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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Nov 30. 2020

선배가 알려준 교실청소 비법

상진이는 복직했던 첫 번째 해에 만난 학생이다. 어수선한 교실을 미처 정리할 여유가 없던 시절. 우리 반은 제대로 청소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아이둘 낳아 기르며 정신없이 살다가 겨우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한 시간을 차를 달려 도착하는 삶으로 자리잡아 가는 중이었다. 방과후라는 업무를 처음 맡아 학기초에 유난히 바쁘기도 했다. 


상진이는 교실에 아주 늦게 들어왔다. 오기싫은 학교에 겨우 오는 아이처럼. 1교시 시작 전에 들어왔기에 무사히 학교에 잘 도착한 것에 의미를 두었다. 1교시를 마치면 상진이는 벌떡 일어나 시위하는 것처럼 교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청소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교실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쓸었다. 눈 사이에 주름이 깊게 패일 정도로 인상을 쓴 채였다. 


훈훈했던 교실은 상진이가 문을 열면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어와 금세 추워졌다. 아이들은 상진이가 창을 열때마다 비명을 지르거나 야유를 보냈다. 


"어휴, 저 예민한 **. 또 문 여네."


남자 아이들의 투덜거림이 들렸지만, 나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급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상진이는 과묵하진 않았다.

 창을 열고, 빗자루를 꺼내며 계속 투덜거렸다. 주로 나에 대한 원망이었다. 


"선생님, 저는 비염이 심해서 먼지 속에서는 살 수 없단 말이에요. 교실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애들이 청소를 제대로 안해서 이런 거에요. 학교에 오시면요 창문이라도 열어 두셔야죠. 그래야 제가 숨을 쉰다구요."


세상에. 만난지 한 달도 안된 담임에게 잔소리라니. 게다가 엄마한테 방청소 안해서 혼나는 기분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저 포스. 울컥 화가 올라왔다가 신경질적인 태도 뒤에 '비염 알러지'라는 그럴 듯한 이유가 나름 납득이 됐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짜증내도 상진이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대신 불러다 짜증내는 태도에 대한 주의만 주었다.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자 교실 환경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나니 상진이의 말대로 쓰레기가 미처 정리되지 못한 책상 사이사이와 어수선한 책상 줄,  스키드 마크처럼 새겨진 부러진 연필심이 그려놓은 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않아 건조한 공기와 떠다니는 먼지들도 보였다. 상진이처럼 비염이 심한 학생에게는 확실히 치명적인 환경이었다. 


교사 혼자 청소를 잘 한다고 교실이 깨끗하진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정리해야 의미도 있고 나도 힘들지 않게 오랫동안 갈 수 있다. 학생들과 깨끗한 교실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해가며 나름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형식의 자율성과 지속성은 만들어내기 힘들었다.


5학년 아이들은 담임이 소리 높여 말해도 청소를 벌칙 쯤으로 생각해서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 특히 남자애들은 빗자루를 들고 총,칼 싸움을 하는 등 소란을 일으켰다. 그럼 열심히 청소하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 마음이 느슨해지고 만다. 교실청소는 시간 때우기로 전락했다. 나는 청소를 시켜놓고 그 시간에 또 업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침 주변에 깨끗한 교실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선배가 있었다. 그 해에 처음 만난 선배였지만 용기를 내 청소 비결을 들으러 갔다. 


선배의 첫 마디는,


"교실 청소를 할 때 아이들에게만 맡기면 제대로 되지 않아." 였다. 


아이들은 청소에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하기가 힘들기에 교사의 손으로 마무리 짓는다는 생각을 해야한다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남아 청소하게 하지도 않지. 청소하는 데 사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하진 않거든."


선배는 주로 2명~4명 정도 남겨서 청소를 한다고 했다. 요일은 아이들이 각자 방과후 자기 시간을 고려하여 정한다. 인원이 많지 않고 함께 교실 정리를 해야하기에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게 이 방법의 장점이었다. 청소 역할도 함께 청소하는 아이들끼리 각자 의견을 나눠 정한다. 자신이 선택한 청소 구역이라 열심히 청소한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하교 전에 기본적인 교실 정리는 모든 학생이 함께 하는 거야."


청소할 학생들에게 기대 자기가 사용한 책걸상과 책상 주변을 정리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고, 청소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례후 5분 간은 미니 빗자루로 자기 주변은 정리하고 가게 하는 것. 모두 함께 교실 정리를 할 수 있는 강력한 비법이었다.


나는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과 이 비법을 공유했다. 그리고 바로 실천에 옮겼다. 청소 시간이 되면 정리하는 뇌로 전환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과 함께 청소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청소 도구를 갖춰놓기도 했다. 바닥에 남아있는 자국들을 엎드려 박박 닦아가며 지웠다. 내가 하기 시작하니 아이들도 따라했다. 


 속을 알 수 없던 여자 아이 하나는 함께 청소하는 동안 내게 마음을 많이 열었다. 아이와 함께 부지런히 교실 바닥을 닦고 걸레까지 빨아 창틀에 걸쳐 놓으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우리 둘은 깨끗해진 교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어느 날 아침. 등교한 상진이가 교탁으로 바로 오더니,


"선생님, 우리 교실이 많이 쾌적해졌어요." 했다.


 드디어 상진이에게 깨끗한 교실 합격 판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무슨 친환경 인증 마크를 받은 사장님처럼 입가가 자꾸 씰룩거렸다. 

늘 짜증으로 가득했던 상진이 얼굴이 모처럼 밝아졌다. 자신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나름 노력한 담임이 고마웠던지 그 뒤로 상진이는 부쩍 교탁 옆으로 와 재잘재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상진이 생각을 한다. 상진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적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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