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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죠쌤 Jan 24. 2023

어디가나 ‘상진이’들은 꼭 있다.

죠쌤의 지방공무원 일상


조직마다 호칭은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어디가나 ‘상진이’들은 꼭 있다. 만약, 당신이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근로자로 일하면서 진상 민원인을 만나본 적 없다면, 하늘에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해야 한다. 복을 참 많이 받은 사람이니까.


경험을 바탕으로 진상 민원인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보고, 에피소드도 덧붙이겠다.


1. 윽박지르기 형


“저 사람은 된다고 하면서, 왜 내 서류는 안 받아줘요!”

“여기 동장/과장 어딨어? 나오라고 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민원인들은 이미 분노한 상태로 입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특히, 민원을 본 지 오래되지 않은 신규 직원들은 이런 민원인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주눅 들거나 말려들어서, 조건 미달인데 서류를 발급하는 등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우선, 이런 민원인인 경우에는 감정적으로 함께 동요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대처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AI처럼 논리적으로 서류 발급이 불가능한 이유를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그럼 제풀에 꺾여 소리 지르다 돌아가는 경우가 꽤 있다. 만약 말이 전혀 안 통하는 경우라면, 일찌감치 상급자를 데려오는 것도 방법이다. 분노한 호랑이 같은 사람도 윗사람한테 차 한 잔 얻어 마시면 순한 양이 되어 웃으며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열등감이 심했는데 자신이 높은 사람 대접 받았다는 것만으로 심리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며 안정이 되는 것이다. 


2. 시비걸기 형


“아까 저 무시하듯이 말하지 않았어요?”

“그때 전화로 면담할 때 이거 서류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여기 정직원 맞아요? 고등학생 처럼 보이는데?”

“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내가 왜 당신의 선생이야?”

(선생은 ‘teacher’가 아닌 ‘sir’의 의미인데...)


처음에는 일반 민원인처럼 다가왔지만, 어느 지점에서 돌변하여 시비를 건다. 직원의 말투나 표정을 가지고 꼬투리 잡는 경우도 있고, 직원 입장에서 기억이 안 나는 과거의 문제를 가지고 문제를 삼는다. 심지어 ‘선생’이란 호칭이나 외모를 가지고도 시비를 거는 몰상식한 경우도 있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시비를 당하면 기분이 몹시 상하지만, 민원인이 주관적인 감정으로 오해를 했다면 아래와 같이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 그렇게 들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시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시비는 선생님이 거셨잖아요!” 라고 맞대응을 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그 민원인은 속으로 ‘너 잘 걸렸다’라고 생각하며 직원이 화내는 부분만 악의적으로 녹음을 하거나 감사실에 신고하는 등 일을 크게 벌일 수 있다.


인신 공격적인 ‘선을 넘는’ 시비를 거는 경우에는 민원인에게 ‘인신 공격’이나 ‘명예 훼손’에 해당한다고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변 직원이나 상급자가 등장해서 함께 대응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민원인이 급발진하며 막말을 했더라도, 공동으로 대응하면 당황하여 돌아가거나 사과하는 경우가 많다. 


3. 생떼 부리기 형


막무가내로 해달라고 조르는 경우다. 악의는 없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할 수 있다. 행정복지센터라면 직원들과 안면이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 중에 이런 경우가 있다. 안면이 있다고 해도 신분증을 안 가지고 왔거나, 필요 서류가 누락된 상태에서 민원 신청을 받아줄 수는 없다. 어떻게든 봐달라고 생떼를 부리며 커피나 음료 같은 뇌물(?)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경우 공감이 중요하다. “저도 정말 해드리고 싶은데요...”라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 기계적으로 거절만 한다면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일이니까. 그리고 위법하지 않은 경우, 즉 일단 신청을 받고 보완 서류를 따로 이메일이나 문자 등으로 받을 수 있는 경우라면 융통성을 발휘하는 방법도 있다. 


내가 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났던 최고 레벨이자 끝판 왕은 캡 모자를 눌러 쓴 '국가유공자 할아버지'였다(당연히, 모든 국가유공자들이 진상이라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등장하자마자 로비에서 일단 쏟아 붓고 시작한다. 이 사회와 국가가 잘못한 모든 것들에 대해 윽박지르고 시작한다. 그러다가 직원에게 생떼 부리며 이런 저런 서비스를 요구한다. 자격조건이 되지도 않는데도 포스터에서 봤거나 이웃 주민이 받고 있으면 자기도 달라고 떼를 쓴다. 그러다가 직원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무례했다는 느낌이 들면 시비를 건다. 잘못하면, 붙잡혀서 국가 유공 훈장을 받게 된 스토리를 다 들어야 한다. 모두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 끝판왕은 지금도 그렇게 활보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그 국가 유공자 할아버지의 덕을 본 적이 있다. 공무원 교육 연수 시간에 팀을 나눠 진상 민원인과 응대하는 공무원에 관한 역할극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연기를 1도 모르는 나는 어쩌다보니 진상 민원인 역을 맡게 되었다.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나는 그 국가 유공자 할아버지에 빙의되어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수강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비결은 간단하다. '절대로 당신과 소통하지 않겠다'라는 굳은 의지를 가진 채 내가 하고 싶은만 내뱉으면 되니까. 부작용은, 교육 후 구내식당에서 모르는 직원들이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점이다.


“저 앞에, 저 분 국가 유공자 할아버지야, 조심해.”


오늘도 세상의 모든 ‘상진이’들과 씨름하느라 고생하는 모든 분들이 힘을 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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