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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서 May 15. 2020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

참사 이후 6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참사가 일어난 지 34일 후,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비애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 참사를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겠다 했다. 그는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제도를 지목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겠다 발표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다. 이 담화 이후, 사람들은 따져 묻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은 게 사회의 관행과 제도 때문이냐고. 해경을 없애고 기관 하나 더 만드는 게 재발 방지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정부는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냐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부끄러움은 죄책감과 맞닿아 있고, 죄책감은 양심이라는 스위치를 통해 켜진다. 그래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심이 없다’고 말한다. 참사 발생 직후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밝히는 대신, 대통령은 그 행적에 대해 보도한 기자를 고소했다. 진실을 밝히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는 대신, 국정원을 시켜 가족들을 사찰했다. 참사를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는 대신, 규제를 ‘물에 다 빠뜨리고 하나씩 건져내자’는 망언을 뱉어냈다. 부끄러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죄책감 ‘따위’의 감정은 이미 이겨낸 듯 보였다. 한마디로, 양심이 없었다.  


지난 토요일, 유가족들이 세월호 6주기를 맞아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광화문 광장에 갔다. 유가족들은 집회를 여는 대신, 광화문 일대를 차 타고 돌며 아이들을 추모하는 노래를 트는 일종의 ‘카 퍼레이드’를 했다. 다만 내 눈에 띄었던 것은 그게 아니었다. 차들이 돌던 그 도롯가 끝에 있던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려 온 노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었다. 차들이 신호에 맞춰 멈추는, 그 찰나를 틈타 유가족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 후보가 퍼부은, 입에 담기도 힘든, 언급할 가치도 없는 ‘그 의혹’을 어서 밝히라고 했다. 분노를 참지 못한 한 유가족이 당신들의 자식들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냐고 따져 물었다. 노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 손자, 손녀는 그런 일 안 당한다고. 빨갱이 같은 소리 그만 하라고 도리어 목소리를 높였다. 할 말을 잃었다.  


지난 6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통령이 탄핵당했고, 새 대통령이 그 자리를 꿰찼다.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구속됐다. 몇몇은 아직 재판을 받고 있다. 새로운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진실을 찾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어른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었고, 양심 없는 모습은 여전했다. 세월호를 단 한 번도 기억한 적 없는 자들이 이젠 세월호를 잊자고 하는 걸 보면서 진정한 변화는 아직 멀었다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나 지금 이거, 이거 (구명조끼) 입고 있어요. 나 무섭다고! 나는 진짜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들어차는 그 긴박한 순간에도, 아이들은 꿈을 외쳤다. 총선이 끝난 지금, 새로운 국회의원들은 세월호를 끝까지 기억하고 지켜낼 수 있을까. 아이들의 꿈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나는 머리로 비관하고 심장으로 낙관한다. 정답이 심장에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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