 굳은 기름을 제거한다




자~ 닭장도, 떡국떡도 있겠다. 드디어 맛있는 설날 닭장 떡국을 만들어보즈아!


설날 닭장 떡국 끓이기

준비물

1. 떡국
2. 닭장
3. 소금 또는 공쥬의 눈물 3방울
4. 구운 김가루
5. 지단, 있으면 올리고 없으면 말고


"왕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맛있는 설날 닭장 떡국을 끓여 볼꺼나~"

"오케~ 이제부터 신나게 끓여삐리자~"

들뜬 공주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곰돌이가 수놓아진 앞치마 고리에 쑥 고개를 집어넣자, 공쥬의 영원한 딸랑이 삼식이는 잽싸게 곁으로 다가와 공쥬의 허리춤에 앞치마 끈을 질끈 동여매어 주었다.

 "그렇지! 그렇지! 남자들은 크나 작으나 여자 말을 잘 듣고, 온 몸으로 떠받들어야 행. 그래야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지빙. 안그랭?"

"뉘예뉘예~ 공쥬뉘~임"

공쥬의 찰랑찰랑한 목소리는 목덜미를 완전히 가리고도 넘쳐서 등 뒤를 뒤덮은 검은 머리카락단처럼 완전히 삼식이를 압도하였고, 이에 삼식이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그녀만을 향한 방울을 마구 딸랑거렸다.


요정들은 큼직한 냄비에 국자 가득 손수 만든 닭장을 넣고, 물을 붓고선 불을 댕겼다. 순식간에 부엌방이 가스불과 두 요정들의 설날 닭장 떡국 소꿉놀이의 열기가 어우러져 뜨거워졌다. 밖에는 북극한파가 한반도를 덮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는데, 부엌방을 뚫고 나온 열기는 차가운 공기에 섞이자마자 아롱다롱 형형색색의 오로라가 되어 하늘 도화지에 기묘한 수채화를 그렸다.


이때 부엌방 문이 삐그덕 열리고 "동작 그만!" 난데없이 홍두깨 같은 호령이 울렸다. 고을에서 막걸리 한 잔을 찌클고 돌아온 꽃피네올리브가 두 녀석의 소꿉놀이를 잠깐 중지시켰다. 그리고서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몇 가지 훈수를 두었다. 그는 거나한 취기를 감추고자 일부러 벽에 매달린 시계를 지긋이 응시하면서 "가스불 한쪽은 지단을 부치고, 한쪽은 떡국을 끓이거라. 모름지기 일류 셰프가 되려면 반드시 일타쌍핀가? 아 맞다. 일타이피! 비피 먹고 똥피 먹고!, 동시에 두 가지 요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란다"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구동성

"녭!" 대답 한 번 시원하였다. 이에 한층 고무된 부엌방 대장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일장 훈수를 이어나갔는데, 라면 끓이기보다 더 간단한 닭장 떡국 끓이는 방법을 장황하게도 늘어놓았다.

"라면을 끓이듯이 라면스프와 같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하는 닭장 떡국을 먼저 넣고, 물을 붓고 팔팔 5분간 끓이거라. 연후 떡국떡을 투하하고 2분 동안 더 끓인 후, 싱거우면 마지막에 소금 간을 하거라. 간장 간을 하면 국물 색깔이 거무튀튀하게 되어 만인이 보시기에 민망하여 고상하지 않느니라. 알겠느냐?" 하고 꽃피네올리브가 말을 마치자마자, 이번에도 역시 요정들의 힘찬 합창이 부엌방 안에 가득히 울렸다.

"녭! 녭!"

"자 그럼 삼식이에게도 하늘나라의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꾸나" 공쥬를 바라보며 꽃피네올리브가 동의를 구하는 듯한 어조로 운을 떼었다. "삼식이 너는 이 쪽 가스불을 사용해서 떡국을 만들어보고 공쥬 너는 일류 셰프라고 우기니까 저 쪽에서 지단과 떡국을 동시에 끓여 보거라. 이 몸은 가장 난해하고 어렵다는 김가루를 만들겠노라"

"하나~ 둘~ 셋!" 시작 신호와 동시에 공쥬와 삼식이 두 요정 녀석들은 라면 끓이기보다 더 쉬운 닭장 떡국 끓이기를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꽃피네올리브가 맡은 바 임무를 끝냈다. 중간 불에 김을 앞뒤로 쉭쉭 구웠다. 그 후 스테인리스 그릇에 넣고 비벼서 김가루를 만들었는데 굽는데 5초, 손바닥으로 비비는데 5초~ 딱 10초가 걸렸다. 꽃피네올리브는 흡족하여 '으하하하 닭장 떡국 만들어 먹기 정말 쉽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편 삼식이는 꽃피네올리브의 훈수대로 냄비에 닭장을 넣고, 물을 붓고 물을 끓였다. 닭장물이 끓기 시작하자 5분 후, 떡국을 넣고 2분간을 더 끓였다. 그리고 불을 껐다. 삼식이가 왕할머니가 남기고 가신 투박한 그릇에 떡국을 담아 부엌 대장 앞에 있는 소반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공쥬를 약 올리기 시작하였다.


"나눈~나눈~ 다 끓여지롱~ 다 끓였지롱~ 고명이를 올리야겠눈뎅 지단이 기둘리다 목빠지겠데이" 이런 삼식이의 놀림 비슷한 재촉에 공쥬는 더욱 다급해져서 지단 부치기가 영 신통하게 되지를 않았다. 노른자와 힌자를 분리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는데 실패를 거듭해 쌓인 달걀 껍데기가 수북해졌고, 대기하던 계란들이 공쥬의 가녀리고 파릇한 손목을 비웃고 있었다. 갑자기 공쥬는 서러워져서 엉엉 울었다. 어찌나 서럽고 원통하게 울었던지 하늘나라에까지 닿아, 그만 왕할머니의 단잠을 깨우고 말았다. 왕할머니, 그러니까 꽃피네올리브의 하늘나라 어머니는 공쥬의 울음소리에 놀라서 피루루룽~ 표! 표! 표! 버선발로 내달았다. 왕할머니는 부엌방과 하늘나라를 잇는 오로라를 타고 황급히 내려와 공쥬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왕할머니는 계란을 톡 깨서 촤라라락 힌자와 노른자를 섞어 프라이팬에 투척! 순식간에 둘둘 말아서 도마 위에 놓고서 썰어 고명을 완성하였다. "녀석아! 설날 닭장 떡국에 무슨 지단 타령이냐. 라떼는 닭장 떡국은커녕 섣달 그믐날 굶어 죽은 귀신들이 송장굴에 허다하였거늘!" 꽃피네올리브는 너무나 익숙하고, 그립고, 인자한 환청에 그만 목이 메이고 눈가가 흐려져 소매로 재빨리 눈시울을 훔쳤다. 오로라의 계단을 올라가시는 왕할머니를 가지 말라고 공쥬는 앙앙, 삼식이는 엉엉 떼를 쓰며 울었다. 이때 공쥬의 진주 구슬 같은 눈물 세 방울이 냄비 속으로 똑똑똑 떨어져 들어갔다.

"자. 이리들 오너라. 맛있게 왕할머니표 설날 닭장 떡국을 들어 보자꾸나" 하고 꽃피네올리브가 수저를 들어 먼저 삼식이의 떡국을 맛보았다. 소금 간을 하는 것을 빠뜨렸나 보다. 너무 싱거웠다. 그다음 차례로 공쥬가 끓인 떡국을 한 수저 먹어 보았다. 공쥬 역시 소금 간을 깜박했는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간이 딱 맞아 그 맛이 일품이었다. 왕할머니께 하늘나라 가시지 말고 떡국 같이 먹자고 떼를 쓰고 앙앙 울었을 때 흘렸던 공쥬의 눈물방울 세 개가 냄비에 떨어져 신기하게도 간이 맞은 것이다.

"어서 먹자. 이 한눈에반한쌀로 만든 떡국은 찰기가 많아서 정말 빨리 퍼지므로 얼른 먹어야 한단다."

"공쥬 떡국이는 싱겁고, 떡국물은 간이 맞고, 닭꼬기는 짭조름해서 맛이가 정말 좋아유" 삼식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공쥬를 칭찬하자 "난 공쥬니까 소금 들어간 것은 못 먹어욤. 삼식이가 끓인 싱거분 닭장 떡국이가 제 거보다 훨 맛있쪄욤" 하고 공쥬가 삼식이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였다. 발그래한 볼을 숨기느라 공쥬는 삼식이의 싱겁디 싱거운, 맑은 떡국 그릇 속에 얼굴을 쳐 박고 한동안 고개를 쳐들지 못하였다.

공쥬의 설날 닭장 떡국은 닭장의 간장물이 우러나오지 않아 맑았으며 보기에도 깔끔하였다. 떡국을 입에 넣자 부드럽고 촉촉하며 쫀득한 식감이 환상적인데, 싱거웠다. 이어서 닭고기를 한 입 하였는데 입 안 가득히 짭조름한 육즙이 고여 떡국의 싱거움을 없애버렸다. 부드러운 고기 맛에 한없이 감탄하면서 닭뼈를 쪽쪽 빨 때의 식감과 맛은 도저히 형용하기 힘들었다. 다시 떡국과 국물, 그리고 닭고기를 번갈아 먹으면서 한 사람과 두 요정들의 숟가락들은 바삐 그릇 안을 들락날락거렸다.


"공쥬와 삼식이 너희들 소원이 무엇이냐?"

"나이 많이 먹는 거예유. 저희들이 하늘나라 요정들 중 나이가 젤루 적거들랑요"

"그래서 천 살, 만 살~ 빨리 먹고 싶어욤"

"그래? 그거 참 희한하구나. 인간세상에서는 나이를 안 먹으려고 다들 지랄발광을 하는데 말이야. 아무튼 새해,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단다"

"지는 한 번에 열 그릇 먹고, 나이도 한꺼번에 열개나 먹고 싶어유. 공쥰 배가 작아 조금밖에 못 먹으니깐 오늘 생긴 나이 10개 중 5개는 공쥬에게 줄게유"

"날마다 이런 닭장 떡국이만 있으면 인간세상에서 오래 오래 놀다가 가고 싶어욤"

"녀석들아. 농부가 돈이 어딨냐. 이러다간 기둥뿌리 뽑히겠구나. 허허"


달그락달그락~ 공쥬와 삼식이는 한없이 떡국을 먹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 옆에 꽃피네올리브가 한 잔술과 닭장 떡국의 기분 좋은 포만감에 취해 스르륵 긴 잠에 빠져들었다.  후에 공쥬와 삼식이는 하늘나라의 통금시간을 어겨 인간세상 외출금지 1백 년의 벌을 받았다고 전설은 전하더라.



닭장 떡국 끓이는 방법

1. 냄비에 닭장을 넣고 물을 부은 후, 우러나오도록 5분 이상 팔팔 끓인다.
2. 고명은 없어도 되지만. 넣을 때는 기호에 따라 미리 지단이나 계란말이를 얇게 썰어 준비해 놓는다.
3. 충분히 닭장을 끓인 후, 떡국을 넣고 저어가며 2분을 더 끓인다. 딱딱하게 말린 떡국은 물에 불려 끓인다. 일반 멥쌀 떡국은 찰진 쌀 떡국보다 더 많이 끓이며 일반 멥쌀 떡국은 2분보다 살짝 더 끓인다. 끓는 닭장 물에 떡국을 넣고 둥둥 뜰 때까지 센 불로 끓인다. 떡국이 동동 떠오르면 약한 불로 저어 가면서 1분 정도 더 끓인다.
4. 그릇에 담아낸 후, 고명으로 지단이나 계란말이를 올리고, 구운 김가루를 넣는다.
5. 떡국쌀은 일반 멥쌀이 더 쫀득하며, 한눈에반한쌀 같이 찰기가 많은 쌀은, 매우 빨리 퍼지므로 반드시 닭장 물이 팔팔 끓은 후 넣어야 한다.





제목: 공쥬와 삼식이의 설날 닭장 떡국 소꿉놀이

출연배우

주연 : 수석요리사 하늘공쥬

          보조요리사: 공쥬의 딸랑이 삼식이

조연 : 꽃피네올리브

찬조출연 : 왕할머니(꽃피네올리브의 어머니)

연출 : 꽃피네올리브

감독 : 꽃피네올리브


꽃피네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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