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생일날 미역국은 누가 먹어야 하나

아들 생일날 미역국은 누가 먹어야 하나

by 최정환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 며칠 전부터 양여사는 아들의 생일을 챙기려 부산을 떨었다. 요즘같이 바쁜 일상에서 그깟 생일이 뭐가 대수라고. 시간이 허락되면 케이크에 촛불이나 켜고 노래 부르며,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면 그만인 것을. 양여사는 왜 그리 아들의 생일에 집착하는 걸까. 40대 중반의 아들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처음 아이에 존재를 알게 됐던 날.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담아내어 새로운 생명을 맞이한다는 것은 무한한 기쁨과 호기심으로 뒤섞인 새로운 경험이었다. 산부인과 검진 날에는 아이와의 교감으로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초음파 화면 속 작은 아이는 조그마한 심장에서 쏟아내는 생명의 신호로 살아있음을 알렸다.


문득 출산 전 배부른 아내와 나눴던 말이 떠오른다.

아는 언니가 아이 낳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해줬는데 정말 배에서 수박만 한 덩어리가 나오는 느낌 이랬거든. 생각만 해도 겁난다.

진짜! 수박은 쫌 그렇고 참외 정도나 됐겠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농담으로 건넨 한마디에 일순간 아내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벌침처럼 따가운 아내의 한마디가 훅하고 파고들었다.

‘참외’ 지금 장난하냐!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태교방법을 찾아보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에 유기농 샐러드. 잠자는 시간마저도 아이를 생각하며 필라테스로 마무리했던 아내.

열 달의 시간. 둘은 한 몸이 되었다. 무더위에 몸살을 앓던 한여름 감기라도 걸릴세라 에어컨이 아닌 보일러를 돌리고, 겹겹이 껴입은 옷가지에는 식은땀으로 가득 배어있던 기억. 칼바람이 부는 날이면 집안에 꼼짝없이 머물러 몸을 추스르고, 쌓인 갈증을 해소하는 맥주 한잔, 좋아하는 음식을 참아가며 다음으로 미뤄야 했던 기억.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신호가 왔다. 아이가 밖으로 나오겠다는 꿈틀거림. 부부는 그렇게 새 생명을 맞이했다. 열 달의 기다림과 열 시간의 진통. 가족은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아내가 그랬듯 양여사도 나를 그렇게 낳았으리라.

아들에 생일날이면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서일까. 둘이 아닌 한 목숨의 끈. 긴 기다림과 기쁨의 기억들. 생일날 아침 밥상에 올라온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에는 지난날 모자의 인연을 맺고 함께 애써온 수고와 기쁨의 마음이 담겼다.


어느덧 양여사는 70대 중반 할머니가 됐다. 드라마 속 이야기에 심취해 저놈이 저 나쁜 놈이야. 저 못된 쯧쯧. 삶에 허전함을 드라마 속 주인공과 대화하듯 살아가는 엄마. 오늘도 전화기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점심 먹었냐. 며칠 있으면 생일인데. 맛있는 것 좀 사줄까.

곰곰 생각해보니 생일날 미역국은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세상의 빛을 보게 해 준 엄마가 드시는 게 맞겠다. 그저 아들이 태어난 날이 아닌, 기꺼이 수박의 고통을 감내하고 온전한 기쁨으로 받아들인 엄마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데 이제부터는 아들의 생일날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는 거다.

아들은 엄마를 위해, 아이들은 아내를 위해.

그래 그게 맞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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