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흙과 바람막이 그리고 햇빛이 필요해
잠들어 있는 씨앗, 아직 발아하지 않은 그 작은 생명체는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해도 적절한 흙을 만나지 못하면 결코 싹을 틔울 수 없다. 우리는 더럽다고 툴툴 털어버리는 흙이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을 틔우는데, 꼭 필요한 필수 재료인것이다. 흙 속에서 깨어난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무엇보다 햇빛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햇빛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아도 당연히 내게 주어지는 것처럼 여겨왔으니까.
그러다 문득, 중학교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간고사를 망친 날,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정말 잘했어
늦은 저녁까지 열공했으나, 시험 시간 내내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려 집중조차 하지 못했던 나를 아빠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결과 앞에서 속상한 내 마음을, 아빠도 분명 함께 안타까워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아빠는 실망을 내색하기보다,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 말 한마디가 얼어붙은 내 마음을 단숨에 녹여주었다. 두려움과 창피함, 실망감은 내 얼굴에 줄줄흐르는 눈물로 치환되어 내 밖으로 안전하게 나감을 느꼈다. 그 때부터 새로운 도전이 좋고, 실패가 두렵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긴장되는 순간마다 그때 아빠에게 받았던 온기를 기억한다. 그것을 마음의 땔감 삼아 나 자신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 마치 싹을 틔우기 위해 씨앗을 돌보듯이.
햇빛이 없던 씨앗, 그리고 깨달음
어느 날, 씨앗을 심었다. 좋은 흙을 골라 물을 주고, 정성껏 보살폈다. 그런데 나는 빛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싹을 틔우기 위해선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나는, 씨앗을 주방 팬트리의 한구석에 놓아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싹은 트이지 않았다. 대신 흙 표면에 곰팡이만 피어올랐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2월말, 새싹을 틔우며 깨달았다. 씨앗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흙과 물뿐만 아니라, 햇빛이라는 사실을. 이번에는 빛이 잘 드는 곳에 두었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씨앗은 싹을 틔웠다.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씨앗을 너무 깊이 심으면 오히려 숨 막혀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떤 씨앗은 흙 속에서 충분히 불어나야 잎을 틔우고, 어떤 씨앗은 햇빛을 직접 맞으며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도. 결국, 씨앗마다 자라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하루 최적량의 햇빛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아이를 키울 때의 ‘햇빛’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따뜻한 온정, 관심, 사랑을 담은 스킨십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부모의 따뜻한 시선, 부드러운 웃음, 포근한 마음이 필요하다. 엄격한 가르침이나 지적, 집에서는 좀 쉬어야하는데 느닷없이 교감신경을 깨워 스트레스 받게하는 잔소리, 철저한 규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따뜻한 사랑 말이다.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잠든 아들 방으로 갔다. 조용히 다가가 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이 아이도 사랑과 온정을 받아야만 자랄 수 있는 생명체니까."
내 품 안에서 작은 씨앗처럼 숨 쉬는 아이. 나는 그 아이가 충분한 햇빛을 받으며 자라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