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쌤의 지방공무원 일상
알고리즘 탓인지, 내 숨겨진 욕망 때문인지 요즘 인터넷/유튜브 서핑을 하다 보면 행정 공무원, 교사, 군인 등 의원면직한 공직자들의 브이로그가 참 많이 뜬다(이것도 일종의 유행일까?).
내 경험상 내가 속한 기관에서도 예전엔 의원면직 사례를 일 년에 몇 건 들었다고 하면, 요즘엔 거의 매달 그런 소식이 들린다. 최근 몇 년 사이 의원면직하는 공무원들이 몇 배는 늘어난 것 같다. 거의 대다수는 3년 차 이내의 하위직 미혼 공직자들이다. 왜 그만둘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본다.
1. 사람이 너무나 싫어서
일이 힘드냐, 사람이 힘드냐. 우리는 자주 묻고 답한다. 만인이 아는 정답은, ‘둘 다’ 힘들다. 공무원들이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민원 업무, 즉 ‘사람’을 대하는 ‘일’이므로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일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도 많다. 악성 민원에게 시달려서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끝없이 몰려드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인간 민원 발급기’처럼 살다가 소진되기도 한다. 실제로 주변 민원대 직원 중 한 명이 후자의 이유로 심리 치료를 받다가 6개월 휴직을 하더니 결국 복귀하지 않고 사직을 했다. 그 친구에겐 다시 민원대에 앉는 것이 지옥에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외부 민원인보다 내부 동료(상사)가 더 문제인 경우도 있다. 모든 조직에 중력의 법칙과 같이 존재하는 ‘돌아이 보존 법칙’에 의해 우리는 반드시 ‘돌아이’를 만나게 된다. 사기업이라면, 생산성과 사회성이 결여된 ‘돌아이’는 퇴출되는 경우가 꽤 있으나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 조직에서는 오히려 그런 부류가 혜택(?)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팀 내에 ‘돌아이’가 등장하면, 어떤 부서장이나 팀장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돌아이’에게는 쉬운 일, 단순한 일만 맡기는 반면, 어렵고 복잡한 업무를 나머지 팀원들에게 분배하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돌아이’들은 어차피 승진은 신경 안 쓰고 하루하루 이기적으로 편하게 보내는 데에만 골몰하기 때문에 선량한 다른 팀원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직속 상사가 ‘돌아이’라면 부서가 바뀔 때까지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같은 조직에서 정년까지 일한다는 것은, 나쁘게 해석하면, 저 원수를 20년 이상 봐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가끔 갑질에 시달린 하위직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는데, 그 피해자는 단순히 순간적인 고통 때문에 충동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고통 때문에,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교사든 경찰이든 행정 공무원이든 어느 조직이나 사람이 싫어지면 조직도 싫어지고 직업도 싫어지기 마련이다.
2.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정년보장과 연금은 분명히 안정적인 혜택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안정성’만 가지고 직업을 영위할 수는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에서 보듯이 인간은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만 충족하며 살 수 없다. 우리는 직업을 통해 전문성도 길러서 인정도 받고 싶고, 내 재능을 발휘하며 성취감도 맛보고 싶다. 즉,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도 중요하다. 그런데 행정직의 길에서는 도무지 자신만의 재능이나 전문성을 기르기 어렵다. 늘 딱딱한 행정 업무가 재밌을 리가 없고, 1~2년마다 부서가 바뀌니 전문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신규였을 때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선배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부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조직에 적응을 하고 나면 선배들을 보면서 ‘아, 난 저렇게 무능력하게 늙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직에 대한 반감과 공무원 자체에 대한 회의로 번지게 된다.
후배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자신이 원했던 삶과 현재의 삶 사이의 괴리감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이나 SNS로 공무원의 현실이 낱낱이 밝혀져 있어서 공시생 때부터 많은 정보를 습득했겠지만, 막상 현장에서 하루 8시간씩 공무원을 경험해 보면 다양한 생각이 들게 된다. 30년 후에 행복하기 위해 현재에 불행한 삶을 견뎌야 할까? MZ세대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미션이다. 브이로그를 통해 접한 MZ세대 퇴직자들이 사직서를 쓰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것이었다.
“지금 그만 안 두면 평생 못 벗어날 것 같아서요...”
3.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누가 ‘싫어서’, 무엇이 ‘없어서’, 내 꿈이 ‘아니라서’ 등 부정형(not)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직하는 것보다 나만의 길을 찾거나, 나만의 재능을 발견하는 등 새로운 '긍정'을 찾아 떠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지독하게 싫어서 떠나는 사연을 들으면 공감이 되지만, 혹시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을 내린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사직한 분들의 브이로그를 보면, 충동적으로 사직한 뒤 후회하는 내용도 꽤 많다.
새로운 가능성을 확신하여 과감하게 안정의 길을 떠난 분들은 참 드물다. 약 10년간 근무하면서 내가 들은 케이스는 2명에 불과하다. 이 분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몇 년간 꾸준히 부캐를 개발하여 수입이 발생할 정도가 되었거나 오랫동안 열심히 자본금과 지식을 쌓으며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 온 경우니까.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사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직서를 쓸지 말지 고민이라면, 혐오와 부정의 에너지를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긍정적인 행위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 새로운 일이 ‘수입’까지 연결되는 지도 끊임없이 테스트 해봐야 한다. 어떤 이는 부캐로 얻는 수입이 최소 현재 연봉의 절반 정도에 이를 때까지는 사직서 쓸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한다. ‘대퇴직의 시대’인 요즘 다행히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과 경험자들이 참 많다.
그러니 멋진 사직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여(나를 포함하여),
넋 나가도록 넋두리만 하지 말고
진심으로 떠나고 싶다면, 전심으로 새 길을 찾자.
모든 직장인들이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를 모두 충족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