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출국 2
세 사람에게 다가온 승무원이 웃음을 띤 얼굴로 물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아까 카운터 마감 시간 문의하신 분들 맞으시죠?”
“아 네네 맞습니다.”
입에 넣은 김밥을 다급하게 삼킨 준호가 대답했다. 말을 걸어온 승무원은 카운터에서 형일과 준호의 캐리어 위탁을 맡았던 직원이었다. 승무원은 두 사람이 태영의 상황을 설명하는 사이 준호와 형일의 얼굴을 익히고 카운터 근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찾아온 것이었다.
“저희가 세 분 상황을 고려해서 10분 정도 카운터 마감을 미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여권이 언제쯤 도착 가능한지 확인이 가능할까요?”
“네 지금 확인해 볼게요!”
이번엔 태영이 다급하게 대답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옆에선 준호와 형일이 나름 시간 계산을 해보았다. 동생이 택시를 탔다고 연락한 시간이 10시 50분, 수원에서 인천공항까지는 대충 1시간 30분이 조금 안 걸린다. 그럼 12시 20분쯤 도착한다는 말이 된다. 카운터를 마감이 10분 늦어져도 12시 10분이니 시간이 조금 애매했다. 계산이 대충 끝나자, 태영도 통화를 마쳤다.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네 그럼 여권 도착하면 ㅁ구역 x번 카운터로 와주시면 수하물 위탁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승무원이 카운터로 돌아가고 나서 형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된대? 그냥 일단 미뤄달라 한 거 아냐?”
“몰라 내비에는 15분 도착이라는데, 지금 택시가 거의 날고 있대. 기사님이 맞춰보겠다고 했다던데?”
일단 미뤄달라고 할 만한 시간이었다. 택시 기사님이 5분 이상 시간을 줄여주면 가능했다. 태영이 가져온 짐을 일부 포기하지 않고 모두 위탁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그럼 짐 일단 옮기지 말고 놔둬 볼까? 동생분 시간 안에 오시면 바로 부쳐버려야지.”
“그래 야 일단 놔두자. 지금 보니까 길도 안 막히고, 잘하면 될 수도 있겠다.”
“오케이, 일단 거의 다 왔을 때 전화하라 했어.”
겨우 한숨 돌렸던 세 사람이 다시 초조하게 태영의 핸드폰만 바라보게 되었다. 태영은 손에 쥔 핸드폰을 계속 위아래로 뒤집어가며 전화를 기다렸다. 머릿속으로는 캐리어 안의 짐 중에서 꼭 가져가야 하는 짐을 미리 선별하려고 했지만, 동생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12시가 조금 안 된 시간, 드디어 태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의 진동이 1번이 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은 태영은 가타부타 설명 없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형일이 그 뒤를 쫓았고 준호는 자리에서 태영의 짐을 지켰다. 완벽한 팀워크였다.
“어 여기 n번 출국장. 여기 앞에까지 택시 온다. 나 문 앞에 서 있어. 오면 보일 거야.”
“왔대? 왔대? 도착하신 데? 곧?”
태영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불과 5분 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수원 택시가 형일의 눈에 띄었다.
“오 야 저건가보다!”
“지금 공항 들어왔어? 저 수원 택시 너야?”
대답을 듣고 바로 전화를 끊은 태영이 도로 앞까지 달려 나갔다. 그 수원 택시는 태영의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택시의 조수석 창문은 도착하기도 전에 열려있었다. 조수석에는 태영을 80% 크기로 줄인 것 같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태영의 동생 기영은 차 문을 열기도 전에 창문으로 여권부터 건넸다.
“와 땡큐! 형일, 얘 좀 챙겨줘! 나 간다!”
여권을 챙긴 태영은 형일에게 동생을 맡기고 탑승 수속 카운터로 빠르게 달려 들어갔다. 기영은 그런 형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롭게 택시 요금을 지불한 다음 택시에서 내렸다. 여권은 줬으니, 기영이 급할 일은 없었다. 형일과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공항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태영은 달려 들어가는 와중에 여권을 열어 사진을 확인했다. 당연히 동생이 확인했겠지만, 저지른 실수가 있으니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영 불안했다. 여권에서 본인의 사진과 이름을 확인한 태영은 자리에 앉아 있을 준호를 찾았다. 준호와 눈이 마주친 태영은 수속 카운터를 가리켰고, 이를 본 준호는 태영의 짐과 미리 사놓은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여권 여기 왔습니다!”
먼저 카운터에 도착한 태영은 여권부터 승무원에게 건넨 다음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8분. 마감 2분 전이었다. 승무원은 여권을 받자마자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태영의 탑승 수속을 진행했다.
“딱 맞춰서 오셨네요? 다른 카운터들은 다 마감했거든요.”
“어휴 네 진짜 다행이에요. 저 캐리어도 부칠 수 있는 거죠?”
“네 가능합니다.”
바로 뒤에 도착한 준호에게 캐리어를 받아 벨트 위에 올렸다. 혹시 몰라 캐리어의 무게도 미리 맞춰두었다. 여권이 도착하니 탑승 수속은 거짓말처럼 쉽고 빠르게 진행됐다.
“다 되셨습니다. 비행기 탑승 50분 남아서, 바로 탑승구로 이동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태영은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며 카운터를 나왔다. 드디어 모든 일을 해결한 태영은 형일과 함께 머쓱하게 서 있는 기영을 발견했다. 집에서 보던 기영과 밖에서만 보던 형일이 같이 있으니 두 사람의 분위기 사이에 섞이지 않는 경계가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의 거리도 일행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와 딱 맞췄어! 진짜 우와…. 고생했다. 택시가 기가 막히게 맞춰줬네.”
“150까지 밟으시더라. 근데 뭐, 나 가져갈 거 있다며.”
“아 맞아 이거 가져가.”
준호가 가지고 있던 기내용 캐리어를 기영에게 건넸다. 기영은 준호에게 또 어색하게 인사하며 캐리어를 받았다.
“이건 뭐야? 뭐 들었어? 빈 것 같은데.”
“너 늦으면 쓰려고 했는데, 이제 상관없어졌어. 집에다 두고 나중에 쓰지 뭐.”
“늦으면 이걸 어떻게 써?”
“있어, 말하자면 길어. 택시비는 아버지가 주셨지? 이건 용돈 해 너. 고생했다.”
“알았어, 그럼 간다 나?”
태영이 지갑에 있던 현금을 모두 꺼내어 기영에게 주었다. 기영은 1시간을 달려와서, 그렇게 몇 마디 나누지도 않은 채 빈 캐리어를 들고 깔끔하게 돌아섰다. 그 와중에 준호와 형일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겨우 몇 분이지만 참 착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기영을 보낸 뒤 세 사람은 바로 탑승구로 향했다. 세 사람의 발걸음은 이제야 비로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 진짜 들어가네, 나. 진짜 못 들어갈 줄 알았다.”
“나 면세점 구경하려고 그랬는데 망했잖아, 태영.”
“면세점 올 때 가 올 때.”
“그래, 너 가서 뭐 살 것도 아니잖아.”
“왜? 나 시계 보고 싶었다고! 여기서 사면 꽤 15% 할인해서 사는 건데.”
“백수가 시계 같은 소리 하네.”
“뭐 인마?”
세 친구는 처음 공항에 왔을때와 같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첫 여행지인 캐나다의 캘거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