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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수도 백년이 지나면

파나마 운하의 가툰 호수에 가면

by 이랑삼



요즘 같은 때 투어라니.

방 문을 열고, '원숭이 섬 투어 쿠폰 샀어' 라고 조용히 말 건네던 두두였다. 전날 크게 싸운 터라 집안 분위기는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서늘했다. 근래 내가 원숭이섬 가보자며 노래를 불렀던 게 귀에 박혔는지 두두는 소셜 커머스에 올라 온 '원숭이 섬' 여행상품을 상의없이 사버렸다. 냉랭한 아내 반응을 어떻게라도 풀어보려고 한 시도였다. 관심이 가서 나도 들어가 보긴 했다. 하지만 투어밴의 갇힌 실내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이동하는 것이 꺼름직해 뒤로 가기를 눌렀다.

부부의 의견은 달랐으나, 어떡하겠나. 환불도 되지 않고, 버리자니 돈도 기회도 아까운 게 현실. 개인방역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KF94 마스크와 알콜젤을 단단히 챙겼다.




이번 주말도 운하 옆을 달린다




속 시끄러운 코로나 시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건너 뛰도록 한다. 우리는 이십대로 보이는 외국인 여행자 두 명, 남자 아이와 함께 온 엄마와 함께 투어 밴에 올랐다. 다들 말수가 없었다. 특히 대여섯살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유독 조용했다. 가이드는 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을 걸다가, '참 조용한 아이네요.'라고 정리했다.



밀림 속을 벗어나 양방향 이차선 도로의 왼쪽으로 철도가 등장했다. 그리고 배경엔 운하가 펼쳐졌다. 차가 달릴 수록 운하는 점점 넓어지면서 호수의 모습이 되어갔다. 우리의 미니밴은 도로를 벗어나 길가에 자리한 허름한 선착장에 멈춰섰다. 보통 때 같으면 보트 주인들이 호객을 하느라 길가에 서서 팔을 크게 휘젖던 곳이다. 지금은 텅 빈 크고 작은 보트들과 할 일이 사라진 남자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투어가 좋은 점은 시간을 효율적을 쓸 수 있고, 두뇌와 감정 소모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린 호객꾼의 관심 밖에 있었다.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지정된 보트로 올라탔다. 오전 8시, 아직 이른 시간 호수 위에 솟은 언덕들엔 안개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백년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든 현재의 자연




가툰 호수는 백년하고도 칠년 전, 파나마 운하를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언덕이 솟아있던 골짜기에는 차그레스 강물이 매워지면서 봉우리만 남게 됐다. 그 봉우리를 이곳 사람들은 섬이라고 불렀다. 오늘 투어의 핵심인 원숭이 섬도 그 섬들 중 하나다. 이름처럼 원숭이가 많은 섬일테다. 호수 아래에 터 잡고 살던 사람들은 이주를 했지만, 동물들은 미처 터전을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백년 전의 언덕의 봉우리에 동물이 남게 되었다.



운하를 달리다가 섬들이 모여있는 주변부로 이르렀다. 이곳 모든 섬이 원숭이 섬인지 원숭이가 속속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숭이들은 우릴 반기듯, 아니 그보단 더 간절한 표정과 몸짓을 보였다. 흰 얼굴 원숭이는 보트를 향해 가장 멀리 뻗은 나뭇가지 위로 겁없이 이동했다. 인간의 보트에서 먹을 것을 얻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원숭이들은 애간장이 닳아보였다. 보트 위로 뛰어 오르려고 몸을 움츠리며 기회를 노렸다. 보트는 호수 위의 수많은 '원숭이 섬'을 지나다가 한 언덕 옆에 붙었다. 눈으로 숫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너댓마리의 원숭이들이 보트 위에 올라탔다. 워낙 순식간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노크라도 하고 올라 올 거라 상상했던 것도 아니지만, 문명화되지 않은(?) 자연 속 동물의 행동 패턴에 충격이 왔다. 야생에서 나는 완벽하게 몽매한 도시동물이다.



보트 위의 티티 원숭이/ 바나나를 뺏어 도망간 카푸친




원숭이는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먹을 게 더 없는지 탐지했다. 가이드는 이제 더 먹을 게 없다는 걸 원숭이들에게 확인시켰다. 조그마한 체구에 강단있는 말투의 가이드 제니가 제일 잔꾀가 좋은 카푸친 원숭이에게 일방인지 양방일지 모를 대화를 걸었다. 벌써 바나나 몇 개를 먹었니? 이제 먹을 거 없어, 카푸친.




보트는 다시 호수 가운데로 이동했다. 잔잔한 호수 위를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모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물살을 갈랐다. 원숭이들의 습격으로 헤집어진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다. 호수의 고요함에 스며들었다. 보트 위의 다른 사람들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으며, 열대 숲을 껴안은 호수의 평화로운 침묵에 동참했다.


유유히 지나는 보트 옆으로 우렁이매가 앉아있었다. 호수 바닥에 잠긴 나무 가지의 끝에 고고하게 서 있었다. 수면 위로 삼각 뿔 모양의 파동이 생겨났다. 아래에선 악어가 지나고 있을테다. 눈이 좋은 가이드는 무리를 벗어나 혼자 있는 삼색 뚜깐도 놓치지 않았다. 가지 위에 앉은 뚜깐을 발견했을 때만큼은 이 조용한 사람들이 탑승한 보트 위가 술렁였다. 누구의 눈으로 보나 뚜깐은 부리부터 꼬리까지 완벽하게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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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새까만 물 아래엔 역시나 인위로 유입된 해조류가 뻗어 올라 있었다. 물 아래는 깜깜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백년 전, 이 호수 아래 땅은 속살이 벌겋게 파헤쳐지고, 수 만의 운하 건설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다. 지금은 대형 선박이 수시로 오가고, 한켠에선 물새가 잠수를, 매는 수직 낙하를 하며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새로운 생태와 자연의 생태가 공존했다. 인공의 호수를 계획한 누군가의 메세지가 물가에 울리는 듯 착각이 든다. 평화와 번영을 희망하라.



아이러니 했다. 매주 눈에 뜰 정도로 이곳의 밀림과 망글로브 숲이 사라지고 그 위에 콘크리트가 깔리는 장면을 보며 마음 아파 하면서도, 대운하 위 인공 호수를 누비며 편안한 한숨을 내쉬는 것 말이다. 팽창하는 도시 속에 살면서 마음에 자연과 동물을 품고 있으면 시시때때로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이 떠오르고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현실을 직시하고 번번히 낙담하고, 무력감이에 이른다.


한편 가툰 호수에서 이 복잡한 속마음을 위로할 만한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운하 건설로 환경에 큰 변화를 겪었지만 결과적으론 자연을 수호하는 장치가 되었다. 파나마는 국가재산 1호인 이 운하를 원활한 작동시키고, 운영하기 위해 운하 둘레를 보호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운하를 따라가는 길은 손타지 않은 밀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매주말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자연을 즐긴다.







다시 선착장으로 도착했다. 안개는 사라지고, 오전의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여전히 선착장엔 손님이 없었다. 파나마에 삼 년이 살며 수도 없이 지나던 운하 길과 가툰 호수가 이번에야 내 마음에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떠올리면 그 때의 더위와 습기 때문인지 그 고요함 때문인지 정신이 나른하게 풀어진다. 새를 좀 더 찾아보고 싶단 욕구도 호수 너머 빽빽한 숲 속도 나른함에 힘을 잃고 등 받이에 폭 기대 앉는다. 그리고 비밀스런 이야기 품고 있는 이 호수의 침묵을 따라 조용히 넋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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