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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26. 2024

초록의 시간 895 말하고 싶은 비밀

하얀 연인들

세상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도 있으나

말할 수 있는 비밀도 있고

굳이 말하고 싶은 비밀도 있어요


세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비밀도 있고

대충 지키지 않아도 되거나

슬며시 려도 되는 비밀도 있고

대놓고 마구 드러내고 싶은

비밀 아닌 비밀도 있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지만

아무리 머리 굴리며 생각해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밀도 있고

알게 되면 빙긋 웃음을 머금게 하는

사랑스러운 비밀도 있어요


재잘대던 꼬맹이들이

폭신한 겨울방학에 들어가고

텅 빈 운동장에 하얀 눈이 가득

아직 넘기지 않은 스케치북의 첫 장처럼

고요히 텅 빈 학교를 지키고 있는데요


하얀 운동장 한복판에

꼬물꼬물 발자국처럼 보이는

귀여운 글자들이 새겨져 있어서

유심히 내려다봅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첫 마음으로

비밀인 듯 비밀 아닌 비밀 같은

사랑스러운 비밀을 

햇살 아래 털어놓은

소년과 소녀의 수줍음이

예쁜 겨울 풍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얼레리꼴레리

어느 소년과 어느 소녀가

서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새콤달콤 귀여운 고백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해요

이대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듯한 

꼬맹이들의 수줍달콤 고백을

한참 동안 빤히 내려다보며

덩달아 설렘설렘~


작고도 어리고 소중한

하얀 연인들 덕분에

말랑한 기분이 되고

마음속에서도 때아닌

핑크빛 봄바람이 살랑입니다


그러다 문득 현실로 돌아와

뜬금없이 뒤집어쓰고 있는

꽃무늬 주책바가지

잽싸게 벗어던지고 으흠~

어른스러운 표정을 되찾습니다


꼬맹이들의 예쁜 사랑을

귀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멀리서 봐도 훤히 드러나는

소녀의 이름 위에 

송이송이 하얀 눈송이

살포시 올려놓으며 중얼거려요


그래~ 예쁜 사랑 하렴

영원한 비밀 없듯이

새하얀 눈은 금세 녹고

눈 위에 새긴 이름도 사라지고

사랑의 맹세도 흐려질 거야


그래도 추억은 남아

하얀 눈길을 나란히 걷던

또박또박 사랑의 발자국은

습관과도 같이 몽그르르

겨울 한복판에서 반짝이는

눈꽃으로 포르르 피어날 거야


사랑이 변한다 해도

지금 사랑으로 충분한 거야

변덕쟁이 마음이라도

지금 이 순간은 진심 가득이니

그것으로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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