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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죠쌤 Jan 20. 2023

나는 행정직인가, 제설직인가

죠쌤의 지방공무원 일상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다보면 가장 많이 하는 멘트는 이것이다. 


“이런 것도 우리가 해야 돼??”


지방공무원이 되고 나서 일기예보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특히, 눈이 많이 내리는 시즌에 그렇다. 눈과의 전쟁으로 정신없다. 며칠 내내 제설작업을 한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과연 나는 행정직인지 제설직인지(이런 단어는 없지만)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설작업 강도의 편차는 존재할까? 매우 그렇다! 일반인들은 도로가 많은 도심지역에 근무하면 제설작업 양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로와 주요 도로는 제설차량을 통해 작업을 하고 환경미화원들도 투입되기 때문에 오히려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직접 제설작업할 곳은 많지 않다. 유동인구가 많은 교차로 횡단보도 주변 위주로 하면 된다. 정말 힘든 곳은 도로가 아니라 골목이다! 골목길이 많은 구도심일수록 힘들다. 물론, 자기 집 앞은 주민 스스로 제설작업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구도심 골목은, 특히 응달진 주택가 주변은 방치되기 일쑤다. 주민 중에 누가 다쳐서 민원을 제기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동 직원들은 모른 체 할 수가 없다. 삽을 들고 나갈 수밖에... 비탈진 골목이 많거나 육교가 많은 곳은 더 힘들다. 



밤샘 제설작업을 하면서 잊기 힘든 추억도 있다. 경사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대관령 부럽지 않은 비탈진 골목이 있었는데 역시나 눈이 발목이상 쌓이고 말았다. 늦은 밤, 골목 위부터 엉거주춤하며 삽질을 시작했다. 손은 얼얼하고, 숨은 헉헉 찬다. 긴장한 탓에 발끝은 곤두선다. 차라리 시원하게 한 번 자빠져서 병가 쓰고 따뜻한 방에 눕고 싶다는 유혹이 들 정도로 힘들다. 한참 작업하다보니 상의가 땀으로 젖어든다. 그때 갑자기 중학생 아이들의 고함이 들린다. 신난 강아지마냥 남자애들 서너명이 포대자루를 들고 골목 위에 나타난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겨울에 시골에서 즐기던 바로 그 놀이! 포대 썰매! 아이들은 포대자루를 깔고 앉더니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저 아래로 미끄러진다. 능숙한 솜씨로 보건대 매년 즐기는 녀석들임에 틀림없다. 썰매라기보다 봅슬레이 수준이다. 밥벌이로 땀과 피로에 절어 있는 내 모습과 참 대조된다. ‘좋을 때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참 늙었구나, 생각하며 부러운 듯 아이들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제설작업하면 따로 수당이 있을까? 일반인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다. 사실, 제설이든 수해복구든 그런 작업을 한다고 별도의 수당을 받는 건 아니다. 다만, 비상근무가 소집되면 초과근무수당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공무원들이 초근수당은 하루에 4시간까지 인정된다. 대략 최저시급 수준이니까 4시간하면 4만원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밤샘 근무 할 때는??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비상근무가 당일 해제되지 않고 다음 날까지 이어져서 날을 새게 되면 다음 날 오전9시에 교대를 하고 퇴근하게 된다. 즉, 대체휴무를 쓰게 되는 것이다. 만약, 사정 상 대체휴무를 쓸 수 없이 다음날에도 이어서 근무를 하게 되면, 일정 기간 내에 대체휴무를 하루 쓰게 해주거나 수당을 4시간 이상으로 인정해서 준다. 대체휴무로 하루를 쉬더라도 밤을 새는 것 자체가 데미지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 비상근무를 싫어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주민의 안전을 위해 눈을 치워야하고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오늘 밤에도 어딘가에서 비상근무를 설 모든 공무원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보낸다. 우리도 언젠가는 동심으로 돌아가서 포대썰매를 신나게 타는 날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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