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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Oct 31. 2023

나의 경제적 수준, 정신적 수준

결혼기념일에 들여다보다.

지난주 금요일은 나의 11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작년 10번째 결혼기념일은 10이라는 완전수가 주는 기념비적 느낌도 있으니 결혼기념일에 뭔가 특별한 것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나는 남편에게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고 해운대에서 요트를 타고 부산 야경을 구경하자고 했었다.


하지만 당일 근처에 아이들이 아팠고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던 가족사진 찍기는 아직까지 찍지 못했고, 요트를 타지도 못했다. 10주년을 얼렁뚱땅 보낸 후 맞는 결혼 11주년이라 나는 일주일 전부터 오빠에게 특별한 계획이 있냐고 물었지만 오빠는 또다시 면접 준비로 바빴고 맛있는 식사 한 끼 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오빠의 바쁨을 이해했기에 나도 별다른 이벤트를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가족끼리 맛있는 밥이나 '만족스럽게' 한 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것? 평소에 안 먹는 것?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것? 결국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소고기'였다.  언젠가 딱 한 번 먹어봤던 양질의 소고기 집이 생각나서 검색했더니 100그램에 3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이제는 커서 어느덧 1인분을 먹어버리는 두 아이를 생각하니 4인 가족 한 사람이 200그램씩만 맛만 봐도 25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거기에 밥이라도 먹으면 외식 한 끼에 3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다시 가성비 넘치는 소고기 집을 찾기 시작했다.  수입 소고기에 단체 회식을 주로 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이지만 4인 가족 20만 원 안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에는 다소 왁자지껄하고 술판이 벌어지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리고 점점 단계를 낮추어서 돼지 고깃집을 찾아보고, 오리 고기 집을 찾아보았다.


이렇게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나를 두고 남편은 예산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10만 원쯤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러면 오리 고기 집에 가자고 남편이 결정을 해주었다.

'그래, 우리 집 수준은 오리구나.'


나는 가성비 소고기집을 찾느라 흘러버렸던 시간이 떠오르며 우리 집 경제적 수준이 아직은 기념일 날 소고기를 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느 시절 개그맨이 한참 떠들던 유행어 속 " 부자 되면 뭐 하겠노? 소고기 먹겠지!!"의 그 '소고기'를 나는 아직 먹을 수 없는 수준. 인정이다!!!!!





돈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그날 단박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정갈하고 깔끔한 소고기 집에 가고 싶었다.  먹음직한 소고기를 예쁘게 구워주는 깨끗하고 맛있는 그 소고기 집에 가서 많이 먹는 우리 남편 입에도 한가득 넣어주고 제비 새끼처럼 잘 받아먹는 우리 두 아들 입에도 그득그득 집어넣어주고 싶었다.

나도 11년간의 결혼생활을 안주삼아 이런 맛난 것도 함께 먹어보네요. 하하 호호. 하면서 언젠가 한 번 먹어보았던 그 소고기의 단맛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데 아쉽게도 그 30만 원을 밥 한 끼에 내기에는 그 30만 원이 우리 집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고 나는 아무리 특별한 날이라도 그 돈을 지불할 만한 배짱도 수준도 되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가고 싶으면 가면 되는 거지. 이것도 지지리 궁상인가? 돈을 쓰면서 그 가치를 최대로 누리고 그 순간을 기억하고 흠뻑 즐거워하는 건 또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나는 금방 털어버렸다.

예전에 누가 여행만 갔다더라.. 하더라도 여행한 번 못 간 내가 어쩌고 저쩌고 자기 연민에 빠졌던 나..  넌 왜 옷이 이 모양이냐고 안부차 들은 한마디에 제철 따라 입을 옷가지 하나 없는 내가 어쩌고 저쩌고 자기 연민에 빠졌던 내가 이번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내 경제적 수준을 두고 내가 판단하였고 결과가 아쉬움을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빨리 잊었으며 언젠가는 내가 여유로운 경제적 수준을 꼭 만들어 먹고 싶은 것을 먹고야 말겠다는 작은 오기마저 마음에 새기며 오늘을 그저 오늘로 받아들이고 맛있게 오리를 먹기로 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쬐금 성장한 것 같았다.  이것도 인정!!!!!




결혼기념일 당일 나는 열이 났다. 전날 밤부터 열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렵사리 학교에 다녀왔다. 병원 여러 군데를 갔으나 많은 대기 환자들로 인해 아들 픽업 시간과 겹쳐서 치료받지 못했다. 그리고 결혼기념일 날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대구에서 조금 일찍 돌아온 남편은 열 때문에 앓아누워있는 나를 방에 두고 아이들과 치킨을 시켜 저녁을 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결국 열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응급실에 데려가서 수액을 맞게 하고 간병해 주었다.

다음 날 열이 내리고 나서 우리 가족은 결혼기념일날 가기로 한 오리고기 집에 갔다.

평소 먹던 양보다 넉넉히 시켰고 우리는 대단히 열심히 먹었다.

다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니 영수증에 '9만 2천 원'이 찍혀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었던 소고기 집에 어느 특별한 날 큰 망설임없이 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보, 그간 고생 많이 했죠. 양껏 많이 맛있게 먹어요. 여보랑 함께 이런 맛나는 것도 먹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오늘이 참 감사하네요. 얘들아~ 많이 먹으렴.  엄마는 이 집 고기가 참 맛있구나. '


하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아픈 날 한결같은 모습으로 야밤에 나를 응급실로 데려가는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걱정해주는 두 아들이 있어 나는 주어진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 입은 자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또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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