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제목의 효용)
속지에 써놓는 대신
원제는 <화산 자락에서>이다. 아사마 산이라는 활화산 주변 마을이 배경이다. 화산에 대한 남자 주인공의 독백이 인상 깊다.
생각해 보면 이 부근은 백 년, 천 년 단위로 반복된 아사마 산의 대분화로 생물이 살 수 없는 불탄 들판이 된 일이 여러 번 있을 것이다. 토석류나 화쇄류가 현재의 가루이자와와 오이와케, 사쿠다이라는 물론 마에바시까지 미쳤었다.
흔적도 없어진 아오쿠리 마을에 태양광선과 비가 내리쬐고 바람이 씨를 옮겨온다. 몇 안 되는 씨가 싹을 틔우고, 쭈뼛쭈뼛 뿌리를 내린다. 화산재도 토석류도 이 작은 초록에는 어마어마한 양분이다. 듬성듬성한 초원 틈에서 어린나무가 가지를 뻗고 이윽고 숲이 형성된다. 나무들과 풀에 이끌려서 벌레와 새가 온다. 낙엽은 부엽토가 되고, 숲은 가속도가 붙어 기세 좋게 큰 숲을 이룬다. 숲은 작은 포유류를 불러들이고, 여우와 부엉이가 그들을 노린다. 바로 지금 유키코와 걷고 있는 울창한 밤의 숲은 도대체 몇 번이나 불탄 들판에서 재생한 것일까? 우리도, 지금 울고 있는 부엉이도 불탄 들판을 모른 채 이 자리에 있다.
한글 제목의 영향으로 대다수가 여름에 초점을 맞추지만 난 화산에 무게를 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