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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Oct 26. 2020

이 잡으러 가자

아이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의견을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대신했다. 6학년 첫날. 첫인사를 마치고 수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 부장님이 여학생 한 명이 우리 반으로 온 것 같다며 데리러 오셨다. 알고 보니 반배정 목록에서 그 아이는 중복 기입돼 있었다. 우리 반에도 옆반에도 속해있었던 것이다. 남, 여 비율이나 전체 학생 수를 고려했을 때 부장님 반으로 가는 것이 맞아서 아이는 1교시 후 반을 옮겨가야 했었다. 첫인상부터 극도의 소심함이 보여 우리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전하고 아이에게 반을 옮겨가자 말했다. 그러나, 아이는 단호히 거부하며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강제로 끌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부장님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일단 후퇴하셨다. 아이는 그 날 집에 가기 직전에야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반에 그냥 있고 싶어?"라는 내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부장님과 의논 끝에 아이는 그대로 우리 반이 되었다. 아이는 특수 경계에 있을 만큼 학습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었다. 포스터나 표어를 그려내는 솜씨 또한 뛰어났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두고 원래 우리 반이 아니었던 아이로 취급하다 섬세하게 완성해 낸 그림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우려했던 따돌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을이 됐다. 당시에는 날이 추워지면 부쩍 '머릿니'가 생긴 아이들이 많았다. 가정통신문으로 '머릿니'를 제거하는 방법이나 관리하는 요령 같은 것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본문을 읽으며 앉아 있는 학생들 사이를 걸을 때였다. 교과서 너머로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우연히 보게 된 것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에 하얀색 알갱이 같은 것들이 주르륵 붙어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심지어 어깨 위에도 이가 떨어져 있었다. 유심히 보니 머릿니가 상당히 많아 보였다. 얼마나 가려웠을까?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아이를 그대로 지나쳐 교탁 앞으로 가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정통신문의 내용이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아이의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느라 바쁘셨다. 당장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실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과 후에 아이를 남겼다. 그리고 함께 피부과부터 갔다. 작은 시골 병원에서는 담임이 데려온 학생을 진료 봐주실 수 있는 융통성이 있었다. 후에 부모님과 다시 와서 행정 작업을 하기로 하고 일단 진찰을 받았다. 아이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씩 넘겨보시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이 정도였으면 굉장히 가려웠을 텐데......."


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연고와 약을 처방받고 다음은 미용실에 들렀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게 길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머리 자르기를 권하셨다. 머릿니 치료가 의외로 끈질기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기에 짧은 머리가 도움이 될 것이었다. 


부모님께 전화로 허락을 받고 미용실에 갔다. 그 긴 머리를 어깨 선까지 잘라내는데도 아이는 말이 없었다. 표정을 보니 오히려 홀가분해 보였다. 그간 많이 간지러웠던 것일까?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두피 상태도 좋지 않다고 했었다. 미용사 아주머니는 아이의 머리를 잘라내며 호들갑이셨다. 머릿속이 머릿니로 가득하다며 아이를 붙들고 관리법을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아주머니의 말씀에 함께 침울해진 나는 '이 것이 머릿니에 특효'라는 샴푸까지 사고야 말았다. 깔끔하게 잘린 머리카락이 아이의 귀 뒤에 살짝 꽂아졌다.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얼핏 웃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미용실 밖으로 나오니 문득 배가 고팠다.


 "우리 떡볶이 먹을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떡볶이를 먹으며 나는 여전히 혼자 떠들어댔다. 주로 머릿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가족인 그 애 집 가족들의 머리카락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어린 동생도 아이 밑으로 둘, 셋 쯤 더 있었던 것 같다. 밤에 나란히 베개를 베고 누운 가족들의 머리를 자유롭게 오가는 머릿니들이 상상이 됐다. 샴푸를 아이 가방에 넣어주며 오늘 밤부터 동생들하고 이 샴푸로 머리를 꼭 감으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가족들이랑 피부과에 다시 꼭 들러야 하는 것도 일렀다.


군내버스가 다닐 시간이었지만 나는 차에 아이를 태워 아이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이의 집은 차 한 대가 겨울 오갈만한 길을 지나야 갈 수 있었다. 초보 운전자인 주제에 핸들을 고쳐 쥐어가며 그 길을 달렸다.  T자로 펼쳐진 논길에서 겨우 차 방향을 돌려놓고 아이와 인사했다. 내리기 전에 아이가 나를 똑바로 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했다.  제대로 된 문장으로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새 아이는 차에서 내렸다. 머리카락이 폴짝이며 흔들렸다. 유리창을 내리고, " 내일 만나자~!" 인사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입이 귀에 걸렸다. 집에 가면 또 엄마한테 오지랖 떨었다며 등짝을 맞을지도 몰랐다. 지 부모 다 있는데 왜 네가 병원까지 데려갔냐며 한 소리 들을 게 뻔했다. 백미러에 비친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집에 가지 않고 멀어져 가는 나를 오래오래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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