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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은 Oct 27. 2020

"나의 살의는, 지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독소 소설>

적당히 꾸며진 모델하우스가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유는 생활감이 없어서다. 실제 일상은 들여다볼수록 테이블보에 흘린 찌개국물처럼 한심한 순간들과, 벗어놓은 양말처럼 들키기 싫은 사적인 비밀들이 가득하다.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든 일상의 찌질한 헛발질들.


히가시노의 『독소 소설』은 굳이 재판장까지 끌고 가기엔 애매한 사기나 음모, 착하다거나 나쁘다고 판가름하기엔 어줍잖은 잘못들을 저지르는 치졸한 인간 군상들을 등장시킨다. 그 소소한 인물과 사건들이 서로 시시콜콜 엉켜들며 잡음처럼 일을 키워 가는데, 그 어디에도 무릎을 치게 하는 카타르시스는 찾아볼 수 없고, 피식피식 웃다가 탄식만 남는 찜찜한 결말들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깨달음은 있다. 우주 전체에서 지구 하나 폭발해도 별 대수가 아닌 것처럼, 하물며 지구 안의 인간 몇몇이 죽든 살든, 납치를 당하든, 사기를 치고 남을 속이든,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난무한 것 같아도 지극히 현실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이 세상에는 영웅도 없고, 해결사도 없다. 언제나 문제는 문제로 남겨진다.


어차피 ‘노답’인 현실의 비극들


사건은 기괴하고 별나더라도, 대단찮은 주인공들은 우리를 꽤 닮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화를 벌컥 내보거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도망치거나, 모른 척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세상은 어차피 안 바뀌니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 그런 방식으로 찌질한 비극들이 하나 둘 어설프게 유예되거나 덮어진다. 그러니 독자 역시 아 몰라, 하고 황급히 책장을 덮을 수밖에.


서사 핵심을 제외한 단편의 결말을 편집해 모아봤다. 그러자 어설픈 유예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 별로서는 자기네가 빨간색이건 초록색이건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에인젤」 中 지구의 비극에도 태연한 외계인)


“큰일 났어요!” “거품이……, 입에서 거품이…….” (「핸드메이드 사모님」 中 쓰러져버린 사모님)


“시끄러워! 빨리 햄버거나 가져와!” 여직원의 얼굴을 후려쳤다. (「매뉴얼 경찰」 中 화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


그녀는 신랑의 바짓가랑이에서 스며나오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더니 기모노 자락을 부여잡고 도망쳐 버렸다. (「꼭두각시 신랑」 中 도망치는 신부)


사실이 밝혀지면 독자들은 나를 죽이려 들지 모른다. 덮자, 하고 생각했다. (「여류 작가」 中 모르는 척하기로 한 ‘나’)


나의 살의는……, 지금 벽장 속에서 노트북 컴퓨터와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살의 취급 설명서」 中 살인을 유예해버린 ‘나’)


비극은 해결되지 않고 비밀에 붙여졌을 때 여전히 재발의 가능성을 남긴다. 단편임에도 이 비극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겹겹이 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독자에게 긴 여운을 안기는 이유다.


제대로 폭발하지 않았거나 폭발 직전인 폭탄들이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이든,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엄청난 비극이든 규모는 중요치 않다. 그것이 오늘 안전했을 뿐인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는 비극의 속성 그 자체가, 이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부조리와 인간의 불완전한 운명을 그대로 보여준다.



몇 겹의 진실, 독소(毒笑)의 정체


열두 개의 이야기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게 있다면, 장르소설 문법에 능숙한 작가가 숨겨놓은 몇 겹의 진실이다. 히가시노는 그것을 단편이라는 제한된 분량에서 능숙하게 감췄다가 내보이길 반복한다. 그것이 드러나는 게 절묘한 - 탄식이 나올 정도로 안타까운 - 타이밍이기에 독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사소한 비극들은 실제 일어나더라도 좀처럼 눈치 채기 힘들고, 심지어 잘 해결되지도 않을 거라는 것. 히가시노가 몰라도 좋을 일상의 비극들을 일일이 들췄다가 덮는 것을 반복하면서 그런 것들을 상기시킨 것은 ‘이야기’를 활용한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느껴진다.


하긴 어차피 모든 허구는 인간을 상대로 한 사고실험이니까. 너라면, 어쩔래. 너도 어차피 이럴 거잖아. 아직 닥치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상황에서 어차피 우리는 다 같이 이럴 수밖에 없을 걸.


이렇게 보면 진정한 독소(毒笑)의 정체는, 작가가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상상하며 지을 일종의 조소(嘲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 여기 내가 열두 개의 아주 흥미로운 비극을 준비했어. 대신 그 비극에는 선인도 악인도 없고, 심지어 비극이 해결되지도 않아. 재미는 있지만 좀 찜찜하지. 어때.

볼래, 안 볼래?”



* 독소(毒笑) : [명사] 독기를 품고 웃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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