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물난리가 났다. 집과 도로가 속수무책으로 잠기는 모습에 2017년이 겹쳐 보였다. 7월의 마지막께 쏟아진 폭우로 인천 곳곳이 물에 잠긴 날이었다. 당시 신입 티를 벗지 못한 나는 인명피해가 난 미추홀구 동양장사거리 골목을 돌며 나름대로 원인 파악에 분주했다.
지대가 낮은 곳에 3시간 사이 100㎜ 넘는 비가 쏟아졌고, 빗물은 빠질 새 없이 반지하 가구를 삼켰다. 온갖 쓰레기로 막혀 버린 배수구도 피해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그 쓰레기들 중 상당수는 담배꽁초였다.
얼마 전 아침 운동에 나서는 길이었다. 부평구 A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청소 중인 직원을 봤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 교문 앞을 치워 두려나 보다 생각하며 지나가는 찰나, 그 직원은 빗자루로 싹싹 쓸어 모은 쓰레기들을 고스란히 배수구로 도로 집어넣었다. 길은 깨끗해졌고, 허리를 편 그의 얼굴엔 뿌듯한 표정이 스쳤다. 담배꽁초를 배수구에 욱여 넣은 사람들의 심정이 저러했을까 싶었다. 거리를 더럽히진 않았으니 잘한 일이라고.
배수구가 담배꽁초로 꽉 찬다 한들 여전히 길에 나돌아 다니는 꽁초 역시 적지 않다.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줍깅’ 캠페인을 여는 청년기획자를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공원 벤치든 계단이든, 널찍한 돌멩이든 사람이 머물러 가는 공간 주변에는 어김없이 담배꽁초가 버려진단다. 순간 무척이나 생소했던 옆 나라의 휴대용 재떨이가 떠올랐다. ‘내가 피운 담배꽁초는 내가 가져간다’는 인식이 어디서 자랐는지 궁금하다.
인식의 부재 속에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긴 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날려, 빗물에 휩쓸려 강으로, 또 바다로 흘려간다. 50일이 넘는 역대 최장 장마가 이어졌던 2020년 인천지역 연간 해양쓰레기 수거량 6천589t 중 40%인 2천686t은 6월부터 8월 사이 장마철에 발생했다. 막대한 쓰레기에 섞여 바다로 흘러온 담배꽁초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바다를 부유하다 인간의 몸으로 들어온다. 해양생물이 섭취한 미세플라스틱을 인간이 다시 섭취하면서 축적되는 악순환이다.
이번 폭우로 모두의 상심이 큰 상황에서 한 시민의 의로운 행동이 빛났다. ‘강남역 슈퍼맨’이라고 칭해진 시민은 강남역 인근의 배수구를 막은 쓰레기를 맨손으로 치웠다. 쓰레기를 치우기 전 종아리까지 찼던 빗물은 순식간에 빠졌다고 한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가 침수피해를 키웠고, 또 얼굴 없는 누군가가 치운 쓰레기가 피해를 줄였다. 빗물이 넘실거리는 날이면 인천 앞바다엔 해양쓰레기가 밀려들겠지만, 오늘도 한 청년은 거리를 달리며 담배꽁초를 주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