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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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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Jan 08. 2023

나의 호사(2)

나는 남편과 대화한다.


내 어릴 적 가장 슬픈 일은 부모님이 한 번도 서로 다정하게 대화 나누는 것을 본 적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감기기 있음에도 함께 놀자고 매달리는 두 아이를 거절하지 못해 나가 논 남편이  '돈은 못 벌어다줘도 낮잠이라도 재워줘야지'라고 말하며 나에게 2시간의 낮잠 잘 시간을 선물한 후에 들어와, 아이들을 다 재운 후 밤 9시 반부터 11시 10분까지 내 다리를 베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부모님은 못 누린 호사를 나는 누리고 있다. 감사하다.


2년 전 내 일기장 속 한 구절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호사를 누리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을 누리지 못한 그 호사를 나는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호사는 나의 남편이다.

나의 남편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며, 자기의 말을 나에게 한다는 것이고, 나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닫힌 마음이 열리기도 하고, 내 생각이 변하기도 하고, 또 나를 반성하기도 한다.



20대에 결혼 적령기가 되어 배우자를 찾을 때 나는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다. 부모를 보고 배운다는데 내게 따뜻한 가정을 꾸릴 능력이 없다면,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면 어떡할까?

그런 생각을 한켠 하면서도 한 번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고,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따뜻한 가정을 꾸리기를 오랫동안 소망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승인하셨는지 나에게 따뜻한 남편을 선물로 주셨다.

내 과거의 상처들로 인해 어느덧 아빠처럼 뾰로통하고 대화를 거절하고, 불평불만으로 내 마음이 보글보글 거릴 때에도 그것을 열받아하지 않고 끈질기게 묻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나를 궁금해줘서 결국엔 내 마음의 진심을 터트려버리는..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신비한 능력을 가진 남편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하며 남편을 보며 내 지난날의 눈물을 까먹어 간다.



어른이 되어 보니 내 어린 날의 어려움은 평범함이었다. 그때는 나만 겪는 대단한 불행인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 티브이로, 책으로, 간접 경험으로 보고 들은 세상 속에서 나의 어릴 적 가정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어려움이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더 씩씩하고 멋지게 살아낸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암 걸린 사람의 아픔보다 지금 당장의 내 감기가 더 괴롭다는 어느 사람의 말처럼 지독히 개인적인 인간은 세상만사의 기구한 어려움보다 시시각각 닥치는 내 삶 속에서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산처럼 이고 지고 근근이 살아내는갑다.




가끔 나의 호사를 누릴 때는 어릴 적 엄마아빠의 모습이 생각나서 눈물 나게 감사하다.

역시나 어른이 되고 보니 대화를 할 수 있는 남편을 만나는 것 또한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음을 알겠다.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복불복 같다. 누구나 부부로 서약을 할 때는 함께 대화하며 함께 따뜻하게 꾸려갈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만 그 과정에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꿈이 깨어지는 경우도 정말 많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아직도 문득문득 아빠의 절대 닮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내 속에 인처럼 박혀서 나도 모르게 스물스물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럴 땐 깜짝 놀라서 나 자신에게 낙심하다가 내게 그저 허락하신 이 귀한 호사를 업신여기지 말아야지 하며 스스로 다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호사를 누리고 산다.

남편과 대화하는 호사를.

그리고 이 호사를 더 깊이,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누리고 싶다.



나의 부모님은 평생 따뜻하게 대화하는 법을 몰랐지만,

나는 남편과 대화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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