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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Oct 19. 2020

옆반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3년 반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새로운 학교로 복귀했다. 지역까지 바뀌어 긴장이 배가 되었다. 한가한 시골길을 거칠게 운전하며 다녔던 초보 운전자는 왕복 6차선 도로에 끼어들기하며 톨게이트를 지나다녀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아직 어린 아가들은 출근할 때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 나와 엉엉 울었다. 출퇴근이 끝난 하루 뒤에는 긴장이 내린 자리에 근육통이 왔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싶은 마음에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힘들 게 선생님이 되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이런 때 만난 그 해 동학년 선생님들은 내 눈에 너무 훌륭해 보였다. 예술가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학년부장을 비롯해 전국 단위 연수에서 강의를 하는 선생님, 학급 경영능력이 뛰어난 선배님, 자기만의 교육철학이 확실했던 후배들을 만났다. 


그 중에 특히 내게 감명을 준 선배가 있었다. 선배님은 말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자기주장을 못할 만큼 말이 없진 않았다. 나는 그녀의 차분함이 좋았다. 교실도 그녀를 꼭 닮았다.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했다. 선배의 반 아이들도 담임과 똑같았다. 분명 균일한 분포를 가진 아이들을 일곱 개반으로 나누었을 것인데, 선배의 반 아이들은 뭔가 더 단정했다. 


3월이 다 가기도 전에 그 반 아이들은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우리 반과는 뭔가 달랐다. 오고 가며 복도에서 들여다본 그녀의 판서 내용은 훌륭했다. 글씨는 말할 것도 없고 판서의 내용과 배치도 좋았다. 중간고사 성적을 돌려봤을 때 '역시' 했다. 서술형을 적어내는 문제에서 선배의 반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점수가 좋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나는 시선을 돌렸다.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중한 선배는 거리를 확 좁히려는 나를 경계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아이돌을 만난 듯 황홀하게 선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해에는 선배가 학년부장이 되었다. 깐깐한 그녀이기에 학년부장의 부담감을 안고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쉽지 않아보였다. 나는 선배 옆에서 선배를 100% 지지하고 돕는 역할을 했다. 전 해보다 가까워지긴 했지만 선배의 영역에 확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볼 만큼은 안됐다. 나는 여전히 선배의 교실이 탐났다. 


겨울 방학 중 근무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돼 교실에 잠깐 들르려는데 선배의 교실문이 열린 것을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가는 일이 떳떳하진 않았지만 들어가 보고 싶었다. 유심히 보는 것만으로 선배의 노하우를 훔쳐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었을까? 나는 빈 교실에 슬쩍 들어갔다. 복도 밖에서 봤을 때 멋지게 붙어있던 뒷 게시판의 게시물들도 팔랑팔랑 넘겨봤다. 창가 쪽에 붙은 학습자료들과 앞쪽에 꾸며놓은 게시판들도 하나씩 만져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배의 책상에 다가갔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동학년 후배들이었다. 하필 이런 때! 가슴이 마구 뛰었다. 딱히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만 남의 교실에 들어가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복도 창은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게 투명 유리로 돼 있었다.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서로 눈이 마주쳐버렸다.


까마득히 어린 후배들이라 이 상황에 대해 눈으로만 묻지 따로 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얘질 정도로 당황했다. 주절주절 변명의 말을 늘어놓으며 나는 황급히 선배의 교실에서 나왔다.

'대체 저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람?' 그들의 머리에 떠있었던 물음표를 애써 무시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도 나쁘지 않았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인 따스함으로 아이들을 어루만지며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늘 시선은 옆반으로 향했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진 동료들의 미덕이 부럽고 그것마저도 내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결국 주인 없는 교실까지 침입하게 했다. 


단단히 부끄러움을 산 이후 나는 그 뒤로 다른 교실을 볼 때 눈을 흐리게 뜨곤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착시 현상을 최대한 줄이고 공유할 수 있는 장 안에서만 정보공유를 요청한다. 남의 것이 꼭 나와 맞으리라는 법도 없다. 갖다 쓰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나와 반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효과는 훨씬 크다. 그리고 경력이 늘수록 어떤 것을 추가하는 것보다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란히 붙은 반들 중 가장 초라할 수도 있지만 딱 나만큼 담길 우리 반. 나는 그 '우주'를 더 소중히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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