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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06. 2024

초록의 시간 883 슬픔도 떼구루루

쇼팽 녹턴 No 2 Op 27

이파리들도 때로는 꽃이 되고 싶어서

은행잎이 사철나무 위에 내려앉아

초겨울을 따스이 밝히는

노란 꽃이 되었어요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보면

생각나는 하루 여행이 있어요

오래전 초겨울 이맘때

은행잎 부스스 지붕 위에 내려앉은

그 어느 차가운 날 그녀와 함께

하루 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바스락 은행잎에 하얀 눈의 흔적

살포시 얹혀 녹아가무렵

나와 함께 고속버스를 타려고

혼자 여행이 어려운 나를 위해

그녀가 일부러 내게 왔어요


집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번의 여정을 더 거쳐

나를 위해 오고 간 그녀

그때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지금도 마음 안에 잔잔히

따사롭게 고여 있어요


리리리자로 끝나는 말은

꾀꼬리 목소리 개나리

울타리 오리 한 마리

거기에 하나 더 붙이고 싶어요

우리 우 친구 ~


그녀와 힘께 쇼팽을 듣고 싶은

겨울의 길목입니다

슬픔까지도 떼구루루

영롱하고도 달콤한 쇼팽이

여전히 배시시 소녀 미소 간직한

그녀에게 어울릴 것 같아요


작곡가의 영감이나 느낌에 따라

자유롭게 만들어진 소품을

성격소품이라고 한다는데요

성격소품의 대표선수가

야상곡이라고 부르는

녹턴이래요


처음에는 가톨릭에서

밤 미사의 시작부에 불려지다가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 존 필드가

녹턴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피아노곡의 장르가 되었다고 해요


조용하고 느린 분위기와

서정적이고 장식적인 멜로디에

왼손으로는 노래하듯이

펼침화음으로 반주를 하는데

그 이전에는 야외에서 연주하는

관악합주였다고 하죠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은 녹턴의 예술적 가치를 업그레이드

쇼팽 버전의 녹턴으로 만들었다는데

Op. 27은 2개의 곡으로

아름답고 로맨틱하면서도

자유롭고 서정적이고 감미로워서

섬세한 그녀에게 잘 어울립니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먼저 와 기다렸어요~


지금 이 자리가 키다리카페인 셈 치고

그녀와 향기로운 커피 약속을 하고

내가 먼저 자리에 앉아

빨간 머리 앤과 함께

그녀를 기다리는 셈 치고~


쇼팽의 녹턴은 아니지만

이은미의 녹턴이라도

그녀와 함께 듣고 싶은 

차디찬 겨울날이 창밖에서

투명한 유리알처럼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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