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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May 26. 2021

어쩌다 미국 백신 여행

미국에서 백신을 맞게 된 이유는요



미국 서부로 출국을 앞둔 5월 초순, 메신저로 남편 두두가 이상한 제안을 했다.

우리 미국 가 있는 동안 우리 백신 맞을까?

오잉?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차치하고, 그렇게 물어보게 된 경위가 뭔지 궁금하다. 

ㅋㅋ파나마 백신 못 기다리겠어?

파나마는 한국보다 조금 더 일찍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현재 전체 인구의 7퍼센트가 넘는 인구가 접종을 마쳤다. 우리가 맞기까지 대기줄은 한참 길지만, 간혹 '묻지마 접종'의 기회가 오는 일도 있었다. 회사 인사팀을 통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는 사람은 문의를 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 어떤 경위로 사기업에 백신 접종 희망자를 선발하게 됐는지 의아할 따름이지만 금세 손을 들어 기회를 잡은 사람도 있었다.  - 



전날까지만 코비드 검사 방문 예약을 하고, 출국 전 체크리스트를 정리하는 것에 바빴지 누구도 미국에서의 백신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오전 근무 시간 동안 회사 동료들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두두의 팀 동료들은 그의 미국으로의 휴가 소식에 백신을 맞으러 가는 거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미국에 가족이 있거나 해외 이동이 자유로운 사람들은 이미 가까운 마이애미로 '백신 트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모르면 몰랐지 이렇게 알고 나니 여행 준비만 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일정을 고려해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정에 앞서서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여럿 등장했다. 우선 양심의 문제인데, 외국인의 신분으로 타국에서 백신을 받는 것이 옳은지 먼저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라 보건국의 규정에 벗어난다면 피하고 싶다. 두두는 당장에 키보드에 불이 나도록 서치를 해서 주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미국은 신분 자격에 상관없이 백신 접종을 가능하다는 정보를 채팅창에 보내왔다. 


몇몇 미국 국적자들은 이런 행태가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도 보였지만, 뉴욕 주는 오히려 '백신 여행'을 추진한다는 발표를 냈다. 백신 무료 제공으로 인한 지출비용보다 관광객 유치로 얻는 수익이 더 크다는 계산이다. 백신 물량이 남아도는 미국 상황과 달리 이웃 국가에서는 순번을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지금, 뉴욕주의 공식적인 '백신 관광 웰커밍'은 여행객에게 백신과 함께 억눌린 여행 욕구를 해소하는 일거양득을 노릴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그에 대한 증명처럼 파나마의 젊은이들도 백신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국 매체들이 가장 집중하는 접종 후 후유증이나 부작용에 대한 문제도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흔히 겪는 약간의 두통이나 발열은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틸 수 있지만 만약에 더 심한 증상이 생긴다면? 외국인 신분으로는 대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가능성은 미약하다고 알려져 있고 일어나지 않은 사실이니 패스.


또 백신 접종이 생활에 불편을 주는 상황은 해외에서의 접종 기록이 본국과 체류국가에서 어떻게 증명되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나와 두두의 경우는 실거주 국가인 파나마와 모국인 한국, 두 개 국가에서 문제없이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혹시 이 세 개 국가 사이에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각 국가에서 백신 접종을 인정받지 못해 결국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접종을 완료했음에도 그 국가에서 접종 증명을 할 수 없어서 2주 격리를 한다든가, 단계적 방역 완화에 속할 수 없든가, 더 심각하게는 또 백신을 접종받도록 요구받을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나의 근거 없는 걱정들이지만.



다행히 EU 국가들에서는 Digital Green Certificate이라는 여행서류를 통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NHS라는 어플을 만들어 백신 접종을 증명하고 해외 이동을 용이하게 한다는 골자의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각기 보장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점차 더 많은 국가들에서 백신 패스가 구체화되고 확대 사용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백신 여권에 대한 희망에도 우리같이 다국가를 거쳐 백신 접종하게 되는 경우, 이를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길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린 가장 단순한 이유로 미국에서 백신을 맞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백신으로 항체를 얻자.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자 두두는 다시 해외로 출장을 다녔다. 북미에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도, 남미발 변이가 생길 때에도 비행기 속에서 불특정 다수와 이동을 했다. 메신저 대화창엔 이젠 듣기도 말하기도 지겨운 당부들로 도배가 됐다. 

마스크 꼭 끼고 지내, 

'칙칙이'(손세정제) 잘 뿌렸지? 

사람들이랑 가까이 서지 마. 

한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들이 이어졌지만, 파나마에 사는 우리로서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당장 맨 팔뚝을 들이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를 하며,

백신 부작용을 얻는 것보단 여기서 코로나 걸릴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



하지만 무엇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부담은 다름 아닌 돈이 되시겠다. 1차 접종은 우연히 여행에 틈타 맞을 수 있었지만, 2차 접종을 받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여행을 하는 데 만만찮은 경비와 시간이 든다. -존슨 앤 존슨은 한 차례 접종만 필요하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우리는 접종 예약이 쉬운 모더나를 선택했다.- 직장인의 정해진 휴가일수를 빼서 접종하더라도 비행기 표값, 숙소비, 식비, 입출국마다 PCR이나 항원검사 비용도 거듭 나가게 된다. 

우린 2차 백신 접종을 위한 여행 경비를 계산했다. 더해지는 숫자 앞에서 헛웃음이 났다.

아이구, 비싼 백신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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