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계시죠

잘 지내고 계시죠

by 최정환

아버지가 쓰러졌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다급했던 엄마의 목소리. 1년여에 암 투병 끝에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를 본 건 나였다. 호스피스 병실 안 차가운 침대에 누운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고요한 정적이 스며들 무렵. 간호사가 들어와 잠시 눈을 감은 채 말없이 기도드렸다. 짧은 애도가 끝나자 이내 죽은 이의 입고 있던 옷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아버지의 알몸을 마주한 지가 언제였던가. 목욕탕에 모시고 간지가 가물가물하니 얼마나 오래된 기억인지. 암이라는 녀석과의 달갑지 않은 동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앙상하게 드러난 뼈 주위를 간신히 덥고 있던 얇고 메마른 피부. 몸 여기저기에는 깊은 고통과 아픔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간호사가 말하길 사람의 모든 장기가 생명을 잃더라도 소리를 듣는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있단다. 그러니 가족의 인연을 뒤로한 채 먼 길을 떠나는 아버지를 위해 못다 한 말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 손을 살포시 움켜쥐었다. 그 짧은 시간. 어느새 온기가 사라진 채 굳어버린 손마디를 보듬으며 삶의 끝자락 곁을 지켰다.

살아생전 어느 날에 일이다. 전화기 너머 여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아빠가 폐암 말기래. 3개월 정도 살 수 있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럼에도 가족의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큰 병원 의사는 마지막 방법으로 항암치료를 권했다. 그래야 몇 개월 더 살 수 있다는 말이 전부였다. 주변에서 들었던 부작용 이야기들 때문인지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짧게라도 건강한 삶을 사시길 바라며 항암치료를 거부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는 날이 잦아졌다. 가족의 바람과 달리 폐 사진의 흰색 부분은 더욱 넓어지고 선명해졌다. 이제는 조금씩 숨쉬기기 힘들어질 겁니다. 의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받아 집으로 향하던 날. 아버지는 오늘도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아직도 모르는 걸까. 왜 묻지 않는 걸까. 무슨 이유로 병원에 오는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 지를. 작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말해야 하나. 죽음의 진실을 접하고선 혹여나 마음의 끈을 내려놓으면 어찌하나.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는 동네 구석에 자리한 건강식품 가게에서 약을 사 먹어 보겠다는 거다. 그 사람들 다 약 팔아먹으려는 거예요. 드셔도 효과도 없을 텐데. 먹어서 좋아질 수도 있잖냐. 아버지는 어린애 마냥 입을 삐쭉 내밀고는 구시렁거렸다.

그렇게 며칠 뒤. 아버지는 동생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기댄 채 병원 출입문까지 배웅 나왔다. 인사를 하고 돌아설 찰나 눈이 마주쳤다. 다른 날과 달리 뭔지 모를 불안한 눈빛.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버지는 다음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모처럼 식구들과 엄마 집을 찾는 날이면, 그 가게가 있던 구석 자리를 마주친다.

8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게에서 들고 온 건강식품을 품에 안고 흐뭇해하는 아버지의 두 손을 잡아보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께 마지막 남은 생을 행복하게 마무리하시라고 미소 짓는 거다.

앰뷸런스 안에서 산소호흡기를 코에 건 아버지는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같았다. 마치 마실이라도 가는냥 철없이 즐거워하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가끔은 마음속으로 아버지께 묻는다. 잘 지내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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