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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Jan 08. 2023

엄마 아빠의 대화하는 소리(1)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

나의 어릴 적 자존감은 주로 남들의 입을 통해 쌓여갔다. 

' 어머, 너 예쁘게 생겼구나. 피부가 어쩜 그렇게 하얗니?' 

' 너 혹시 아빠가 외국인이니? '

'너는 예쁘니까. '

이런 말을 통해 내가 괜찮은 외모를 가진 줄 알게 되었다. 


' 우리 딸은 착해요. 엄마 말은 뭐든지 잘 들어요. '

' 동생을 얼마나 잘 돌본다고요.'

' 참 순해요. 마음씨도 예쁘고요.'

이런 엄마의 말을 통해 나는 내가 꽤 착하고 선한 심성을 지닌 줄 알게 되었다.


'야, 그렇게 잠만 자더니 어떻게 공부는 잘하니?'

'네가 1등이야?'

'도대체 어떻게 1등 하는 거야?'

학교에서 이렇게 말하며 나에게 시험 후만 되면 우르르 몰려와 시험 정답지를 맞춰보는 친구들을 통해 나는 내가 공부를 그럭저럭 잘하는 모범생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예쁘고, 착하고, 공부를 잘했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행복하고, 걱정 없고, 밝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절 나는 외롭고, 슬프고, 어두웠다.


나의 십 대 시절은 그래서 꽤 많이 혼자 울었던 나날로 기억한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동네 작은 슈퍼를 운영하셨다. 아주 작은 슈퍼였지만 우리의 생계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일터였는데 딱히 세상사에 밝지 않고 생계를 주도적으로 책임지지 않으시는 아빠덕에 엄마가 혼자 알아보고 시작한 장사이다. 엄마는 빚으로 장사를 시작했고 아빠와 둘이서 함께 꾸려가셨다.


아빠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강박적 사고를 가진 지금의 내 시각으로는 불쌍한 남자였다. 아빠는 늘 화가 나 계셨고 지금에야 그것이 자기에 대한 화인줄 알지만 그 시절 아빠는 웃지 않으셨고 늘 불평불만하셨으며 말이라고 하는 것은 고함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엄청나게 화가 난 얼굴로 말없이 있으시는 게 다였다. 


엄마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똑똑하고 거침없는 여자였다. 그래서 아빠의 아픈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그것에 휘둘리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엄마를 힘들게 할 때는 여지없이 달려들어 결국 쨍그랑 소리를 내었다.


아빠는 늘 돈돈 거리며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셨지만 막상 일생에서 한 번도 돈을 넉넉하게 벌어본 적이 없으셨다. 엄마는 늘 아빠성정 자체보다 가난이 더 힘들었다고 하셨지만 돈을 쓸 곳엔 써야 한다고 하시면서 적은 돈에 돈돈 거리는 아빠를 못 마땅해하셨다.


뭔가 돈이 없어서 우리 집이 불행한 것 같기는 한데 어릴 적 나는 돈보다는 엄마 아빠가 더 크게 보여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맨날 싸우기만 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학생이었나 고등학생이었나 시기는 흐릿해졌지만 어느 날인가 엄마 아빠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다.

밥을 먹다가 아빠가 반찬 그릇을 엄마를 향해 던지고 화분도 던졌다. 

난장판 속에서 엄마 머리에 무언가 맞아서 엄마는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두 분이 언성을 높이고 싸우기는 하셨지만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놀란 나는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그 난장판을 벌이고 나서 머리에 피가 뚝뚝 난 채로 나에게 학교에 들고 갈 도시락을 전해주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학교에서 도시락을 열어보았을 때 쪽지에는 'oo야, 미안하다.'라고 적혀있었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엄마 베개 위에 'oo야, 엄마 병원 갔다 올게. 아빠는 엄마랑 싸웠지만 그래도 좋은 분이다.'라고 쓰인 엄마의 쪽지가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인생의 그 장면들은 예쁘고, 공부 잘하고, 착해서 꽤 괜찮을뻔했던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사정없이 끌어당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장면들이었다.


이렇게 엄마 아빠는 늘 싸웠다.  고함을 치며 싸웠고, 서로 욕을 해대며 싸웠고, 서로 무시하며 싸웠다.

나는 집보다 학교가 편했다.  집에서는 불안하고 괴로웠지만 학교에서는 잠시나마 어지러운 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몸이 약하고 체력이 강하지 않았지만 노력대비 잘 나오는 학교 점수를 붙잡고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을 했다. 성적표에 1이라는 숫자를 엄마에게 보여줄 때 엄마가 웃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공부의 동기였다. 늘 고생만 하고 괴롭게 사는 엄마가 잠시 기뻐하는 순간이 참으로 뿌듯했다.


가정책에서 '대화'라는 단어를 유심히 보았다. '대화가 뭘까?' 생각했다. 그리고 곰곰이 엄마 아빠가 대화를 하신 적이 있는지 떠올려봤다.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엄마 아빠가 대화를 하신 적이 없었다. 그저 화내고, 윽박지르고, 싸우고 고함을 치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만 보았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갖고 싶었다.

'엄마 아빠가 대화하는 순간'이.


가끔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화'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단짝 친구가 아빠가 아침마다 나와 친구를 학교에 데려다주셨는데 그 와중에 친구와 아빠가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면 저런 것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구나 싶었다.

나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렴풋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엄마와 아빠가 따뜻하게 대화하는 가정되면 좋겠어요.  

제가 만약 커서 가정을 가진다면 대화하는 가정 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렇게 나는 10대를, 20대를 온전히 대화하는 가정을 바라며 울었다.

엄마 아빠가 대화하기를,

그리고 내가 대화하는 가정 꾸리기를.. 나는 그것만 바라며 그 시간을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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