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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Jun 30. 2024

Humming Letter To You #3

비와 편지와 너울과 윤슬


 앞으로 일주일간은 비가 많이 온대. 일상 속에 솟아 있던 활기의 불꽃도 흐린 날씨라는 바람에 휘청이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누리는 해상도를 잠시 줄여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하지만 기분 탓으로 모든 걸 돌리고 싶지는 않아서 진짜 이유가 무얼까 찾아보았지. 당연히 심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햇볕을 받지 못하니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들어 무기력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 

맞아, 사실은 내가 계획한 일을 하지 못한 나를 위한 합리화였다는 거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합리화와 위로는 듣는 사람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닐까? 평소와 다른 상태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는 건, 한 주를 충실히 살아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어. 너는 나와 닮아 있기에, 한 주를 충실히 살아냈을 거야. 게으르지 않은 채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낸 너에게는 이 말이 합리화가 아니라 위로일 거라는 믿음으로, 습한 날씨에도 따뜻한 쌍화차를 시킨 이 마음을 담아 너에게 글을 써 본다.





7년 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


 난 변리사 시험에 준비한 적이 있고, 이후 그 책들이 필요 없어졌을 때 남은 책들을 당시 마침 변시를 준비한다는 한 후배에게 건네준 적이 있어. 당시에는 오 마침 잘됐네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긴 했지. 

그때 그 후배는 고마웠는지 "내가 받으러 갈게, 밥 살게" 하며 이야기를 했지만, 시험 준비하느라 여유가 없을 텐데 됐다며 나중에 밥 사라는 말과 함께 나는 우체국을 방문하여 책들을 보내줬지.

근데, "나 그래도 나름 노력했다"  하는, 어쩌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어딘가로 모아서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 봐.

공부할 때 썼던 (낙서를 곁들인) 노트와 응원이 담긴 편지를 함께 써 주었어. 내용은 기억이 전혀 안 나.

물론 아끼는 친구라서 그랬겠지만, 왜 그렇게까지 한 건지는 모르겠기도 해. 지금 생각해 본 이유는 그래.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어제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어.


그 친구는 이후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금의환향했지.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기업에 들어가 일원으로서 멋지게 그 역할을 해내고 있더라.

뻔한 표현이지만, 그냥 뭐든 잘 해낼 애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내가 예전에 책을 보내어 준 이야기가 나온 거야. 

내가 준 편지는 아직도 집 벽에 잘 붙어있다고 했어.

난 선반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다, 과하게 쌓인 짐들이 함께 쏟아진 듯

기습적으로 차오른 애틋함에

편지에 내가 뭐라고 썼는지 물어봤어.


돌아오는 내용은 진부했지만,

망각 속에 사라진 당시 나의 마음을 다시 전해 들으니 기분이 묘했어. 

내가 그런 얘기를 했다고? 신기하네.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고는 생각했어. 참 잘 한 일이다, 당시 그 친구에게 시험 책을 기꺼이 건네준 것.  

함께 성장해 나가는 우리의 미래가 너무 기대되어서 벅찬 마음을 숨기었어.





그리고 집에 돌아와 편지라는 글의 특수성에 대해 생각했어.


보내고 나면 사라지고, 나의 세계 안에서 다시는 퇴고하거나 꺼내어 볼 수 없는.

글의 장점 중 하나인 "기록"이라는 속성을 포기한 채로 마음을 전하는 이 방식이 

무릇 이타적인 행위이고, 

왜 벅찬 애틋함으로 차오르게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어. 


편지는 낭만이야.

너에게 계속 편지를 써야만 해.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지는 이 문장을, 미세한 거부감을 감수하더라도 써 보고 싶어. 


결국 오늘, 그것은 나에게 무언가 사명감으로 점철된 듯하거든.



장마의 시작역인 오늘, 

그러나 충분히 구름과 같은 설렘의 색채감으로 너에게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오늘,

낭만의 부분집합인 편지를 오래토록 나누어

남루한 강물과 같은 삶 속에 속삭이는 너울과, 

아득한 바다와 같은 맘 속에 찰랑이는 윤슬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 부드럽고도 애달픈 공명을 너에게 선물하고 싶어. 




오늘은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는 이유가 담긴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우리 푹 쉬고 다시 활기를 되찾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또 편지할게!



2024.06.30.

한 해를 가르는 시간의 정교한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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