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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Dec 24. 2023

크리스마스라면 선물과 기적이 있어야 해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

(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돈 없는 서민을 쥐어짜는 자본가는 혼내줘야 하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한다. 


이야기하려는 본능. 이건 이건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만큼 억누르기 힘들다. 특히 이런 권선징악형 이야깃거리는 세월이 흘러 흘러 자연스레 보편적인 내용으로 정리가 된다.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화목 난로, #트리 장식, #선물 교환 같은 해시태그가 떠오르는 이유도 긴 시간 동안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이런 해시태그를 걸러 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장면 장면이 해시태그(#) 감이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 또한 식상하다. 줄거리는 아동용 전래동화처럼 뻔한데도 이 영화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많은 사람들이 크라스마스에 바라는 소망이 녹여 있기 때문이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못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에 사람들이 경험한 사연 중 일부는 세월이 흐르며 가공되어 역사가 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에 제 눈에 안경 식으로 바라본 대로 전달할 수 밖엔 없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운데 전형적인 교훈, 감정을 전해준다면 이런 이야기는 원형(archetype)이 된다. 흔히 세대를 거슬러 전해지는 전설, 민화, 동화는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권선징악에 대한
이야기 본능


이미지 출처: IMDb.com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새 작품을 촬영하기 전 꼭 재관람을 한다고 언급한 영화, 연말이면 영어권 국가에서 단골로 방영하는 명절용 TV 영화. 사골처럼 우려먹으며 방영하는 데도 해마다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는 영화.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서양 사람들이 떠올리는 전형적인 가족 이야기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권선징악형 만담(漫談)에 가깝다. 줄거리는 아동용 전래동화처럼 뻔한데도 이 영화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이 크라스마스에 경험하고, 바라고, 느끼는 모든 이야기들이 녹여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신기하게도 우리를 엄청난 행복감(euphoria)에 취하게 만든다. 누구라도 크리스마스엔 행복하길 바라는, 우리가 전형적으로 꿈꾸는 소망이 이 영화에 담겨 있어서다. 하지만 이 마법 같은 동화가 끝나버리면 관객들은 다시 각박한 현실을 깨달으며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붕 들뜨게 하면서도 착 가라앉히는 이 요망한 고전 영화. 왜 세월이 흘러도 인기는 여전한 걸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장 불행한 남자


이미지 출처: IMDb.com


조지 베일리(제임스 스튜어트 역).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다리 위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다. 돈이 없어 자신이 운영하는 금융사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조지가 처한 위기를 알게 된다.


자, 이제 천사들은 회의를 한다. 조지가 살아온 인생을 살펴보자. 그런데 이 남자, 알고 보니 오로지 남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겐 작은 마을을 벗어나 세상을 여행하고 대학도 다니고 건축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천사들은 토론을 이어간다. 그가 어쩌다가 이토록 삶에서 희망을 잃게 되었는지 살펴보니 조지는 중요한 사람마다 주변을 위해 자기 꿈을 희생했던 것이다.




평생 남을 위했던
이타주의 화신


이미지 출처: IMDb.com


만약 내 곁에 조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든든할 거다. 조지는 인생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일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동안 이타적인 삶을 몸소 실천해 왔던 남자였다.


조지는 어릴 때부터 주변을 도왔다. 꼬마 시절 한쪽 귀 청력을 잃으면서까지 또래 친구를 도왔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상점 사장이 자신을 오해하고 체벌해도 오히려 곤경에 놓인 사장을 도와주려 했다.  그는 성인이 되면 고향을 떠나 세계를 누비며 좋아하는 건축물을 구경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건축가가 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환으로 갑자기 쓰러지자 기꺼이 아버지가 몸 담았던 서민주택금융사 일을 승계받는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조지는 늦게나마 자기 인생을 살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이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는다. 이 회사가 거대 자본가인 구두쇠 포터 때문에 곤경에 처했던 것이다. 이 금융사에 돈을 맡겼던 마을 서민들은 생의 위기에 처한다. 


우리에겐 아직 몇 달러가 남았잖아.
이걸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결국 그는 신혼여행까지 포기하며 긴급 자본을 수혈하고 끝끝내 회사를 회생시킨다. 회사가 부도에 임박했을 때조차도 이 남자가 보이는 낙관적 태도는 현실에서 불행한 우리들을 마법처럼 치유한다.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은 해피엔딩인데도, 너무나 마법처럼 우리가 원하는 결말이기에. 




서민 가장,
자본가에 맞서다


이미지 출처: IMDb.com


자본가 포터는 호시탐탐 조지가 승승장구하는 행로를 계속 막으려 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 조지는 서민들이 더 이상 자본가에게 임대료를 뜯기지 않고 자기 집을 마련하게끔 주변을 끝까지 돕는다. 그가 조성하는 서민 주택단지는 그 마을 주민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상징이었다. 


조지가 사랑하는 아내는 또 어떤가. 아내이기 전 같은 마을에 사는 18살 처녀였던 메리는 조지와 서로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결혼 후 현모양처의 상징이 된다. 마을에 버려진 허름한 집을 알뜰히 수리해서 터전으로 삼고 심지어 결혼식 날 조지가 속한 주택금고 부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도 여행비를 손수 조지에게 주고 신혼여행을 포기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선 이렇게 자본가에 맞서서 서민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저지한 사례는 없다. 조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우리네 서민 가장을 대표한다. 그는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마다 주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면 도움을 청하는 손길이 눈에 밟히니 결국 고향을 떠나지 못했다. 


돈 없는 서민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었던 조지. 하지만 그는 끝내 자본가의 경제적 위협에 맞서지 못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생을 스스로 마감하려 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원형이다. 정확히 말하면 삶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돈 없는 서민이 크리스마스 기적을 겪는 내용이다.  그 누구라도 크리스마스엔 행복하길 바라는, 우리가 전형적으로 꿈꾸는 소망이 이 영화엔 담겨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방송되는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지겹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 본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關心)_Kino Psycho] 2023.12.24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headla.it/articles/6N-tVCw7PAz3Yh04qOF70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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