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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죠쌤 Jan 25. 2023

사직서를 쓸까 말까

죠쌤의 지방공무원 일상

알고리즘 탓인지내 숨겨진 욕망 때문인지 요즘 인터넷/유튜브 서핑을 하다 보면 행정 공무원교사군인 등 의원면직한 공직자들의 브이로그가 참 많이 뜬다(이것도 일종의 유행일까?).     


내 경험상 내가 속한 기관에서도 예전엔 의원면직 사례를 일 년에 몇 건 들었다고 하면요즘엔 거의 매달 그런 소식이 들린다최근 몇 년 사이 의원면직하는 공무원들이 몇 배는 늘어난 것 같다거의 대다수는 3년 차 이내의 하위직 미혼 공직자들이다왜 그만둘까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본다     



1. 사람이 너무나 싫어서     


일이 힘드냐사람이 힘드냐우리는 자주 묻고 답한다만인이 아는 정답은, ‘둘 다’ 힘들다공무원들이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민원 업무즉 사람을 대하는 이므로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일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도 많다악성 민원에게 시달려서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끝없이 몰려드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인간 민원 발급기처럼 살다가 소진되기도 한다실제로 주변 민원대 직원 중 한 명이 후자의 이유로 심리 치료를 받다가 6개월 휴직을 하더니 결국 복귀하지 않고 사직을 했다그 친구에겐 다시 민원대에 앉는 것이 지옥에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외부 민원인보다 내부 동료(상사)가 더 문제인 경우도 있다모든 조직에 중력의 법칙과 같이 존재하는 돌아이 보존 법칙에 의해 우리는 반드시 돌아이를 만나게 된다사기업이라면생산성과 사회성이 결여된 돌아이는 퇴출되는 경우가 꽤 있으나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 조직에서는 오히려 그런 부류가 혜택(?)을 받기도 한다예를 들어팀 내에 돌아이가 등장하면어떤 부서장이나 팀장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돌아이에게는 쉬운 일단순한 일만 맡기는 반면어렵고 복잡한 업무를 나머지 팀원들에게 분배하는 경우가 있다대체로 돌아이들은 어차피 승진은 신경 안 쓰고 하루하루 이기적으로 편하게 보내는 데에만 골몰하기 때문에 선량한 다른 팀원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직속 상사가 돌아이라면 부서가 바뀔 때까지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같은 조직에서 정년까지 일한다는 것은나쁘게 해석하면저 원수를 20년 이상 봐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가끔 갑질에 시달린 하위직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는데그 피해자는 단순히 순간적인 고통 때문에 충동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고통 때문에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교사든 경찰이든 행정 공무원이든 어느 조직이나 사람이 싫어지면 조직도 싫어지고 직업도 싫어지기 마련이다.     


2.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정년보장과 연금은 분명히 안정적인 혜택이다하지만모든 사람이 안정성만 가지고 직업을 영위할 수는 없다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에서 보듯이 인간은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만 충족하며 살 수 없다우리는 직업을 통해 전문성도 길러서 인정도 받고 싶고내 재능을 발휘하며 성취감도 맛보고 싶다,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도 중요하다그런데 행정직의 길에서는 도무지 자신만의 재능이나 전문성을 기르기 어렵다늘 딱딱한 행정 업무가 재밌을 리가 없고, 1~2년마다 부서가 바뀌니 전문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신규였을 때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선배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부럽다고 생각했었는데조직에 적응을 하고 나면 선배들을 보면서 난 저렇게 무능력하게 늙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시간이 흐를수록 조직에 대한 반감과 공무원 자체에 대한 회의로 번지게 된다     


후배들과 대화를 나눠보면자신이 원했던 삶과 현재의 삶 사이의 괴리감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물론요즘에는 인터넷이나 SNS로 공무원의 현실이 낱낱이 밝혀져 있어서 공시생 때부터 많은 정보를 습득했겠지만막상 현장에서 하루 8시간씩 공무원을 경험해 보면 다양한 생각이 들게 된다. 30년 후에 행복하기 위해 현재에 불행한 삶을 견뎌야 할까? MZ세대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미션이다브이로그를 통해 접한 MZ세대 퇴직자들이 사직서를 쓰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것이었다 

    

지금 그만 안 두면 평생 못 벗어날 것 같아서요...”      


3.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누가 싫어서’, 무엇이 없어서’, 내 꿈이 아니라서’ 등 부정형(not)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직하는 것보다 나만의 길을 찾거나나만의 재능을 발견하는 등 새로운 '긍정'을 찾아 떠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물론현실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지독하게 싫어서 떠나는 사연을 들으면 공감이 되지만혹시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을 내린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실제로 사직한 분들의 브이로그를 보면충동적으로 사직한 뒤 후회하는 내용도 꽤 많다     


새로운 가능성을 확신하여 과감하게 안정의 길을 떠난 분들은 참 드물다약 10년간 근무하면서 내가 들은 케이스는 2명에 불과하다이 분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몇 년간 꾸준히 부캐를 개발하여 수입이 발생할 정도가 되었거나 오랫동안 열심히 자본금과 지식을 쌓으며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 온 경우니까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사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직서를 쓸지 말지 고민이라면혐오와 부정의 에너지를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긍정적인 행위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그 새로운 일이 수입까지 연결되는 지도 끊임없이 테스트 해봐야 한다어떤 이는 부캐로 얻는 수입이 최소 현재 연봉의 절반 정도에 이를 때까지는 사직서 쓸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한다. ‘대퇴직의 시대인 요즘 다행히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과 경험자들이 참 많다.


그러니 멋진 사직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여(나를 포함하여),      


넋 나가도록 넋두리만 하지 말고

진심으로 떠나고 싶다면전심으로 새 길을 찾자     


모든 직장인들이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를 모두 충족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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