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90 나눔과 비움의 시간
골동반 한 그릇
고개를 돌리면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보입니다
눈을 돌려 바라보는 곳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꽃들이
활짝 웃고 있어요
한 해가 저물어
마음에 붉은 노을이 물들고
한 해가 거침없이 기우는 하루하루
돌아보는 기억의 저편에서 아련히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골동반 한 그릇 하실래요?
마음과 정을 나누기에 좋고
묵은 감정들을 버리기에도 좋아서
한 해 마무리에 잘 어울리는
골동반 한 그릇 앞에 두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로 해요
못다 한 일에 대한 미련도 넣고
가닥가닥 아쉬움도 쓸어 담아
걱정은 이리 섞어 비비고
근심은 저리 섞어 비비며
새해맞이 다짐도 하나쯤
고명으로 얹어 보면 좋을 듯합니다
골동반(骨董飯)은
비빔밥의 한자어인데요
전주비빔밥이 유명하다 보니
요즘은 골동반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으나
밥에 갖은 나물과 고기볶음 등을 넣고
참기름과 양념에 비벼 먹는
섞어 비빈 밥 비빔밥이
골동반인 거죠
섣달 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도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주섬주섬 모두 모아 한데 넣고 비벼
밤참으로 사이좋게 나눠먹는
정겨운 풍습이 있었다고 해요
전주에서는 비빔밥을
헛제삿밥이라고 한다는데요
섣달 그믐날 밤참으로 먹는 비빔밥이
제사를 지내고 음복 후에 둘러앉아
종부가 비벼주는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좋은 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의 그릇에
지난해의 기억들을 모아 담고
섞어서 비벼 나누고 비우면 좋을
지금은 한 해의 끄트머리 시간입니다
혹시라도 서운한 마음
행여라도 아쉬운 생각
혹시라도 비뚤어진 생각
행여라도 원망하는 마음
해를 넘기면 안 되니까요
이루지 못한 꿈은
이루지 못한 대로
바랄 수 없는 허망함과
버려지지 않는 부질없음까지도
묵은 음식 섞어 비비듯
모두 모아 섞어 비비기로 해요
외로움과 씁쓸함과 적막함까지
고운 빛 고명으로 살포시 얹어
올해 안으로 말끔히 버리고
또 나누기로 해요
지금은 골동반이 어울리는
한 해의 끄트머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